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컬처 신드롬, 퓨전 국악으로 이어갈까
모노드라마-콘서트 《광-경계의 시선》 주목
(시사저널=조용신 뮤지컬 평론가)
최근 우리나라 음악인들이 대중음악의 중심지인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미국 '빌보드 200'에서 1위를 기록한 K팝 아티스트만 해도 BTS, 슈퍼엠, 스트레이 키즈, 블랙핑크 등 네 팀이나 된다. 영화와 드라마에서도 아카데미상과 에미상 등을 연달아 석권하며 점차 그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는 중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일 수 있다'는 명제 앞에 반신반의했던 사람들조차 최근 한국인들이 만든 문화가 국경을 넘어 지구촌 곳곳에 전달되고 있다는 사실에 고무되고 있다. 이제는 우리의 어떤 문화가 수출될지 기대감 역시 커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가장 한국적인' 국악 장르 역시 젊은 뮤지션들에 의해 재해석되고 현대화되는 과정을 거쳐 점차 내외국인들에게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젊은 뮤지션 등장으로 '가장 한국적인' 국악도 현대화
2017년 9월, 미국의 유명한 공영 라디오 채널인 NPR 음악방송의 간판 프로그램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Tiny Desk Concert)'에 BTS보다 먼저 출연한 한국 음악그룹이 있었다. 장르를 넘나들며 폭넓은 활동을 이어간 어어부프로젝트 출신 베이시스트 장영규를 주축으로 경기민요, 서도민요 등 전통 민요와 무속음악 등을 기반으로 곡을 만든 6인조 '민요 록' 밴드 '씽씽밴드'다. 장영규(베이스), 이태원(기타·건반), 이철희(드럼), 소리꾼 이희문, 신승태, 추다혜가 그 멤버다.
이들 중 연주자 장영규, 이태원, 이철희, 이희문은 2014년 7월 국립극장 KB하늘극장에서 열린 '여우樂 페스티벌' 《제비 여름 민요》라는 공연에서 열 명이 넘는 소리꾼과 함께 열정적인 퍼포먼스를 펼쳐 큰 호응을 얻었다. 이후 인원을 정비하고 6인조로 출발해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했다. 2018년 멤버들의 개인 활동으로 인해 해산할 때까지 민요를 통한 새로운 유희의 발견을 목표로 한국 문화의 현대화와 세계화까지 이끈 국악계 젊은 스타 그룹으로 기록됐다.
약 4년 남짓 짧고 굵게 활동했던 기간 동안 그들의 퍼포먼스와 음악에 빠져든 많은 팬은 국악이 주는 새로운 즐거움을 찾게 됐다. 그중에는 장영규가 결성한 이날치밴드가 2020년 발표한 힛트곡 《범 내려온다》도 있었다. 판소리 《수궁가》를 각색한 이 노래는 한국관광공사가 제작한 유튜브에서 현재까지 4895만 뷰를 기록 중이다. 씽씽밴드의 팬들은 지상파 예능 프로와 음악 프로에도 등장한 소리꾼 이희문과 신승태의 활동에도 관심을 보였다. 두 사람은 TV에서 대중가수들과 종종 협업 무대를 선보이며 대중과의 접촉을 늘려 나갔다.
씽씽밴드의 유일한 홍일점 소리꾼이었던 추다혜는 2019년 서도민요(평안도·황해도 지역 민요)를 구사하는 새로운 국악 록밴드 '추다혜차지스'(추다혜 보컬, 이시문 기타, 김재호 베이스, 김다빈 드럼)를 결성해 전방위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2020년 발매한 첫 정규앨범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로 지난해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알앤비&소울 노래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추다혜는 지난해 두산아트센터의 DAC 아티스트에 선정돼 현재 예술성과 대중성이 강화된 콘서트를 열고 있는데, 관객들에게 국악에 대한 새로운 감각의 확장을 실현해 주고 있다.
추다혜차지스의 이번 공연은 《광-경계의 시선》이란 제목을 가진 모노드라마-콘서트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기본적인 콘서트 구성에 보컬리스트가 스토링텔링 해설을 곁들여 진행하는 특별한 콘서트다. 연극이나 뮤지컬 관점에서 좀 더 살펴보면 일종의 모노뮤지컬적 구성을 하고 있다. 단독 화자가 주인공이 돼 극 중 캐릭터(마틸다)를 연기한다는 점이나 대사의 내용인 한 남자 무당의 직업에 대한 개인적이고도 사회적인 이야기들을 자연스럽고 스스럼없이 이어나가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뮤지컬 《헤드윅》이나 《텔미 온어 선데이》처럼 단독 주인공이 자전적인 이야기를 펼치면서 이를 위해 모든 곡을 새로 작곡한 것을 전형적인 모노뮤지컬이라고 할 수 있다. 추다혜의 경우 새롭게 작곡한 8곡과 자신들이 기존에 발표한 5곡을 혼합한 셋리스트를 선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모노뮤지컬적 양식을 가진 모노드라마-콘서트라는 표현이 더 적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에서 '드라마'에 해당하는 내용은 무엇일까. 굿이 등장하는 무가(巫歌·무당의 노래)와 밴드 사운드를 결합한 이 형식과 조응하는 내용은 무속인 할아버지를 따라 여섯 살에 신내림을 받게 된 한 남자 무당의 인생사다. 무당이 남자냐 여자냐 하는 점은 특별히 중요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통계적으로 남자 무당이 그 집단 속에서는 소수라는 점에서 남자 무당은 마이너 여정을 가고 있는 캐릭터다. 무당이란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인간들로부터 관심을 받는 것 같지만 정작 그들의 관심은 신에게만 쏠려 있기에 무당이란 메신저로서의 원초적인 공허함이 있다는 것이 캐릭터가 가지는 핵심 정서다.
독특한 경계의 혼합 양식 도입해 눈길
흥미로운 것은 추다혜가 스스로를 남자 무당 캐릭터에 빙의한 연기자가 되기보다는 무당 직업을 가진 그를 엿보며 그의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기능적으로 들려주는 이야기꾼으로서 '가짜 무당 마틸다'라고 자신을 소개한다는 점이다. 게이나 트랜스젠더가 아닌 뮤지컬 배우들이 헤드윅에 빙의해 '연기'하는 뮤지컬 방식보다는 외로운 무당의 내면을 설명해 주고 관객들로 하여금 그 고독을 공감하고 함께 위로하게 하는 '이야기꾼'으로서 콘서트를 이끌고 간다. 따라서 이 작품의 주인공은 그 누구도 아닌 추다혜차지스다. 이렇듯 국악 콘서트에서 자신의 신변잡기나 곡 설명을 짧은 멘트로 들려주는 일반적인 콘서트 방식이 아닌, 이러한 독특한 경계의 혼합 양식은 이들이 지향하는 사이키델릭 국악 펑키록의 혼종 특징과도 조화를 보인다.
오늘날 국악계도 젊은 아티스트들의 활동으로 현대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 중장년 세대는 일제강점기 이후 소멸되지 않도록 해놓은 악보화·기록화된 국악, 지정된 무형문화재를 통해 국악을 배웠다. 하지만, 예술이란 책에 쓰인, 어떤 고정된 전형일 수는 없다. 추다혜차지스로 대표되는 이러한 새로운 국악 아티스트들이 국악의 '전형' 이전에 대중 속에 존재하는 국악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끝없는 탐구와 새로운 도전을 해나가도록 이를 응원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카리스마와 에너지가 넘치는 추다혜차지스의 공연은 10월12일까지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에서 계속된다.
Copyright ⓒ 시사저널(http://www.sisajournal.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한동훈 신드롬 어찌할까”…與 내부서도 ‘웅성웅성’ - 시사저널
- 10년 젊게 사는 법 ‘시계 거꾸로 돌리기’ - 시사저널
- 《오징어 게임》, 이변 넘어 역사가 되다 - 시사저널
- 《전국노래자랑》 김신영, ‘신의 한 수’ 될까 - 시사저널
- 무시할 수 없는 ‘걷기 운동’의 3가지 효과 - 시사저널
- 건강 해치는 ‘수면부족’…몸이 보내는 경고로 알 수 있다 - 시사저널
- 코로나 확진 직장인 34%, 못 쉬고 일했다 - 시사저널
- “9급 공무원 월급 168만원…어찌 사나요?” - 시사저널
- “나이트서 본 ‘쥴리’, 김건희 여사였다” 주장한 50대 여성 재판행 - 시사저널
- 월드컵 ‘베스트11’ 사실상 확정됐다 - 시사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