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히잡 반대 시위' 나간 여성들, 석연찮은 죽음 잇따라

김서영 기자 2022. 10. 9.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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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의 쿠르드 자치구 술라이마니야에서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쿠르드계 여성 마사 아미니의 사망을 규탄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AP연합뉴스

이란의 히잡 반대 시위에 참가한 여성들의 석연치 않은 죽음이 잇따르고 있다. 이들의 사망을 둘러싼 의혹과 분노는 4주 차에 접어든 반정부 시위의 지속적인 동력이 되고 있다고 8일(현지시간) 가디언이 보도했다.

니카 샤카라미(16)는 지난달 20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히잡 반대 시위에 참가한 이후 실종됐다. 친구에게 “경찰에게 쫓기고 있다”고 한 이후였다. 이란 정부는 그가 밤늦게 한적한 건물에 들어간 점, 몸에 총알 자국이 없던 점 등을 들어 건물에서 떨어져 자살했다고 밝혔다. 샤카라미의 이모 역시 국영TV에 출연해 “니카가 건물에서 추락해 숨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가족은 그가 살해된 것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샤카라미의 어머니 나스린 샤카라미는 딸의 죽음에 관해 거짓으로 진술하라는 압력을 받았다고 미국의 지원을 받는 매체인 라디오 파르다에 밝혔다. 강제 심문과 더불어 다른 가족이 살해되리라는 협박까지 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니카의 사망 기록을 보면 두개골에 심각한 손상이 발견됐고, 두부를 반복적으로 가격당한 흔적이 나왔다. 몸과 팔다리는 온전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정부가 열흘 동안 니카의 죽음을 가족에게 알리지 않은 채 가족의 동의 없이 영안실에서 꺼내 매장했다”고 주장했다. 보안군에게 구타와 성폭행을 당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니카 샤카라미. 트위터

사리나 에스마일자데(16) 또한 지난달 23일 알보르즈주에서 열린 시위에 참여한 후 사망했다. 생전에 그는 여행하거나 음악을 듣는 모습, 이란에서 여성의 권리에 관한 이야기 등을 유튜브에 게재했다. 국제앰네스티는 보안군이 곤봉으로 그를 구타했고, 그의 가족들 또한 심한 괴롭힘을 당하며 침묵을 강요당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란 당국은 에스마일자데가 5층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그가 정신병력이 있었다고 밝혔다.

하디스 나자피(22)의 가족은 그가 지난달 21일 카라지시에서 시위를 하던 중 보안군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가 그의 아버지에게 딸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말할 것을 요청했다고 BBC페르시안은 전했다.

이들의 사망을 둘러싼 의혹이 활발히 공유되면서 앞서 지난달 16일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끌려가 사망한 마흐사 아미니(22)처럼 시위의 상징이 됐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아미니 역시 구타와 가혹행위를 당했다는 유가족의 주장과 기저질환으로 인한 사망이라는 정부의 입장이 대립했다. 이란 정부는 당초 예정보다도 늦게 최근에야 아미니의 부검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7일 정부가 밝힌 아미니의 공식적 사인은 대뇌 저산소증으로 인한 다발성 장기부전이다. 기저질환으로 인해 구금 중 넘어진 후 사망했다는 것이다.

국제사회는 이란의 잔혹한 진압을 연일 비판하고 있다. 인권단체에 따르면 현재까지 시민 185명이 사망했으며, 이들의 평균 연령은 20세로 집계됐다. 이란인권단체(IHR)는 “이란이 오래도록 증거를 숨기고, 거짓말하고, 조작해 온 역사를 감안할 때 샤카라미의 죽음에 관한 정부의 설명은 믿을 수 없다. 유엔의 감독 하에 독립적인 조사를 하지 않는 이상 증거들은 정부의 책임을 가리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미니의 사망이 촉발한 히잡 반대 시위는 반정부 시위로까지 번져 4주 차에 접어들었다. 이란 정부와 시위대, 특히 학생들은 대립을 이어가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은 지난 8일 테헤란의 알자흐라 대학을 방문해 “꺼져”를 외치는 여학생 시위대와 맞닥뜨렸다. 이날 라이시 대통령은 학생과 교수진 앞에서 ‘폭도’(시위대)를 파리에 비유하는 시를 읊었다. 테헤란에서 시위에 참여하러 가던 한 대학생은 “그들이 우리를 죽이고 체포할 수 있지만, 우리는 더이상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 친구들이 감옥에 있다. 어떻게 침묵을 지킬 수 있겠나”라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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