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콜라에 원래는 진짜 '코카잎'이 들어갔다고? [브랜드의 탄생]

류선우 기자 2022. 10. 9.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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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통치약'의 시대와 코카콜라의 탄생
남북전쟁이 막 끝난, 1886년 당시 미국에는 독특한 문화가 있었습니다. 성분이나 효능이 입증되지 않은 약들이 '신비의 명약'이라는 이름을 달고 불티나게 팔린 겁니다. 전쟁 이후 아픈 사람은 많은데 제대로 된 의학 지식이나 의사는 부족하다 보니 나타난 현상이었죠. 그때 가장 인기 있던 상품 중 하나가 '뱅 마리아니'라는 제품이었습니다. 프렌치 와인에 코카 잎을 담가서 만든 건데, 이게 워낙 잘나가다 보니 모방제품들이 줄줄이 나옵니다.

그중 하나가 코카콜라의 전신으로 평가받는 '프렌치 와인 코카'였습니다.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약을 만들어 팔던 존 펨버턴이 뱅 마리아니의 주성분에 콜라 열매 추출물을 첨가해 만든 제품이었는데요. 이걸로 막 돈을 벌어보려던 찰나, 금주법이 도입됩니다. 그래서 프렌치 와인 코카에서 술을 제거하고 설탕을 넣어 만들어낸 게 코카콜라입니다. 이후 코카인 성분이 문제가 되자 1903년에는 코카인 성분도 완전히 제거하게 됩니다.
 

펨버턴은 코카콜라 시럽을 만든 지 2년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생전에 다양한 사람들에게 코카콜라의 사업 지분을 넘겼는데요. 애틀랜타의 사업가였던 아사 캔들러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캔들러는 나머지 지분들을 다 사들여 1891년 코카콜라의 완전한 소유권을 갖게 됩니다. 이후 코카콜라 컴퍼니라는 회사를 차리고 공격적인 마케팅에 들어가는데요. 그중 하나가 '무료 쿠폰 뿌리기'였습니다. 1894년부터 20년간 850만 개에 달하는 쿠폰이 음료와 교환 됐을 정도였죠. 그렇게 단돈 5센트에, 맛있으면서 힘도 난다는 음료는 미국 전역에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코카콜라 시스템과 정체성 구축
그러던 어느 날 코카콜라를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킬 엄청난 기회가 제 발로 찾아옵니다. 코카콜라의 수익성을 본 두 명의 변호사가 캔들러에게 코카콜라를 병에 담아서 팔 수 있는 권리를 달라고 찾아온 거죠. 오늘날 '코카콜라 시스템'이라 불리는 프랜차이즈 방식, 보틀링 시스템의 시작입니다. 이 시스템은 이후 코카콜라가 미국을 넘어 세계를 제패할 수 있게 한 핵심 동력인데요. 보틀링 업체가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코카콜라는 비용이나 리스크, 인력과 생산 등 책임으로부터 벗어나 있어 적은 비용으로 빠르게 시장을 확대할 수 있게 됩니다.
 

한편, 코카콜라가 승승장구하기 시작하자 역시나 모조품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상표권 침해는 물론, 수익과 이미지에도 타격이 있었죠. 이에 골머리를 앓던 코카콜라가 만들어낸 게 오늘날의 콜라병 모양입니다. 코카콜라는 디자인 공모전을 열고 '어두운 곳에서 만져도, 깨진 조각들만 보고도 코카콜라 병인 줄 알 수 있는' 디자인을 찾겠다고 합니다. 이때 선정된 작품이 바로 우리가 아는 지금의 '컨투어 보틀'로 코코아 열매의 모양에서 따온 병 디자인입니다. 보기에도 예쁘고 특징도 확실한 이 병은 수많은 모조품을 물리쳤을 뿐 아니라 코카콜라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펩시와의 전쟁 속 코카콜라의 흑역사
코카콜라에도 흑역사는 있습니다. 코카콜라보다 12년 늦게 출발한 만년 2인자 펩시 때문에 곤욕을 치른 건데요. 코카콜라가 수십 년간 사랑받은 이유 중 하나가 5센트라는 가격을 50년 넘게 유지했기 때문인데, 펩시는 1934년 아예 반값 콜라를 내놓습니다. 코카콜라가 5센트에 6온스를 제공하는데, 펩시는 같은 가격에 12온스를 제공한 거죠. 이를 계기로 펩시는 업계 2위 자리를 공고히 하게 됩니다. 다만 코카콜라의 아성을 무너뜨릴 수는 없었죠.
 

이후 펩시는 '펩시 제너레이션'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내며 '코카콜라는 구시대적이고 우리는 젊고 새롭다'는 전략을 펼치기 시작합니다. 그 정점을 찍은 게 바로 펩시 챌린지입니다. 1970~80년대 펩시는 미국은 물론 다른 나라에서까지 대학가와 쇼핑몰 곳곳을 다니며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합니다. 사람들의 눈을 가린 뒤 코카콜라와 펩시콜라를 마시게 한 후 더 맛있는 콜라를 고르게 한 거죠.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펩시가 압도적으로 많은 선택을 받은 거죠. 펩시는 이걸 광고로 내보냅니다.
 

이에 코카콜라는 업계 맏형답지 않게 크게 발끈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해당 광고 이후 400만 달러를 들여 '뉴코크'라는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는데요. 전 세계에서 단 2~3명만 알고 있다는 코카콜라의 신성불가침 영역, 제조법에 손을 댄 것입니다. 그동안 최고라고 자부했던 맛을 바꾸니 자가당착에 빠질 수밖에 없었고, 배신감을 느낀 소비자들은 들고일어납니다. 그렇게 소비자들의 반대는 이른바 '뉴코크 아웃' 운동으로까지 번지는데요. 결국 코카콜라는 79일 만에 백기를 들었습니다. 단종시켰던 코카콜라를 '클래식'이라는 이름을 붙여 다시 판매하기 시작한 거죠. 이후 뉴코크는 조용히 사라집니다.
 

코카콜라는 소비가 미덕으로 불리던 1920년대 미국 사회의 소비자본주의라는 흐름을 타고 급성장했습니다. 코카콜라가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이유이기도 하죠. 하지만 이제 세상은 다른 가치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13년 연속 글로벌 브랜드 가치 평가 1위를 차지하던 코카콜라는 2013년 애플에 왕위를 빼앗기기도 했죠. 탈물질주의로의 시대 변화 속 코카콜라는 아성을 지켜나갈 수 있을까요?

(자세한 내용은 동영상을 시청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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