[최영미의 어떤 시] [90] 누가 바람을 보았을까(Who Has Seen the Wind?)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 2022. 10. 10. 00: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누가 바람을 보았을까

나도 아니고 당신도 아니지:

그러나 나뭇잎들이 흔들릴 때

바람이 지나가고 있는 거지.

누가 바람을 보았을까

당신도 아니고 나도 아니지:

그러나 나무들이 고개를 숙일 때

바람이 지나가고 있는 거지-크리스티나 로세티(1830∼1894)

이 시를 보고 아하! 감탄한다면 당신은 아직 순수를 잃지 않은 사람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 바람의 실체를 본 사람은 없다. 크리스티나 로세티의 시들은 ‘이브의 딸’이나 ‘노래’처럼 대개 우울하고 어두웠는데, 그녀의 시 세계는 넓고 깊어서 ‘누가 바람을 보았을까’처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귀여운 시가 꽤 있다.

‘Who Has Seen the Wind’는 훗날 노래로 만들어져 영국 아이들이 즐겨 부르는 동요가 되었다. 로세티의 이 유명한 시를 차용해 오노 요코가 작곡한 노래도 있다. 1절의 가사는 로세티의 시와 똑같지만 2절부터 노래가 심오해진다. “누가 내 사랑을 보았나” “누가 당신의 꿈을 보았나”에 이르러 나는 탄식했다. 바람. 사랑. 꿈. 이 세상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잡히지 않는 그것을 눈에 보이는 생생한 시로 만든 시인의 재능에 찬사를 보낸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