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와 벌이 빚는 컬트와인 어떤 맛일까 [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최현태 2022. 10. 9.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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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축복받은 ‘와인의 땅’ 나파밸리 화산폭발과 나파 강 침식으로 형성/창고에서 소규모로 시작된 컬트 와인, 미국 와인 명성 세계적인 반열에 올려/와인앤수지애스트 올해 퀸테사 2019 빈티지에 100점 만점 부여/와인메이커 레베카 와인버그 인터뷰

퀸테사 2019
서서히 땅거미가 내리는 해발고도 859m의 미국 캘리포니아주 바카 마운틴(Vaca mountain). 하늘과 산자락을 온통 붉게 물들이는 저녁노을은 장엄한 한편의 대서사시로 펼쳐지고. 계곡을 따라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은 낮의 뜨거운 열기를 빠른 속도로 집어 삼킨다. 밤이 부끄러운 태양은 곧 산그늘로 숨어들 테지. 그 아름다운 순간을 간직하려 앞에 놓인 와인 잔을 들어 입술을 적신다. 바카 마운틴만큼 웅장하고 강렬한 와인이라니. 해가 지고도 오랫동안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노을처럼, 길게 이어지는 컬트 와인의 여운. 노을마저 사그라지자 가슴엔 고요한 평화만 남는다.
미국 와인 산지
◆컬트 와인과 캘리포니아 와인의 역사

컬트 와인(Cult Wine). 주로 1980년대 초반 미국에서 등장한 아주 소규모로 생산되는 고품질을 와인을 뜻합니다. ‘숭배’를 뜻하는 라틴어 컬투스(cultus)에서 비롯됐죠.  작은 창고에서 시작됐기에 개러지(Garage) 와인으로 불리죠. 부띠끄 와인, 블루칩 와인도 컬트와인을 말합니다. 스크리밍 이글(Screaming Eagle), 할란 이스테이트(Harlan Estate) 등이 대표적인 컬트와인입니다. 미국의 저명한 평론가 로버트 파크가 몇몇 컬트 와인에 100점 만점을 주기 시작하면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됩니다. 워낙 소량이기에 아무나 살수 없고 구매자 메일링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이들에게만 소량 배분됩니다. 

퀸테사 2016
이처럼 지금은 고품질의 와인들이 생산되지만 미국 와인은 여러 차례 아주 어려운 시기를 거쳤답니다. 미국 와인의 역사는 1600년대로 동부지역에서 시작됩니다. 영국 식민지 시절 초기,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온 영국 이주민들이 와인 생산을 시작했지만 대실패로 끝납니다. 왜 일까요. 바로 포도나무 뿌리를 썩게 만드는 필록세라 때문입니다. 미국 토양에 가득한 필록세라를 유럽의 포도 품종들이 도저히 견딜 수 없었죠. 어쩔 수 없이 미국 토착 품종들로 와인을 만들었지만 마실 수 없을 정도로 풋내가 너무 강했습니다. 그렇게 200여년의 암흑기를 지난 뒤 아메리카와 유럽 품종을 교배한 품종으로 개량을 거듭한 결과 1854년 미국을 대표하는 품종 콩코드(Concord)가 탄생합니다. 
캘리포니아 와인산지
반면 서부 캘리포니아에는 빠르게 와인산업의 붐이 일어납니다. 1700년대 후반 멕시코에 살던 스페인 이주민들이 유럽 양조용 포도를 전파했는데 풍부한 한낮의 일조량 등 포도재배에 적합한 기후 덕분에 포도나무가 잘 자랍니다. 여기에 1800년대 중반 골드러시가 더해지면서 더 많은 유럽 품종들이 몰려왔고 북부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와인산업이 크게 번창합니다. 

그렇게 잘 나가던 미국 와인산업은 1918년에 또 한차례 휘청거립니다. 미국 전역에 발효된 금주법때문이죠. 생산자들은 큰 타격을 받았고 1933년 금주법이 폐지된 뒤에도 복잡한 규제때문에 한동안 생산자들 애를 먹게 됩니다. 그러다 동부와 서부를 연결하는 대륙횡단열차가 개통되면서 미국의 와인산업은 본격적인 부흥기에 접어들게 된답니다. 원산지 통제 규정인 프랑스 AOC(AOP)나 이탈리아 DOC와 비슷한 미국의 AVA(American Viticultural Area·미국 포도 재배 지역)는 187곳이며  와인 소비 세계 3위, 와인 생산 세계 4위로 성장했습니다. 

1976년 파리의 심판 현장
미국 와인을 대표하는 캘리포니아 와인은 사실 처음에는 북쪽 소노마 카운티에서 남쪽 샌디에고에 세워진 수도원 21곳의 미사주로 사용되던 와인이랍니다. 1890년대 캘리포니아 주립대학(UC Davids)에 연구시설이 만들어지고 포도재배·양조학 과정이 개설되면 비약적으로 품질 향상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당시만 해도 미국 소비자들은 단맛이 도드라지는 저가 테이블 와인을 마셨는데 이를 ‘제너릭 와인(Generic Wine)’라 부릅니다. 1950년 중반부터 품종 위주의 드라이한 ‘버라이탈 와인(Varietals Wine)’이 인기를 끌면서 소노마와 나파밸리에 많은 와이너리들이 속속 세워집니다. 1933년 시작된 갤로(Gallo), 1966년 세워진 몬다비(Mondavi)가 캘리포니아 와인의 중흥을 이끈 양대산맥이죠. 이어 보르도 그랑크뤼 와인들과 나파밸리 와인들이 경합한 유명한 1976년 ‘파리의 심판’에서 미국 와인들이 완승을 거두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됩니다. 
나파밸리 와인산지
◆억겁의 세월이 쌓은 미네랄 떼루아

나파밸리는 나파 강이 서쪽 마야카마스(Mayacamas) 산맥과 동쪽 바카 산맥 사이를 침식시켜 만든 계곡이랍니다. 아주 오래전 아틀라스 피크와 비더 마운틴의 화산 폭발로 용암 흘러내리면서 다양한 광물질들이 차곡차곡 쌓여 지금의 미네랄이 풍부한 토양을 만듭니다. 전 세계에 토양 종류의 약 절반 정도가 나파밸리에서 발견될 정도로 다양한 토양으로 이뤄졌습니다. 나파밸리를 대표하는 품종은 카베르네 소비뇽. 고품질 카베르네 소비뇽이 재배되는 곳중 하나가 러더포드(Rutherford) AVA랍니다. 북쪽 세인트 헬레나(St. Helena) AVA, 남쪽 오크빌(Oakville) AVA 사이에 있는 나파밸리 핵심 산지죠.

퀸테사 포도밭 전경
퀸테사 포도밭 지형
이곳은 화산 퇴적물과 해양 퇴적물이 섞인 자갈과 모래로 구성됐습니다. 포도가 늦게 익는 만생종인 카베르네 소비뇽은 자갈토양에 가장 잘 자랍니다.  자갈은 낮에 태양의 열기를 품었다가 해가 진 뒤에도 포도나무에 온기를 제공하기 때문이죠. 프랑스 보르도 좌안의 유명 와인산지들은 대부분 카베르네 소비뇽을 베이스로 만드는데 지롱드 강이 전달한 자갈 토양으로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러더포드에는 보리우 빈야드(Beaulieu Vineyard), 러더포드 힐(Rutherford Hill), 잉글눅(Inglenook) 등 유명 프리미엄 와이너리가 포진해 있습니다.

그중 단 한종류의 컬트 와인만 생산하는 곳이 퀸테사(Quintessa) 입니다. 와인메이커 레베카 와인버그(Rebehah Wineburg)를 줌으로 만나 인터뷰하며 2019 빈티지의 매력을 탐구합니다. UC 데이비스에서 포도재배와 카베르네 소비뇽 페놀 조성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은 그녀는 미국 캘리포니아와 오리건, 이탈리아, 뉴질랜드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습니다. 또 이탈리아 수퍼투스칸의 대명사 오르넬라이아(Ornellaia) 어시스턴트 와인메이커, 러더포드에 있는 스태글린 패밀리 빈야드(Staglin Family Vineyard)의 양조학자(Enologist), 부켈라 와인즈(Buccella Wines) 와인메이커를 거쳐 2015년 퀸테사에 합류했습니다. 

퀸테사 와인메이커 레베카 와인버그
◆야생화와 벌이 빚는 컬트와인

가장 흥미로운 점은 퀸테사 와인 발효과정입니다. “퀸테사는 야생효모만 사용해요. 수확때 포도밭에서 효모를 배양하죠. 항아리에서 발효하는 한국의 김치랑 비슷하다고 할까요. 세라믹 용기에 포도와 야생화를 조금 넣으면 벌이 달려들어 양조에 필요한 자연효모가 만들어진답니다.  5일 정도도 걸리는데 그 효모를 조금 떠서 발효 탱크에 넣으면 포도의 발효가 시작됩니다.”

퀸테사는 와인을 유기농으로 생산하기로 결정하고 이미 1996년부터 일체의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바이오 다이나믹으로 포도를 재재하고 있습니다. 이는 떼루아를 가장 잘 반영할 수 있는 양조방식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빈야드 안에 양조시설을 갖추고 있어요.  효모는 인위적으로 추가하지 않고 야생 효모만 씁니다.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와 콘크리트 탱크를 사용하는데 포도의 특징에 따라 어떤 탱크를 사용할지 결정해요.  콘크리트 탱크는 온도가 천천히 변하고 숨을 쉬기 때문에 화산재가 풍부한 떼루아에서 자라는 포도와 매칭이 잘된답니다. 매력적인 피니시와 쵸크(chalk) 풍미도 더해지죠. 떼루아 특징을 다채롭게 반영하기 위해 포도밭도 세밀하게 나눠 관리한답니다.”

퀸테사 2019
와인 컨설팅 대가인 마스터 블렌더 미셸 롤랑이 퀸테사 양조 과정을 지원합니다. 2019 빈티지는 카베르네 소비뇽 91%, 카베르네 프랑 4%, 메를로 2%, 까르미네르 2%, 쁘띠베르도 1%를 블렌딩했습니다. 22개월의 프렌치 오크 숙성(새오크 60%)과 1년의 병숙성을 거쳐 지난 9월 1일 공개됐는데 벌써 큰 관심을 끌고 있답니다. 지금껏 생산된 퀸테사중 최고의 빈티지로 꼽힐정도로 떼루아 특징을 투명하게 담아냈다는 찬사가 쏟아집니다. 와인앤수지애스트가 올해 퀸테사 2019에 100점 만점을 부여했을 정도입니다. 겨울에 충분히 비가 오고 여름에는 건조하면서 평년보다 조금 서늘했는데 싹이 잘 텄고 완숙이 균일하게 이뤄질 정도로 생장조건이 완벽에 가까웠기 때문이라는군요. 
퀸테사
바카 마운틴처럼 장엄하고 거대한 골격이 느껴질 정도로 와인의 구조감이  탄탄하고 강렬하면서도 벨벳처럼 부드럽고 탄닌을 지녔고 우아한 피니시는 길게 이어집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복합적인 향들이 어우러지는데  레드체리, 다크체리 등 검붉은 과일향과 말린 허브, 다크 초콜릿, 카시스, 백리향, 계피, 삼나무향이 짭조름한 미네랄과 잘 어우러지고 잘 숙성된 와인에서 느껴지는 타르, 담배, 숲향, 흙내음 같은 3차향도 따라옵니다. 지금 마시기도 좋지만 20년 정도 숙성잠재력을 지닌 것으로 평가됩니다. 

“퀸테사는 밀도가 촘촘한 과일과 미네랄 풍미, 더스티한 풍미가 강하게 느껴지는데 이는 나파밸리에서 독보적이고 독특한 특징입니다. 바카 마운틴의 화산토와 300만년전 드레곤 레이크가 만들어낸 자갈과 점토로 이뤄진 충적토 덕분에 이런 독창적인 퀸테사의 스타일이 만들어집니다.” 

퀸테사 설립자 아구스틴 후네우스
퀸테사를 설립한 이는 놀랍게도 칠레 산티아고 출신의 아구스틴 후네우스(Agustin Huneeus). 1960년 칠레 대표 와이너리인 콘차이토로(Conchy Toro)에서 와인업계에 입문했는데 1971년 콘차이토로를 칠레에서 가장 큰 와이너리로 성장시킨 주역입니다. 칠레의 군사 쿠데타 시절 뉴욕으로 이민, 씨그램의 와인 책임자로 일한 뒤 캐이머스 빈야드(Caymus Vinyard)의 포도밭을 매입해 퀸테사를 설립합니다. 현재 미국에서 6개 브랜드, 칠레에서 1개 브랜드를 생산합니다.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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