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1367] '시간이 없다'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컨텐츠학 2022. 10. 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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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풍기는 아우라와 체취가 있다. 상대방을 이용할 궁리만 하고 술 담배에 절어서 사는 복잡한 사람을 만나면 머리가 아프기 시작한다. 빨리 자리를 뜨는 게 상책이다. 그 사람의 탁기(濁氣)가 전달되는 것이다.

안국선원의 수불선사(修弗禪師.69)를 만날 때마다 느끼는 것이 ‘이 스님을 만나면 왜 이렇게 머리가 시원하지?’이다. 서울 북촌의 안국동 다실에서 여러 번 같이 차를 마셨는데 그때마다 선사가 뿜는 정화된 기(氣)가 찌릿찌릿하게 전달된다. 그 찌릿함의 시작은 아랫배다. 하단전부터 등뼈를 타고 올라와 뒤통수를 거쳐 앞이마의 미간까지 찌릿한 전류감이 전달되는 것이다.

그럴 때면 혼자 이런 생각을 했다. ‘이 양반 몸속에서는 발전기가 돌아가나? 변강쇠 스님인가?’ 그동안 한국 고승 열전을 많이 써온 정찬주 작가의 신간 ‘시간이 없다’를 읽어 보니까 수불선사의 득력(得力) 과정을 소상하게 밝혀 놓았다.

수불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아침저녁으로 천도교의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였다. 새벽 4시부터 1시간. 저녁 8시부터 1시간이었다. 중2 때까지 계속해서 무릎 꿇고 외웠다. 황해도에서 증조부, 조부, 아버지가 모두 천도교 신봉자였던 집안 가풍에 따라 반강제적으로 수련해야만 했던 것이다. 수련하다가 잠이 쏟아지면 ‘지금 내가 눈을 감으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스스로 했다고 하니까 보통 근기는 아니었다.

영적인 힘을 얻는 데 핵심이 밥을 적게 먹고 잠을 적게 자는 것이다. 밥 많이 먹고 잠 많이 자면 신장(神將)을 부리지 못한다. 이런 바탕에서 20세에 출가하였다. ‘달마 혈맥론’의 한 구절을 범어사의 어른 스님과 문답하는 과정에서 정수리로 섬광이 뻗쳐 나가는 돈오(頓悟) 체험을 했다고 한다. 이로부터 1년 뒤인 26세 때에는 “돈오가 맞냐? 점수(漸修)가 맞냐?”는 선문답에서 “무수(無修)”라는 대답을 듣는 순간에 번갯불을 맞고 머리가 쪼개지는 체험을 하였다.

9·11 테러가 나기 6개월 전에 맨해튼의 어느 비싼 호텔에 머물렀다. 잠을 자는데 맨해튼에 흉흉한 살기가 가득 차 있는 게 아닌가. 다음 날도 그랬다. NYU(뉴욕대학)에 어렵사리 입학한 신도의 자식에게 ‘여기 있을 게 아니다. 당장 보따리 싸서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충고하였다. 머리는 떼어 버리고 몸으로 생각하라는 수불의 간화선풍(看話禪風)이 백인들에게 어떻게 먹힐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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