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 압해도∼암태도 연결 천사대교 건너 오도선착장서 요트타고 신나는 질주/안좌도와 퍼플섬 반월도·박지도가 퍼플교로 연결/마을·도로·꽃 온통 보라의 세상
퍼플. 다른 색은 허용하지 않는다. 물살이 찰랑찰랑거리는 바다 위를 가르며 여심을 유혹하는 파스텔톤 보라색으로 장식한 퍼플교. 그리고 다리를 건너서 만나는 퍼플섬의 아담한 마을 지붕과 마을회관, 카페, 둘레길, 꽃 심지어 고압선 철탑과 쓰레기통까지. 천사대교를 넘자 그곳은 온통 퍼플이다.
◆천사대교 건너 만나는 섬들의 세상
천사와 퍼플. 요즘 전남 신안을 상징하는 두 가지다. 신안은 우리나라 최고 섬부자. 섬 3000여개 중 30%가 신안 바다에 흩뿌려져 있는데 모두 1004개. 그래서 신안은 ‘천사섬’이 됐다. 그런데 사실 실제 섬은 이보다 좀 많은 1025개 정도. 신안군이 얼마 전 물에 잠기는 아주 작은 섬들을 제외하고 1004개를 신안의 공식 섬으로 선언했다. 여행자들에게는 ‘천사섬’이라 더 신비롭게 다가온다. 목포에서 압해대교를 건너 만나는 첫 번째 섬 압해도와 서쪽 암태도를 연결하는 다리가 요즘 핫한 천사대교다. 높이 195m의 거대한 주탑들이 총 길이 7.22㎞의 다리를 떠받친 풍경은 마치 천사의 날갯짓 같다. 차창을 열어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천사대교를 질주한다. 양옆으로 크고 작은 섬들이 올록볼록 솟아오른 풍경은 신안이 섬부자임을 실감케 한다.
암태도 오도선착장에서 요트를 타면 천사대교와 섬들이 꾸미는 풍경을 더 가까이서 즐길 수 있다. 초란도와 암치도 인근 바다를 둘러보는 60분 코스로 오후 6시30분쯤 출발하는 일몰·야경투어가 인기 높다. 선착장으로 돌아오니 1004를 ‘1♡4’로 표현한 조형물에선 땡볕에 시커멓게 그을리고 이마엔 세월의 주름이 깊게 팬 할머니가 수줍은 소녀처럼 웃는다. 단체 관광 온 어르신들은 좀 더 활짝 웃어보라며 서로 인생샷을 찍어 주느라 왁자지껄 활기가 넘친다.
◆보라로 소통하는 퍼플교·퍼플섬
퍼플섬은 압해도∼암태도∼팔금도∼안좌도를 차례로 지나야 그 모습을 드러낸다. 안좌도가 거느린 남쪽 섬 반월도와 박지도가 퍼플섬이고 안좌도(두리)∼박지도∼반월도∼안좌도(단도)를 연결하는 다리 해상보행교 3개가 퍼플교다. 총길이 1842m(두리~박지 547m, 박지~반월 915m, 반월∼단도 380m)로 3개 다리만 둘러봐도 약 1시간 정도 걸린다. 두 섬의 마을로 들어가 여유 있게 구석구석 걸어 보려면 3~4시간 정도는 필요하다. 박지도 둘레길이 4.2㎞(약 60분), 반월도 둘레길이 5.7㎞(약 90분)에 달하기 때문이다. 두리, 단도에 모두 매표소가 있어 출발점을 입맛대로 고르면 된다.
반월도로 이어지는 단도 매표소 퍼플카페에서 보라아이스크림 한 개 먹고 출발한다. 다리를 건너는 여행자들도 온통 보라색으로 꾸며 다리와 사람이 구분되지 않는다. 티셔츠는 기본이고 하의, 모자, 신발, 우산 모두 퍼플이다. 입장료가 성인기준 5000원이지만 보라색 아이템을 착용하면 무료란다. 몰랐다. 미리 정보를 챙겨올걸. 보라색 아이템으로 치장하고 싶다면 매표소 옆 퍼플숍에서 구입하면 된다. 스카프, 가방, 양말, 토시, 손수건은 무료입장 제외다.
그런데 왜 보라일까. 평생을 박지도에서 산 김매금 할머니의 ‘걸어서 육지로 나오고 싶다’는 소망을 접한 신안군이 2007년 두리선착장∼박지도∼반월도를 연결하는 나무다리를 놓으면서 퍼플교가 시작됐다. 섬에는 왕도라지꽃, 꿀풀꽃 등 보라색 꽃이 지천으로 피는 점에 착안, 2018년부터 신안군과 주민들이 힘을 합쳐 다리와 지붕 등을 보라색으로 칠해 특색 있는 섬으로 꾸며나갔다. 또 박지도 4000여평에 라벤더 4만주, 아스타 2만7000주를 심어 1.8㎞ 보랏빛 섬길을 만들었다. 반월도 1.5㎞ 섬길에도 보라색 루드비키아 6만주, 접시꽃 6만주가 심어져 퍼플섬이 탄생했다. 덕분에 2021년 12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제1회 최우수 관광마을 공모전(UNWTO)’에서 최우수 관광마을로 선정됐다.
바다를 가로질러 반월도를 잇는 보라색 다리 문브릿지는 생각보다 예쁘다. 원색에서 벗어나 살짝 파스텔톤으로 꾸민 덕분인데 색감을 아주 잘 골랐다. 반월도에 도착하니 마을 지붕들이 모두 보라색이고 집들을 연결하는 도로도 퍼플로 칠해졌다. ‘I PURPLE YOU’. 아니나 다를까, 마을 곳곳에 이런 조형물들이 보인다. 아이 퍼플 유, 즉 ‘나는 너를 보라해’란 뜻이다. 이 말을 이해하려면 먼저 방탄소년단(BTS)과 팬클럽 아미(Army)를 알아야 한다. 멤버 뷔가 보라색이 상징인 팬클럽 아미(Army)를 사랑한다는 의미를 담아 만든 신조어로 즉 ‘PURPLE=LOVE’란 뜻이다. 여기에 무지개의 마지막 색이 보라색인 것처럼 ‘끝까지 사랑하자’는 의미를 더했다. 퍼플섬은 뷔가 신조어를 만들기 전에 보라로 꾸몄지만 BTS가 다녀간 곳마다 ‘성지 순례길’로 변신하기 때문에 신안군이 이를 그냥 둘 리 없다.
반월도는 ‘반드리’로도 불리는데 섬모양이 반달처럼 생겨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55가구 100여명이 사는 안마을 입구엔 주민들이 평안을 기원하며 제사를 지내는 당숲이 있고 400년 수령의 팽나무와 느릅나무가 군락을 이룬 풍경이 아름답다. 해안도로를 따라 나무심기가 한참인 걸 보니 반월도는 더 예쁘게 변신할 것 같다. 반월도에는 어린왕자가 살고 있다. 박지도 연결 다리 입구에 보라색 반달 조형물에 머플러를 휘날리는 어린왕자가 사막여우와 함께 앉아 박지도를 바라본다. 반월도 카페 퍼플 아일랜드 옆 보라색 공중전화 부스 옆에도 어린왕자가 사막여우에 앉아 있다. 반월도 둘레길은 돌탑공원∼어깨산정상∼만호바위∼절골재∼안마을을 지나 제14회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된 반월당숲으로 이어진다.
박지도로 들어서자 보라민박 담장에는 보라색 송엽국이 피었다. 언덕을 오르면 보라색 고압선 철탑과 운치 있는 소나무 아래는 보라색꽃이 지천이다. 아스타로 꾸민 꽃의 정원으로 꽃말은 추억과 신뢰. 연인들은 꽃밭으로 들어가 셀피를 찍어 아름다운 추억을 남기는 시간이다. 퍼플숲길을 지나 라벤더 정원을 거쳐 바람의 언덕에 서면 퍼플교와 광활한 갯벌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