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인간] ⑩ "100년을 살아보니..마음만은 이팔청춘"

홍인철 2022. 10. 9.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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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년생)가 노인층의 핵으로 진입하면서 노인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65세 이상의 노인 비율이 2018년 14.4%로 '고령 사회'에 들어선 데 이어 2025년 20.6%로 '초고령 사회'에 들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100세 이상 역시 1990년 459명에서 2020년 5천581명으로 10배 이상 증가했다. 수명이 점점 길어져 '고령 국가'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고령화 시대를 사는 노인에게 돈과 건강만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젊은 층과 세대 갈등, 외로움과 고독, 가족·사회와 분리되는 소외 등을 들여다보아야 할 시점이다. 연합뉴스는 노인이 존엄성을 지키며 행복한 삶을 위해 개인과 사회, 국가가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15편에 걸쳐 인문학적 관점에서 살펴보자고 한다. ①∼④편은 한국 노인의 실상과 실태를, ⑤∼⑩편은 공동체에 이바지한 노인들을, ⑪∼⑮편은 선배시민 운동과 과제 등을 싣는다.]

우리나라의 100세 이상 장수 노인 2만 명 중 한 명을 만나기로 한 것은 '평범한 농부가 100년을 살아낸 힘은 어디에서 왔는가'에 대한 궁금증과 경외감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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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완식 할아버지 "움직이고 긍정적 마음이 장수 비결"
"이웃들과 정 나누며 산 것이 보람된 기억으로 남아"
100년의 삶을 풀어놓는 신완식 할아버지 [촬영 홍인철]

[※ 편집자 주 =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년생)가 노인층의 핵으로 진입하면서 노인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65세 이상의 노인 비율이 2018년 14.4%로 '고령 사회'에 들어선 데 이어 2025년 20.6%로 '초고령 사회'에 들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100세 이상 역시 1990년 459명에서 2020년 5천581명으로 10배 이상 증가했다. 수명이 점점 길어져 '고령 국가'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고령화 시대를 사는 노인에게 돈과 건강만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젊은 층과 세대 갈등, 외로움과 고독, 가족·사회와 분리되는 소외 등을 들여다보아야 할 시점이다. 연합뉴스는 노인이 존엄성을 지키며 행복한 삶을 위해 개인과 사회, 국가가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15편에 걸쳐 인문학적 관점에서 살펴보자고 한다. ①∼④편은 한국 노인의 실상과 실태를, ⑤∼⑩편은 공동체에 이바지한 노인들을, ⑪∼⑮편은 선배시민 운동과 과제 등을 싣는다.]

전기 자전거 충전하는 신완식 할아버지 [촬영: 홍인철]

(군산=연합뉴스) 홍인철 기자 =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가을 들녘의 타오르던 석양은 서서히 빛을 낮추고 있었다.

'이제 오나 저제 오나'하며 한참을 기다리니 전기 자전거 한 대가 동네 모퉁이를 찬찬히 돌아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올해 딱 100살을 맞은 신완식 할아버지는 기자를 보자 냉큼 페달에서 다리를 떼 바닥에 정지시켰다.

달포 전쯤 한번 만났을 뿐인데도 단박에 알아보고 반가워했다.

자전거 뒤편에는 시내에서 산 타이어 공기 주입용 '펌프'가 실려있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일반 자전거를 타고 자주 나들이를 했지만, 기력이 떨어진 지금은 전기 자전거가 발 노릇을 한다며 혼자 사는 집으로 이끌었다.

1922년생인 그는 전북 군산시 대야면에서 나고 자라 지금껏 살고 있다.

우리나라의 100세 이상 장수 노인 2만 명 중 한 명을 만나기로 한 것은 '평범한 농부가 100년을 살아낸 힘은 어디에서 왔는가'에 대한 궁금증과 경외감에서다.

그는 "참 긴 세월이었고, 많은 일이 있었다"면서 "가족과 이웃들이 있어 지금까지 견딜 수 있었고, 앞으로도 10년은 거뜬하게 근방은 마실 다닐 수 있을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 건강은 어떤가

▲ 아픈 데는 없다. 뜀박질까지는 못하지만 걷는 건 자신이 있다. 계단 오르내리는 일도 힘들지 않다. 작년에는 시내까지 나가 월명공원이나 은파유원지에서 걷기를 했다. 지금은 아침마다 40여 가구가 사는 동네를 한 바퀴씩 돈다. 육체가 고달프고 힘들다고 생각한 것은 4∼5년 전쯤부터다. 그전에는 여기저기 다니면서 이팔청춘처럼 살았다.

-- 무얼 하며 하루를 보내는지

▲ 주로 10㎞ 남짓 떨어진 시내 노인복지관에 간다. 그리기나 만들기 등 뭔가를 배우니 그때만큼은 외롭거나 심심하지 않다. 집에서 가만히 앉아있거나 잠만 자면 뭐 하겠나. 무엇보다 점심이 해결되고 물리치료도 받을 수 있으니 멀지만 자주 간다. 이제는 내 집같이 편안하다.

노인복지관 다니는 신완식 할아버지 [촬영: 홍인철]

-- 생계는 어떻게 꾸리나

▲ 인근에 사는 며느리들이 가끔 반찬을 해다 주고 시골이어서 사시사철 푸성귀가 풍부해 돈 들어갈 데는 별로 없다. 매달 노인 연금 32만원을 받아 공과금도 내고 시내버스도 탄다. 10여 년 전 아내가 지병으로 사망해 집 안 청소는 도우미 아주머니가 가끔 해주신다.

-- 광복과 전쟁 등 근·현대사와 함께 했는데

▲ 참, 긴 세월이었다. 초등학교 문 앞에도 못 가봤지만, 이 들녘에서 평생 농사지으며 5남매를 키워냈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 등 각종 투표 횟수만도 100번은 될 것 같다. 언제 누구를 찍었는지 가물가물하다. 한국전쟁 때는 이틀 걸어서 부안의 깊은 산속에 숨어 들어간 적이 있는데, 거의 먹지도 못한 채 두 달 넘게 버텨야 했다.

전기 자전거 타고 시내 다녀오는 100세의 신완식 할아버지 [촬영: 홍인철]

-- 가장 고통스러웠거나 행복했던 때는 언제였는지

▲ 인물이 좋아서인지 사방에서 결혼하자고 난리였다. 25살 때 동네 4∼5명의 여자 중에서 참한 처자를 골라 결혼했고, 다섯 아이가 태어나고 키우는 재미에 살았다. 10여 년 전 아내가 지병으로 죽었을 때가 가장 고통스러웠다. 실감이 나지 않았고 미안함과 허망함이 뼛속까지 밀려들었다.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병석의 아내 옆에서 순간순간 열중하는 것뿐이었다. 그럼에도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는 없는 무력감에 한동안 괴로웠다. 갓난 아이때 돌아가신 부모의 명(命)까지 살라는 하늘의 뜻인지 이만치 사는 것도 행복이다. 일흔 살에 접어든 큰아들도 노인이 돼 이제는 같이 늙어 가는 상황이다.

-- 100세를 살아보니 어떤가

▲ 나도 내가 100살까지 살 줄 몰랐다. 동전의 양면처럼 오래 산다는 것은 고통과 축복이다. 요양원에 가는 또래나 후배들보다 건강한 덕에 축하 인사를 자주 받곤 한다. 하지만 늙으니 어딜 가도 사람이 안 붙는다. 그래도 한평생 한 마을에서 희로애락을 같이 한 이웃들이 아는 체해주고 말을 건넨다.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살려고 가끔 앞집 옆집 뒷집을 일부러 들러 사는 이야기를 하고 음식을 나눠 먹고 친하게 지낸다.

-- 청년 혹은 중장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는데

▲ 젊었을 땐 먹고 살아야 하니 죽을 만큼 일만 했다. 나와 가족만 생각한 때다. 가족도 중요하지만, 손에서 일을 놓은 20여 년 전부터는 날 끝까지 지켜봐 주는 옆 사람들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살았을까 싶다. 지금도 우리 집 처마의 저녁 불이 꺼져있으면 이웃들이 먼저 걱정하며 전화로 안부를 확인하고, 그제서야 그 집 불도 꺼진다. 젊고 늙고에 관계없이 친구나 이웃과 소통하면 팍팍하고 지친 삶에 따듯한 빛이 퍼지는 거 같다.

-- 살면서 보람 있는 일은 무엇이었나

▲ 평생 농사만 짓고 살아서 사실 사회문제나 정치 같은 건 잘 모른다. 단지 몸과 맘이 건강해 이웃을 위해 살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다. 옆집의 무너진 담벼락을 보수해주고 혼자 사는 앞집 할머니 논에 가서 모내기도 하고 억울한 일 당한 뒷집 대신해 면사무소에 쫓아가 일을 봐준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그냥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조금 나눴을 뿐인데 뿌듯하고 보람찼다.

-- 장수비결은 뭐라고 생각하나

▲ 간단하다. 적당히 먹고 무엇이든 (활동)하면 된다. 또 남 위에 서려는 욕심을 버리고 이웃들과 함께 공동체에서 자기 몫만큼 하면 된다. 그러면 자기 존엄성도 높아져 장수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 자신과 사회에 바라는 것은 없으신지

▲ 수입이라고는 노인 연금 32만원이 전부인데, 매달 10만원가량이 시내버스 요금으로 빠져나가니 빠듯하다. 100세 노인 중 실제 버스 타고 돌아다닐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나. 장수 노인 우대 차원에서 시나 정부가 대중교통 요금을 절반만 받거나 무료로 해줬으면 좋겠다. 그러면 그만큼 남아 돼지고기라도 사 먹을 수 있지 않으냐. 개인적으로는 자식이나 남에게 부담이나 피해 안 주도록, 또 신체적 고통 없이 줄곧 건강하게 살다가 슬그머니 눈을 감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아무 일도 안 하고 '난 늙었다' 하고 그냥 가만히 있으면 송장이나 마찬가지 아니겠나. 이제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한다. 단지 계속 움직이고 싶다.

신완식 할아버지가 썰어놓은 여주(왼쪽)와 헛간에 있는 일반 자전거 [촬영: 홍인철]

소쿠리에 얌전하게 썰어놓은 여주가 가을볕에 잘 말라가는 동안 담 옆 헛간에는 얼마 전까지 타고 다녔다던 자전거가 주인을 잃은 채 덩그러니 서 있었다.

20명도 안 되는 군산시 전체 100세 노인 중 자전거를 타고 아욱·부추·머위 등을 심어 놓은 텃밭을 돌보며 욕심부리지 않고 물 흐르듯 살아가는 그는 육체도, 마음도 축복받은 듯했다.

이보다 행복한 노년이 있을까 싶었다.

두 번의 짧은 인터뷰로 감히 그의 총체적인 삶을 알 수는 없었지만, 그는 늙어가는 게 아니라 황금 들녘의 벼처럼 익어가는 듯했다.

텃밭 돌보는 신완식 할아버지 [촬영: 홍인철]

ich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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