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특집] 가사가 아름다운 우리말 노래

김진형 2022. 10. 9.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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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시는 노래가 되기도 하고, 노래는 또 다른 소설이 되기도 한다. 곡에 실린 가사와 음악의 비중이 그때마다 다르지만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 한 켠에는 뛰어난 문학성을 바탕으로 대중들의 뇌리에 남겨져 있는 곡들이 있다. 그 맥락과 연대기 속에는 원주 출신 작사가 박건호도 있었고, 시인과 촌장의 하덕규도 있었다. 사실 드러난 것보다도 숨겨져 있는 곡들이 더 많을 테지만 말이다. 춘천에서 성장한 한돌은 ‘외톨이’와 같은 면모로 자신의 독특한 위치를 점했다. 영어로 도배가 된 것 같은 힙합 장르안에서도 순수한 우리말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작업들은 꾸준히 이어져 왔다.

576돌 한글날을 맞아 가사가 아름다운 우리말 노래 5곡을 선정했다. 곡 선정 이유와 가사 전문을 수록했다. 한글의 감수성을 살리는 순 우리말로 된 우리 노래를 통해 한글의 즐거움을 음미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용-잊혀진 계절

 

▲ ‘잊혀진 계절’이 수록된 이용의 1집 앨범.

10월이면 어김없이 흘러나오는 노래, 1982년 발표된 이용의 ‘잊혀진 계절’을 빼놓는 아무래도 섭섭하다.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이지만 10월의 마지막 날, 이 노래는 방송과 라디오, 노래방을 통해 계속해서 불릴 것이다.

곡 제목 ‘잊혀진 계절’은 어법상 맞지 않지만 ‘잊힌’, ‘잊어진’이라고 표현하면 입에 잘 붙지 않는다. ‘잊혀진’이라는 말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노래도 없다. 자주 쓰이는 표현일수록 사용의 정당성을 얻을 가능성이 높다. 감정의 전달을 위해 때로는 틀린 표현을 써야 할 때가 있다. 가사의 구체적 이야기는 “뜻모를 이야기”처럼 알 수 없지만 “시월의 마지막 밤”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는 도입부에서 이미 설득이 되는 노래이기도 하다.

가사를 쓴 원주 출신 작사가 박건호(1949~2007)는 1972년 박인희의 ‘모닥불’을 시작으로 명곡 ‘모나리자’, ‘슬픈인연’, ‘무정 부르스’ 등 3000여곡의 가사를 남겼다. 서정주의 서문이 담긴 시집 ‘영원한 디딤돌’을 비롯해 ‘타다가 남은 것들’, ‘고독은 하나의 사치였다’ 등을 펴낸 시인이기도 했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실인가요.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져야 하는 건가요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실인가요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져야 하는 건가요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한돌-앵무산 두더지

 

▲ ‘앵무산 두더지’가 수록된 ‘한돌타래571 가면 갈수록’ 앨범.

‘개똥벌레’, ‘홀로아리랑’, ‘터’, ‘꼴찌를 위하여’로 익숙한 한돌은 춘천에서 성장했다. 그는 노래를 잘 부르는 가수는 아니다. 데뷔 앨범이 ‘가창력 부족’이라는 명목으로 방송에서 금지되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그의 노래에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왕따를 당했던 어린시절의 상처 또한 훌륭한 노랫말로 승화된다. 곡의 서사성도 짙은 편이다.

‘앵무산 두더지(2009)’는 곡이 주는 감동에 비해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마음에 천사가 있다면 악마도 있다. 악마는 내가 가는 길마다 끊임없이 헤살 부린다. 가끔은 유혹에 넘어갈 때도 있다. 하지만 악마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두더지도 있다. “두더지는 아무것도 볼 수가 없”지만 “제 마음은 볼 수가 있”다. 내 마음을 믿고 지킬 수 있다는 것. 그것 하나면 됐다. 가사에 나오는 ‘헤살’은 ‘일을 짓궂게 훼방함’이라는 뜻이다.

‘한돌’은 ‘작은 돌멩이 하나’라는 뜻의 순우리말이다. 그는 곡 ‘뿌리 깊은 나무’ 등을 발표할 정도로 우리 언어와 산천에 대한 관심이 높다. 해당 곡의 원제는 ‘슬픈 한글날’이었다.



내 마음 어딘가에 악마가 있어

내가 가는 길마다 헤살부리네

악마를 사랑하지 않은 죄로

난 그만 길을 잃었네

어느 날 두더지 한 마리가

내 마음 악마 앞에 나타나서

더 이상 괴롭히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았다네

악마 발에 걷어차인 두더지는

온몸이 부서지고 찢어졌다네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두더지는

제 마음을 믿었다네

피투성이 두더지가 다시 일어나

악마를 향해서 달려들었지

하룻강아지가 겁이 없다고

악마는 화를 냈다네

너, 내가 누군지는 알고 있나?

악마는 큰소리로 어흥 했지

그랬더니 두더지 하는 말이,

도대체 너는 누구냐?

깜짝 놀란 악마가 뒷걸음치며

겁 없는 두더지를 노려보는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햇살 소리

악마는 물러갔다네

두더지는 말없이 떠났다네

제 살던 곳으로 돌아갔다네

내 마음에 사랑 하나 심어 놓고

조용히 떠났다네

길 잃고 헤매는 그림자여

이제 다시 일어나 꿈을 지피자

믿음과 사랑의 이름으로

다시 길을 떠나자

두더지는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어

하지만 제 마음은 볼 수가 있지

나도 내 마음을 믿어보자

나를 사랑해 보자


 

 

시인과 촌장-‘좋은 나라’

 

▲ 곡 ‘좋은 나라’가 수록된 시인과 촌장의 앨범 ‘숲’.

시인과 촌장의 3집 앨범 ‘숲(1988)’에 실린 곡으로 홍천 출신 하덕규가 썼다. 2집 앨범까지 함께 작업했던 함춘호의 빈자리는 조동익이 채웠다. 이 시기 하덕규는 기독교 세계관에 의한 사랑과 감사를 음악에 표현하기 시작했고 ‘가시나무’와 같은 곡에서 대중들의 공감대를 형성했다. 지나치도록 시린 기억을 벗어나 ‘좋은 나라에서 만난다면’이라는 가정법은 역설적으로 지금의 현실이 그리 녹록지 않다는 것이다. 정화와 안식의 이미지도 안겨준다. 우리의 삶은 지금도 그렇게 슬픈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기에 ‘좋은 나라’를 지향하는 바람은 계속되고 있다.

‘시인과 촌장’이라는 그룹명에서 시인은 글쟁이 시인(詩人)이 아니라 시민을 가리키는 시인(市人)이라고 한다. 어째서인지 박경리 작가의 소설 ‘시장과 전장’이 생각난다. 지금은 목회자로 활동하고 있는 하덕규는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라는 시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당신과 내가 좋은 나라에서

그곳에서 만난다면

슬프던 지난 서로의 모습들을

까맣게 잊고 다시 인사할지도 몰라요

당신과 내가 좋은 나라에서

그 푸른 강가에서 만난다면

서로 하고프던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그냥 마주보고 좋아서 웃기만 할꺼요

그곳 무지개속 물방울들 처럼

행복한 거기로 들어가

아무 눈물없이 슬픈 헤아림도 없이

그렇게 만날 수 있다면

있다면

있다면

당신과 내가 좋은 나라에서

그 푸른 동산에서 만난다면

슬프던 지난 서로의 모습들을

까맣게 잊고 다시 만날수 있다면

슬프던 지난 서로의 모습들을

까맣게 잊고 다시 만날수 있다면

 

산울림-꼬마야

 

▲ 곡 ‘꼬마야’가 수록된 산울림 김창완의 새로운 여행 앨범.

국내 ‘사이키델릭록’의 시초로 꼽히는 산울림은 ‘개구장이’, ‘산 할아버지’와 같이 어린이를 위한 곡들을 많이 썼다. 산울림의 김창완은 다양한 음악적 시도와 함께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어넣는 작업을 계속해왔따. 불빛과 물방울처럼 예쁜 마음을 간직한 곡 ‘꼬마야’는 서정성이 담긴 짧은 내용의 가사로 고향을 가리킨다. 지금까지 내가 얼마만큼 달려왔는지 어디쯤 온건지 다시 생각하게끔 만든다. 그래서 때로는 “비가 온 날”은 “달빛도 퇴색”되어 “마음도 울적”하다. 어린이들의 합창 부분은 때로는 반칙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김창완은 동시집 ‘무지개가 뀐 방이봉방방’ 펴내는 등 시와 우리말에 관심이 많다. 최근 데뷔 45주년 맞아 진행한 앨범 발표 기자간담회에서는 “시집이 안 팔려도 계속해서 시를 쓰시는, 그런 분들에게 박수를 보낸다”고 했다.

꼬마야 꽃신 신고 강가에나 나가보렴

오늘밤엔 민들레 달빛 춤출 텐데

너는 들리니 바람에 묻어오는

고향빛 노랫소리 그건 아마도

불빛처럼 예쁜 마음일 거야

꼬마야 너는 아니 보라빛에 무지개를

너의 마음 달려와서 그 빛에 입맞추렴

비가 온날엔 달빛도 퇴색되어

마음도 울적한데 그건 아마도

산길처럼 굽은 발길일 꺼야

꼬마야 꽃신신고 강가에나 나가보렴

오늘밤에 민들레 달빛 춤출텐데

너는 들리니 바람에 묻어오는

고향빛 노랫소리 그건 아마도

불빛 처럼 예쁜 마음일 거야

 

키비-소년을 위로해줘

 

▲ 소울 컴퍼니 ‘Soul Company Official Bootleg’ 앨범

랩이라고 해서 한글을 무차별적으로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할 수 있는 말이 많기 때문에 가장 문학적인 장르로 쓰일 수 있다. 가령 소설가 은희경의 경우 아들이 듣던 래퍼 키비의 ‘소년을 위로해줘’라는 곡으로부터 모티프를 얻어 나온 동명의 장편소설을 썼다.

‘소년을 위로해줘’는 청소년기 남자 아이들의 감성을 섬세하게 담아낸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결코 약해보이지 않기 위한 ‘남자스러움’ 같은 것들이다. 자신도 모르게 휩쓸리는 공간, 세대의 감정을 예리하게 표현하는 키비의 가사는 한국적이다. 단순히 영어 사용을 절제하는 것 뿐만 아니라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깨지기 쉬운 감성들을 이야기한다. 진취적인 것이 아니라 내 안의 것을 찾아 떠나는 여행으로 들린다. 수능이 다가오는 계절, ‘고3 후기’라는 곡도 추천한다. 일단 들어보면 이루펀트와 소울컴퍼니의 곡들을 다시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할지도 모른다.



소년을 위로해줘.

언제부턴가 거울을 쳐다보는 습관이 생겼지.

이젠 그게 너무도 익숙하니

꽤 멋진 표정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지을 수 있어.

하지만 내 주위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결코 편하지 않아.

그들이 내게 강요하는 것은 오로지 하나.

‘남자스러움’ 말야.

난 자꾸 그럴수록, 마냥 불쾌한 듯 찡그리다가

나중엔 그냥 웃지.

몸 여기 저기에 검은 실이 올라오면서

내 가치에 대한 저울질이 시작되었어.

난 남자래. 이로써 난 남과 내 것을 가르고,

만만해 보이는 녀석 위로 올라가 밟아야만 해.

그래야 내 안의 것을 찾을 수 있대.

방금 힘들게 스무고개를 넘어온 이 때,

난 ‘아저씨’를 강요당하고 있어.

대체 나를 왜 난 그냥 소년으로 남을래.

내 친구들은 나에게 박력을 요구하고

친밀감의 표시라며 인사로 욕을 하고

그 모습을 보는 나도 어느 새.

머릿 속에 머쓱해지는 느낌만이 머물더라도.

내 친구들은 나에게 박력을 요구하고

친밀감의 표시라며 인사로 욕을 하고

그 모습을 보는 나도 어느 새.

머릿 속에 머쓱해지는 느낌만이.

일단 남자들의 세계 속에서 적응하기 위해서는

“적은 숫자더라도, 적(敵)은 확실히 없앤다”

라고 적은 수첩을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해.

이 말뜻은 아주 단순해.

딱 봐서 약해 보이는 녀석들은 단숨에 물리치되

나보다 강한 녀석과는 나중에 적이 되지 않기 위해

한 수레 위에 올라타야만 해.

(다만, 왜? 다만, 왜?)

단, 순해 보이는 여자들에겐 매너 좋은 오빠로 보이는 것.

이것이 바로 진짜 남자로서 똑바로 살아가는 방법이래.

이를 따라가는 광경이 내 눈에 어지럽게 맺히고만 있는데.

여자가 돈 쓰는 모습은 몹쓸 짓이라고

녹슨 지갑을 꺼내며 내 친구는 얘기해.

하지만 내 귀엔, 짊어질 필요 없는 짐은

그만 내려 놓으라고 말할 기회로 들릴 뿐인데.

내 친구들은 나에게 박력을 요구하고

친밀감의 표시라며 인사로 욕을 하고

그 모습을 보는 나도 어느 새.

머릿 속에 머쓱해지는 느낌만이.

무엇다워야 한다는 가르침에 난 또 놀라.

우린 아마 이렇게 멍들어 가는지도 몰라.

큰 혼란. 물론 나를 이토록 많은 함정 속에

빠트려가는건 바로 나 자신인 걸.

습관적으로 모든 일들에 익숙한 척 가슴을 펴지만

그 속에서 곪은 상처는 아주 천천히 우리들을 바보로 만들어.

우리는 진짜보다 더 강한 척 해야 함으로.

오랫동안 수 많은 핑계를 대곤했네.

내일까지 꼭 마쳐야 하는 일 때문에

내 얼굴에 황급히 씌우던 수치로 가득찬 가면

이런 기분에 오늘은 꼭 술취해야 한다며

스스로를 절벽 끝으로 몰아가던 결국 난

세상을 깨달았다며 내뱉는 허무함.

(너 만은 지금처럼 변하지 말아줘)

여태 나 자신의 노래에 침묵의 시간을 주지 않았네.

뭔가를 얻으려 허우적댈 수록 가난해지는 내 생명의 그릇.

바로 어제 부르던 가사를 몸으로 읊지 않았던 이런 게으름.

몸부림칠수록 내 자신이 더욱 수치스러워.

눈 빛으로, 또 헛된 입술로 자신에게조차 거짓을 말하던 나.

다시 이 노래를 부르며 되찾겠지.

‘처음의 날 만나러 가던 날.’

2005년에 다시 쓴 소년의 이야기.

세상이 선물한 거울을 완전히 닮기 전에

내 그림자를 밟은 오늘을 이제는 기억해.

손을 위로 드는 것, 아니면 감았던 눈을 뜨는 것.

가슴에 심장소리를 여전히 간직하는 당신에게 말해.

이제 당신안의 소년을 위로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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