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귀에게 아빠·약혼자·동료 잃고 끝난 영화, 관객의 선택이 시나리오를 결정했다[현장]
'게임씨어터:선택하는 영화관' 열려
관객의 선택 따라 주인공 운명 갈려
“여러분들이 플레이 하시려는 게임은 인터랙티브 필름 게임입니다. 스토리가 있는 영상을 보시면서 주인공의 행동을 선택지에 따라 결정하고 결말을 만들어가는 방식입니다. 선택지를 선택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9일 오후, 부산 중구 롯데시네마 대영 2관에 입장한 약 160명의 관객은 손바닥만 한 리모콘을 지급받았다. 관객이 모두 착석한 뒤 관계자는 게임 플레이 방식을 안내했다. 게임 중간중간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주어진다. 왼쪽을 선택하려면 1번, 오른쪽을 선택하려면 2번을 5초 안에 눌러야 한다. 선택을 마치면 관객 다수가 선택한 쪽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상영을 시작하기 전, 관계자 안내에 따라 한 차례 시험 선택을 한 뒤 영화 상영이 시작됐다. “폭력과 자살 등을 자세히 묘사해 시청자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다”는 경고문이 화면에 나타났다.
이날 상영된 영상은 <나이트 북>이라는 오컬트 스릴러 장르의 비디오 게임이다. 게임은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 로랄린의 컴퓨터 화면을 보여주며 그의 행동을 따라간다. 로랄린의 집 곳곳에는 아버지를 감시하기 위한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있고, 로랄린이 하는 대화의 대부분은 컴퓨터를 통한 화상통화로 이뤄진다.
로랄린은 원격으로 근무하는 영어-프랑스어 동시통역가로 현재 임신을 했으며 결혼을 앞두고 있다. 약혼자는 르푸스섬을 개발하기 위한 출장을 갔고, 로랄린은 아버지를 혼자 돌본다. 아버지는 방에서 혼자 ‘르푸스섬의 저주’에 대해 중얼거리거나 벽에 머리를 찧는다. 로랄린은 거실에서 통역 업무를 한다. 그는 르푸스섬에서 쓰던 고대 언어인 ‘칸나어’를 읽을 줄 안다. 그에게 칸나어로 된 책을 구입하려는 프랑스인 고객의 통역 의뢰가 들어온다. 영어를 통역하는 동시에 자신이 사려는 칸나어 책이 진짜인지 확인해달라는 것. 이 일을 하던 중 로랄린은 칸나어로 책 한 페이지를 소리내어 읽는데, 이 때문에 집에 르푸스섬의 정령이 소환된다. 아버지의 몸속에 들어간 정령은 로랄린과 주변인의 안위를 위협한다.
관객들은 다음과 같은 문항에서 선택을 했다. 방에서 날뛰는 아버지에게 줄 식사에 ‘진정제 타기’와 ‘진정제 타지 않기’. 약혼자에게 집에서 일어난 일을 ‘솔직하게 말하기’ 혹은 ‘거짓말 하기’. 이날 관객들은 31개의 문항에 답했고, 선택은 차례로 통역회사 동료, 아버지, 약혼자의 죽음으로 이어졌다. ‘배드 엔딩’에 관객들은 다소 허무한 얼굴로 극장을 나섰다. 이 게임은 15가지의 결말과 220개가 넘는 다른 장면들을 가지고 있다. 로랄린과 배 속 아이가 죽는 결말도, 모두가 살아남는 결말도 있다.
커뮤니티비프 게임씨어터 관계자는 “오늘 상영이 배드 엔딩이긴 하지만, 저주의 정체와 이야기의 구성 대부분이 파악되는 정도까지는 나아갔다”며 “저주의 원인을 찾아가는 문항에서 관객 대부분이 적극적인 선택을 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관객들의 선택 중 ‘상냥하게 말하기’ ‘거칠게 말하기’ 등 사소한 태도를 결정하는 데에서는 표 차이가 별로 나지 않았지만,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전화를 받는다’ ‘받지 않는다’ 혹은 ‘e메일을 열어 본다’ ‘열어보지 않는다’ 등의 선택지에서는 많은 관객이 호기심을 해소하는 선택을 했다”고 전했다.
오경민 기자 5k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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