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딱 5분만 눕자' 했다가 깊은 잠에 빠지는 이유[신경과학 저널클럽]

기자 2022. 10. 9.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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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경 대구경북과학기술원 뇌과학전공 교수

늦은 밤, 밀린 숙제를 하다 보면 피로가 몰려오기 마련이다. 공부방에 책상과 침대가 함께 있다면 ‘5분만 누웠다가 일어나야겠다’라는 달콤한 유혹에 빠지기 십상이다. 그러다 완전히 잠에 빠져 다음날 늦잠까지 잔 쓰린 경험을 여러 번 해도 그런 유혹은 정말 뿌리치기 힘들다.

늦은 밤이니 잠깐 누워있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눕자마자 잠이 쏟아지는 건 왜일까.

두뇌의 중요 기능 중 하나인 수면은 우리 몸의 기관들과 긴밀한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런 대표적인 기관들 중 하나가 심혈관계이다. 잘 시간이 되면 심장 박동이 느려지고, 혈압이 떨어지며 잠이 들 수 있는 평온한 상태를 미리 마련한다.

그런데 자기 직전에 내일까지 마감인 숙제를 발견하게 되면 스트레스를 받아 심장 박동은 빨라지고 혈압이 올라간다. 오던 잠이 달아나는 것이다. 이처럼 누구나 수면과 심혈관계의 관련성을 쉽게 떠올릴 수 있지만, 이 관계를 설명하는 자세한 뇌과학적 원리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의 양 단 교수팀은 최근 10여년간 수면에 관한 세계적인 연구를 이끌어왔는데, 최근 혈압과 수면의 상호작용에 대한 분석을 발표했다.

이 연구를 이해하기 위해 혈압과 심박을 조절하는 몸의 구조를 잠시 살펴보자. 혈압은 대동맥에서 감지되는데, 혈관에 분포하는 신경이 혈관 벽에 가해지는 압력을 알아채는 것이 첫 번째 단계다.

이들 신경세포는 몸속 ‘결절신경절’이라는 부위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대동맥에서 측정된 혈압 신호를 ‘고립로핵’ 또는 ‘호속핵’으로 불리는 뇌 부위로 전달한다. 고립로핵은 자율신경계의 교감신경계와 부교감신경계를 조절할 수 있기에 이를 통해 혈압을 일정한 수준으로 맞추는 역할을 한다.

연구팀에서는 고립로핵을 구성하는 신경세포 중 혈압 변화에 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무리를 특정할 수 있는 기법을 개발했다. 이들 신경세포 무리는 혈압이 올라갔을 때 활성화돼 심장 박동을 늦추고 혈압을 낮추는 기능을 하고 있었다.

실제로 혈압에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도 인위적으로 이들 신경세포만을 활성화하자 마치 혈압이 올라간 상황에 대응하려는 것처럼 심장 박동을 늦추며 혈압을 낮추려는 작용이 시작됐다. 연구진은 나아가 이 신경세포들을 인위적으로 활성화해 수면과 관련한 반응을 살펴보았다. 실험 결과, 동물이 잠에 들 확률이 크게 증가했다. 심혈관계 활동과 수면을 직접 연결하는 신경세포들을 찾은 것이다.

물론 수면 조절에는 혈압 이외의 다른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이 때문에 혈압이 상승하는 상황을 제어하기 위한 몸속 작용이 무조건 수면 확률을 증가시킨다고 해석하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다른 요인이 비교적 일정하게 통제된다면 수면 확률이 높아진다고 해석하는 쪽이 옳을 것이다.

뇌과학이 수면과 심혈관계가 상호작용하는 큰 그림을 모두 이해하는 데에는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딱 5분만 누웠다 숙제를 하겠다’는 마음속 유혹은 떨쳐버리는 게 낫다고 이번 연구는 말하고 있다.

최한경 대구경북과학기술원 뇌과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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