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대교 폭발에 우크라 "푸틴 생일 축하"..기념우표 발행도

박병수 2022. 10. 9.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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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우크라 침공]'붕괴 크림대교' 일부 통행 재개
"러시아 군수지원 타격 입을 듯"
단순 사고인지, 테러인지 불분명
막사 테크놀로지스(Maxar Technologies)가 제공한 위성 영상. 크림반도와 러시아를 잇는 ‘케르치 다리’(Kerch Bridge)가 파괴된 모습으로 일반차량 다리(아래쪽)의 양방향 중 한쪽 방향 다리는 완전히 폭삭 가라앉았고, 열차 다리(위쪽)에선 연료탱크 칸에서 불이 나고 있다. AP 연합뉴스

러시아와 크림반도를 잇는 핵심 교통로인 해상 교량이 8일(현지시각) 트럭 폭발로 일부 파괴돼 고전 중인 러시아군의 군수 지원에 차질이 예상된다. 우크라이나는 “기념우표를 발행하겠다”며 기뻐했고, 러시아는 테러경계령을 강화했다.

러시아 전국테러대책위원회는 화물 트럭 한 대가 이날 아침 6시7분 ‘케르치 다리’(Kerch Bridge·또는 크림 다리)에서 폭발한 뒤 불길이 위쪽 철길을 달리던 연료탱크 열차 7칸에 옮겨 붙었다고 밝혔다. 이 사고로 일반 차량이 이용하는 다리의 일부 구간이 파괴되어 통행이 통제됐다. 현장을 찍은 사진을 보면, 다리 양방향 통행로 중 한쪽 다리 두 칸이 완전히 무너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반대쪽은 크게 손상되지 않았다.

러시아 당국은 이 사고로 3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또 조사 결과 다리 위에서 폭발한 화물차의 소유주는 남부 러시아 크라스노다르 지역에 사는 주민으로 밝혀졌다고 밝혔다. 러시아 당국은 이 주민의 집을 압수수색하고 화물차 운행 기록을 살피고 있다.

러시아 당국은 일반 차량용 다리는 경우 10시간 만에 임시로 일부 통행을 재개했다고 밝혔다. 현재 큰 피해를 입지 않은 한쪽 방향 다리에서 양방향 차량을 교대로 지나가게 하고 있다. 철로용 다리는 불이 붙은 연료탱크 열차를 철거한 뒤 다시 운행을 재개할 예정이다. 하지만, 한쪽 다리의 상판이 완전히 내려 앉은 상태여서 다리가 완전 제 기능을 발휘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에 파괴된 케르치 다리는 흑해와 아조우해를 잇는 케르치 해협 위에 놓인 19㎞ 길이의 해상 교량이다. 유럽에서 가장 긴 다리로 유명하다. 러시아가 2014년 3월 크림반도를 강제병합한 뒤 러시아와 크림반도를 육로로 직접 연결하기 위해 건설했다. 2018년 5월 개교식 때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직접 트럭을 몰고 다리를 건넌 바 있다.

이번 폭발이 단순 사고인지, 누가 의도적으로 벌인 테러인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우크라이나는 줄곧 이 다리를 무너뜨리겠다고 위협해왔지만, 자신들은 이번 사건과 무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러시아에서도 우크라이나의 소행이 아니냐고 의심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당국은 아직 우크라이나를 배후로 공식 지목하진 않고 있다. 지난 2월 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크림반도는 우크라이나 남부를 침입한 러시아군의 군수지원을 하는 핵심 배후 구실을 해왔다. 러시아가 다리 폭발로 통행과 운송에 제한을 받으면 그렇지 않아도 좋지 않은 전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18년 5월15일 개통된 크림대교를 직접 트럭을 몰고 건너려고 운전석에 앉고 있다. EPA 연합뉴스

러시아 국방부는 성명을 내어, 남부 우크라이나를 점령한 러시아군에는 기존의 육로와 해로를 통해 충분히 군수지원이 이뤄질 수 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 주의 당국자 키릴 스트레모소프는 소셜미디어에 “군수지원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지만 크림반도 물자공급이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헤르손주는 크림반도와 곧바로 연결된 우크라이나 땅으로 최근 러시아에 의해 합병이 선언됐다.

우크라이나 전문가들은 이런 장담과 달리, 러시아군의 군수지원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전략연구소(UISS)의 미콜라 비엘리에스코우는 케르치 다리가 러시아 침략군에게 대체하기 어려운 전략 요충이라고 밝혔다. 그는 “러시아군이 러시아와 헤르손주 등 우크라이나 점령지를 연결하는 해안 지역을 점령하고 있지만 이 지역의 교통 사정은 열악해 군수지원을 케르치 다리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의 싱크탱크 ‘채텀 하우스’의 제임스 닉스티도 이번 다리 폭발이 “러시아군의 사기를 더욱 떨어뜨리고 우크라이나군이 기세를 올리는 효과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크림반도의 주지사 세르게이 아크시오노프는 영상 메시지를 통해 “크림공화국에 연료와 식량이 충분하다는 것을 주민들이 알았으면 좋겠다”며 “연료는 한 달분, 식량은 두 달분 이상이 있다”고 말했다. 민심이 동요할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고 나선 것이다.

남녀 한 쌍이 8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케르치 다리’(Kerch bridge)가 폭발하는 장면을 형상화한 대형 시각물 앞에서 키스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불행에 즐거워했다. 올렉시 다닐로프 우크라이나 국가안보보좌관은 소셜 미디어에 사고로 불타는 케르치 다리와 할리우드 여배우 마릴린 먼로가 “대통령님,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합성한 영상을 올렸다. 공교롭게 사고 전날은 푸틴 대통령의 일흔 번째 생일이었다. 미하일로 포돌랴크 보좌관도 “(러시아가 저지른) 불법적인 것은 모두 무너져야 하며, 훔쳐간 건 모두 우크라이나에 반환되어야 한다”고 썼다. 우크라이나 우체국은 기념우표를 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는 지난 4월 러시아 흑해함대의 기함인 모스크바함이 격침됐을 때도 기념우표를 냈다.

러시아는 발끈했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텔레그램에서 “민간시설 파괴에 대한 우크라이나 정권의 반응은 테러주의자로서 그들의 속성을 보여준다”고 비난했고, 레오니트 슬루츠키 러시아 하원 국제문제위원회 의장도 “이번 사건이 우크라이나 책임이라면 결과가 임박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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