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마진국] ‘노벨상’ 그녀를 만든 그 날의 ‘사건’…영화 ‘레벤느망’

강푸른 2022. 10. 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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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 그 주의 시사 이슈와 관련된 영화를 소개합니다.

그러나 에르노는 그녀의 나이 예순이던 2000년에야 이 '사건'에 대한 글을 완성합니다.

하지만 활자가 영 눈에 들어오지 않으신다면, 작품을 각색한 영화 <레벤느망> 도 에르노를 만나는 선택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의사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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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레벤느망’(2021)의 주인공 ‘안’은 별 생각 없이 병원을 찾았다가 임신 사실을 알게 된다. 출처 IMDB.


※일요일 아침, 그 주의 시사 이슈와 관련된 영화를 소개합니다. 영화 내용이 포함돼있습니다.

"1963년 10월, 루앙에서 생리가 시작되기를 일주일 이상 기다렸다. (…) 10월 말, 생리가 시작되리라는 생각을 버렸다."

지난 6일, 올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프랑스 소설가 아니 에르노(82)의 수필 <사건>의 도입부입니다. 인용한 구절이 보여주듯, 에르노 자신의 임신 경험을 담았는데요. 당시 스물세 살이던 에르노는 임신 진단서를 찢어버리고,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끝까지 가겠다"며 임신 중단을 결정합니다.

에르노는 '직접 겪지 않은 일은 쓰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습니다. 1970년대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 국내에만 무려 17종의 책이 출간됐을 정도로 다작하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에르노는 그녀의 나이 예순이던 2000년에야 이 '사건'에 대한 글을 완성합니다. 만약 이것에 대해 쓰지 않고 죽는다면 잘못이 될 거로 생각했다는데요. 에르노는 자신을 세상에 '내던진' 사건이 바로 당시의 임신 중단 수술이라고 표현합니다.

84쪽밖에 되지 않는 짧은 수필인 만큼, 노벨상 수상자의 필력은 어떤지 직접 확인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활자가 영 눈에 들어오지 않으신다면, 작품을 각색한 영화 <레벤느망>도 에르노를 만나는 선택지가 될 수 있습니다. 레벤느망 역시 '사건'을 뜻하는 프랑스 단어인데요. 미국에서도 '해프닝'이란 제목으로 개봉해 원제를 그대로 옮겼습니다.

임신 석 달 만에 ‘안’은 중절 수술을 해 줄 여성을 어렵게 만난다. 출처 IMDB.


여기서 말하는 '사건'은 물론 임신을 뜻합니다. 하지만 에르노는 의도적으로 그 단어를 쓰지 않습니다. 영화의 주인공 '안'에게도 임신은 빨리 해치워야 하는 숙제, 혹은 갑자기 당한 교통사고와 같습니다. 집에 도둑이 들거나 보이스피싱을 당하면 뒷수습부터 나서는 것처럼, 영화 속 '안'은 의사에게 임신 사실을 듣자마자 어떻게든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나 의사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합니다. 당신을 도우면 나까지 감옥에 간다는 거죠.

68혁명도 오기 전인 보수적인 프랑스에서 여성은 임신 중절에 동의하기만 해도 처벌을 받았습니다. 시술을 추천하고 도와준 사람들은 물론이고, 임신 중절의 이로움을 알리거나 피임을 선전하기만 해도 처벌 대상이었다고 합니다. 모두가 인정하는 수재인 '안'은 책의 표현대로 '어제의 모범생'에서 하루아침에 '곤경에 처한 여자'가 됩니다. 검색할 인터넷도 없고, 대놓고 주위에 도움을 청할 수도 없는 시대, 의사의 말처럼 '안'은 그저 임신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걸까요?

영화 속에서 '안'은 거의 카메라를 바라보다시피 하는 각도로 똑똑히 말합니다. "언젠간 아이를 갖고 싶지만, 인생과 맞바꾸고 싶진 않아요. 그럼 아이를 원망할 것 같아요. 사랑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수업에 통 집중하지 못한 이유를 추궁하는 교수에겐 "여자만 걸리는 병"에 걸렸다며 이렇게 덧붙입니다. "집에 있는 여자로 만드는 병이요."

문학을 사랑하고 글쓰기를 열망하는 대학생 '안'은 여기서 학업을 멈추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습니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 외에도 자신에겐 목표가 있다고 똑똑히 얘기하죠. 목숨을 건 수술을 받더라도 진정한 자신대로 살겠다는 각오로 가득 찬 인물, 그녀가 바로 살아남아 프랑스 여성 작가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아니 에르노입니다. 만일 그녀가 주위의 설득대로 아이를 낳기로 하고 학교를 그만두었다면, 스웨덴 한림원이 찬사를 보낸 용감하고 예리한 작가는 존재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https://news.kbs.co.kr/special/danuri/2022/intro.html

강푸른 기자 (strongblu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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