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비상 걸린 전기차..미 재무부 지침 마련 때가 '마지막 기회'

김영배 2022. 10. 9.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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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산업 미래 직결 '인플레 감축법'
지난 5월 방한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이 서울 그랜드하얏트서울에서 연설하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곁에 서 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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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관계에서 현안으로 떠올라 있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은 국회 국정감사장에서도 주요 소재로 다뤄지고 있다. 반도체와 함께 한국 경제의 양대 축을 이루는 자동차산업의 미래와 직결된 사안이니 당연하다.

인플레 감축법은 ‘북미지역 조립’을 기본 조건으로 삼아 전기차에 세제 혜택을 주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이에 따른 영향에서 북미지역 밖의 유럽연합(EU) 국가나 일본 또한 한국과 다를 바 없는 처지다. 

 재무부 시행령 10~11월 입법 예고 

문제는 실질적인 여건에서 나라별로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법 적용에 따른 형식적 동등함과 달리 한국, 일본, 유럽연합의 입지가 각각 달라 법에 따른 수혜 또한 다르다. 일본이나 독일 등의 일부 자동차회사들은 북미지역에서 이미 전기차 공장을 가동 중이라 세제 혜택 대상에 포함돼 있다.

이와 달리 국내 자동차산업을 대표하는 현대차·기아가 미 조지아주에 지을 30만대 규모의 전기차 전용 공장은 2025년 이후 가동될 예정이다. 한국 쪽의 사정이 급하고 절실한 셈이다. 인플레 감축법에서 북미 최종 조립을 조건으로 전기차(플러그인 포함) 1대당 부여하는 세제 혜택은 7500달러에 이른다. 한화로 1000만원을 웃도는 액수여서 글로벌 완성차 업체 간 주도권 경쟁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수준이다. 더욱이 미국 전기차 시장은 고성장 흐름을 타고 있다.

정부의 대응 전략은 세 갈래다. 미 의회 의원들과 물밑 접촉을 벌여 법안의 문제점을 교정하는 것, 유럽연합·일본과 공조하는 방안, 행정부 차원에서 협력해 문제를 푸는 것이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달 대통령을 수행해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뒤 기자설명회를 열어 밝힌 내용이다.

세 갈래 전략 가운데 앞의 두 가지는 사실상 무용지물로 여겨진다. 의회를 설득해 법을 개정토록 한다는 건 기대 난망이다. 미 의회의 강력한 권한 문제는 제쳐두더라도 법 발효 뒤 한달 남짓 지난 시점이다. 이창양 장관 말대로 ‘잉크도 마르지 않은 법’이다. 미국 내에서 중국 견제라는 대의를 띤 법으로 여겨져 섣불리 개정 시도에 나서기 어렵다는 사정도 있다. 일본이나 유럽연합과 공동전선을 편다는 방안 역시 결실로 이어지기 어려워 보인다. 법의 영향을 직접 받는 자동차업체들이 경쟁 관계임을 고려할 때 협업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남은 한 가지, 행정부 간 협력 방안은 미 재무부의 인플레 감축법 후속 세부 지침 마련 때 한국 쪽의 이익을 최대한 관철한다는 내용이다. 산업계 쪽에서 희미하게라도 기대하고 있는 대목이다. 조상현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법은 대전제이고, 그에 뒤따르는 시행령(미 재무부 지침)안이 10~11월 입법예고 형태로 나오고 공청회도 열릴 텐데 여기에 맞춰 집중적으로 의견을 내고 본격 협상을 해야 할 것”이라며 “비관적으로만 볼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북미지역 조립이라는 기본 요건에 더해지는 전기차 배터리 광물·부품의 세부 요건 마련 과정에서 변화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배터리 광물 요건은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나라에서 40%(내년 기준)를 조달한 경우에 혜택을 준다고만 법에서 정해놓고 있다. 배터리에 들어가는 광물 전체를 놓고 이 비율을 맞추도록 한다는 것인지, 핵심 광물만 추려 대상으로 삼을지, 40% 비율을 광물마다 맞추도록 할지 명확하지 않다. 미 재무부 지침에서 정해질 내용이다. 배터리에 들어가는 광물은 핵심적인 것만 해도 니켈, 리튬, 코발트, 흑연 등 대개 10가지 남짓에 이른다고 한다.

부품 요건 또한 법에선 세부 내용은 제시되지 않은 채 북미지역에서 50%(내년 기준)를 조달한 경우에 혜택을 주게 돼 있다. 전기차의 부품 가짓수가 내연기관차보다는 훨씬 적다 해도 1만가지 남짓임을 고려할 때 광물 요건을 정하는 것 못지않게 복잡하고, 그 때문에 유동적일 것으로 보인다. 법에서 40~50%라는 숫자로 테두리를 정해놓아 제한적이긴 해도 미세하게 숨통은 열려 있는 셈이다. 중국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배터리 광물에 얽힌 요건은 미국 업체들 또한 맞추기 어렵다는 사정도 일말의 기대를 갖게 하는 대목이다.

미 인플레 감축법이 한국에 던진 더 근본적인 숙제는 ‘북미지역 조립’ 요건이다. 광물·부품 요건과 달리 이는 지난 8월 법 발효 때부터 이미 적용·시행되고 있다. 세제 혜택의 기본 전제인 이 문제를 푸는 게 가장 근본 해법이며, 그 실마리로 꼽히는 게 자유무역협정이다.

조상현 원장은 “(미 재무부) 시행령 ‘별표’에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나라의 전기차는 북미산에 준해 적용한다’는 식으로 들어가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 때 섬유류에선 ‘생산공정’ 대신 ‘부가가치’ 기준을 관철해 한국산 원단을 베트남 현지에서 가공한 제품도 관세 혜택을 받도록 했던 것과 비슷하다. 캐나다와 멕시코의 요청에 따라 인플레 감축법안 통과 과정에서 원산지 규정이 ‘미국 내 조립’에서 ‘북미지역 조립’으로 바뀐 게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에 바탕을 둔 것으로 알려져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협정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후신이다.

 산 하나 넘더라도 더 큰 산 남아

허윤 서강대 교수는 “재무부 지침 마련 때 유연성이 발휘될 수 있을 것”이라며 “중국을 ‘비시장경제’라 하듯이 특정 국가를 지칭하지 않고 외교적인 통로로 대외적으로 모순되지 않게 천명하면서 예외 적용을 받을 길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대미 협상 때 인플레 감축법에 국한되지 말고 미 반도체법의 가드레일 조항(중국 관련 투자 제한 안전장치) 같은 사안을 동시에 제기해 주고받는 협상 전략이 필요한 때”라고 덧붙였다.

미국이 자국중심주의 노선에 따라 특정 정책을 일단 들이밀어놓고 양자 협상을 통해 문제를 풀어나가는 행태에 대응해야 하는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다. 인플레 감축법은 그 전형적인 사례로 꼽힌다. 이는 산업 정책의 전면 재개편 필요성과도 맞물려 있다. 인플레 감축법 협상에서 요행히 우리 뜻을 어느 정도 관철한다 해도 주요 산업의 생산 거점이 미국 쪽으로 옮겨간다는 더 근원적인 문제에 맞닥뜨린다. 생산 거점의 이동이 당장 제조업 공동화까지는 아니더라도 국내 투자 위축,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국가 차원의 큰 숙젯거리다.

김영배 선임기자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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