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5초만에 완판' 4050女 반한 '영미투어' 뭐길래

강예신 2022. 10. 9. 08:2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윤영미 전 SBS 아나운서 인터뷰
직접 기획·진행하는 '영미 투어', 4050 여성 사이서 화제
국내여행 에세이 '여, 행하라' 집필
윤 아나운서. /사진= 윤영미 아나운서 제공

국내 최초 지하철 여자 아나운서, 국내 최초 프로야구 여자 캐스터, 1세대 아나테이너 등 수많은 ‘최초’ 타이틀을 보유한 베테랑 방송인. 38년간 아나운서로 활동하고, 현재는 전방위 방송인이자 여행 큐레이터로 화려하게 변신한 윤 아나운서를 만났다. 올해로 61세인 그는 제주살이를 하면서 방송도 하고 책도 쓰는, 열정 부자 ‘N잡러’로 특히 여성 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다. 2년 전부터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참가자를 모집해 기획부터 진행까지 전 일정을 함께하는 ‘영미 투어’가 인기몰이 중이다. 빠를 땐 5초, 길어야 3분에 마감된다.

실제 영미 투어의 많은 참가자들은 윤 아나운서를 만나 보기 위해 신청했다고 한다. 어떻게 시공을 초월해 자신의 삶을 에너제틱하게 끌고갈 수 있는지,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면서도 아름다운 곳들을 찾아서 즐길 수 있는지 그 원동력을 궁금해 한다. 아이가 고3이다, 용기가 안 난다, 갖가지 이유로 영화 한 편 보기도 힘든데 남편, 아이에, 시댁까지 챙기는 윤 아나운서가 주도적으로 사는 비결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여행에 동참한다.

“주로 40~50대 여성들이 혼자 와요. 제가 혼자 오라고 해요. 그래야 자신을 털어낼 수 있으니까. 밤에 우리끼리 와인도 마시고 바닷가에서 촛불 켜놓고 얘기도 해요. 우는 분들도 많아요. 그 자리에서 자신의 아픔을 꺼내요. 남편과의 갈등, 이혼한 얘기, 자식에 대한 고민 등 대한민국 여자들이 겪는 그런 어려움들 많잖아요. ‘결정을 못하고 있을 때 용기를 얻었다, 내가 혼자 여행 온 건 평생 처음이다, 그동안 남편 아이들에 묶여서 못 왔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겠다’ 같은 결단도 하게 되고. 서너 번씩 오는 분들도 있어요. 영미 투어 커뮤니티도 형성이 됐어요. 우리나라 중년 여성들이 자신의 아픔을 털어내고 용기를 얻는 그런 여행이라고 생각해요.”
윤 아나운서의 여행 에세이 '여, 행하라' /사진= 윤영미 아나운서 제공

수십 년 동안 방송을 진행하던 윤 아나운서는 어떻게 ‘영미 투어’를 총괄하는 여행 큐레이터로 반전 변신을 할 수 있었을까. 방송을 위해, 또 개인적으로 국내 구석구석을 다니며 많이 알려지지 않은 50여 곳을 그의 시선으로 담은 에세이로 쓴 게 계기가 됐다. 펜션, 술집, LP바 등 그가 좋아하는 장소에 대한 이야기다. 인제의 속삭이는 자작나무숲을 왜 좋아하는지, 곰배령의 펜션 주인과 어떤 좋은 관계이고 어떤 대화를 통해 힐링하는지 등이 담겨있다. 윤 아나운서는 여태 쓴 세 권의 책 중 이 책을 쓸 때 가장 행복했다고 한다.

“3년 전에 ‘여, 행하라’라는 책을 썼어요. 중의적인 표현이에요. 'OO여, 행하라'는 뜻도 있고 ‘OO, 여행하라'는 뜻도 되죠. 우리가 보통 여행하면 ‘돈 많이 드는데’, ‘시간 내야 되는데’하면서 주저하죠. 그러지 말고 그냥 문밖을 나서서 떠나라는 의미를 담았어요.”
책 쓰기 위해 찾은 제주에 반해 정착까지
윤 아나운서의 제주 '무모한 집' /사진= 운영미 아나운서 제공

윤 아나운서는 특정 지역을 책에 담고 싶어 제주로 향했다. 제주는 관광객으로서만 알고 있었던 그는 책을 쓰기 위해 혼자 오랫동안 머물렀다. 동쪽이 아직 덜 발달돼 있어 리조트, 호텔, 대형 카페 같은 곳이 많지 않아 제주의 속살을 가장 많이 볼 수 있고, 바다 색깔이 가장 아름다웠다. 태풍 온 다음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알게 되니 태풍도 그다지 무섭지 않았다. 그렇게 제주 동쪽에 집을 얻게 됐다. 벚꽃 나무가 아름답던 세화리 ‘체리 집’에서 2년 세를 살고, 지금은 옆동네 종달리로 이사해 정착했다. 돌 창고가 있고 마당이 있는 제주 전통 가옥을 7년 정도 렌트를 해 리모델링을 했고, ‘무모한 집’이라고 이름 지었다.

윤 아나운서의 제주 '무모한 집' /사진= 윤영미 아나운서 제공
“제가 너무 무모한 인생을 사는 것 같아서요. 그 집을 7년 계약해서 억대가 넘게 들었거든요. 그 자체가 되게 무모한 거죠. 또 나이 60에 공간을 옮긴다는 건 상당히 무모한 일일 수도 있거든요. 근데 공간이 바뀌면 시간이 바뀌고, 시간이 바뀌면 사람이 바뀌고, 사람이 바뀌면 인생이 바뀌는 거 같더라고요. 지금 제주에 간 지 3년 됐는데, 삶이 너무 풍요로워졌어요. 무모한 집은 저의 쉼의 장소이기도 하면서 문화적인 기획 공간으로 활용할 생각이에요. 거기서 앞으로 한 6, 7년 정도 살 계획입니다.”
무모했기에 얻을 수 있었던 것들
제주살이 중인 윤 아나운서. /사진= 윤영미 아나운서 제공

윤영미의 무모한 삶은 초등학교 3학년 시절 강원도 홍천에서 아나운서라는 꿈을 갖게 되면서부터 시작했다. 시골 출신에 키도 작고, 화려하지도 않고, 학벌이 뛰어난 것도 아닌 상황에서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해왔다는 그는 창덕여고 3학년 때 국내 최초로 지하철역 여자 아나운서를 하게 된다.

“청량리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다녔는데 남자 역무원만 방송을 하길래 궁금해서 역장님을 찾아갔어요. 왜 여자 목소리가 지하철역에서 안 나오느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아직 한국에서 한 번도 여자가 지하철에서 방송한 적이 없대요. 위험한 공간이어서 여자가 방송하면 재수가 없다고. 제가 하겠다고 말씀드렸고, 한 달 넘게 청량리역에서 여고생의 신분으로 지하철역 방송을 했어요.”

‘최초’를 향한 그의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아나운서 시험에 계속 떨어지자 당시 춘천MBC 사장에게 10장 가까이 편지를 써 시험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합격하면서 본격적인 아나운서 생활을 시작했다. SBS에 와서는 나이도 많고 외모가 화려한 편이 아니었기 때문인지 TV출연의 기회가 자주 오지 않았다. 그는 국내 여자 아나운서 최초로 야구 중계를 시작했다. 그의 무모한 도전이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 프로야구 캐스터, 최초 아나테이너 등 그를 여자 아나운서계의 ‘최초의 아이콘’으로 급부상시켰다.

그는 결혼마저도 무모했다. 여자 아나운서들이 모든 걸 갖춘 남자들과 결혼을 하는 분위기에서 영세한 기독교 출판사의 말단 직원과 결혼했다. 당시 둘은 통장에 돈이 하나도 없는 상태였지만, ‘내가 벌면 되지’하는 마음으로 직진했다. 남편은 목사가 됐고, 지금까지도 윤 아나운서는 자신이 혼자 벌어 10년째 두 아들의 미국 유학비를 감당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50세가 되던 해 SBS를 퇴사하고 프리랜서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방송 3사 뿐이었던 당시 이 선택 또한 무모했다. 임원이나 간부가 아닌 현장에 있는 아나운서이고 싶은 마음에 내린 그의 결정은 활동 영역을 더욱 넓혀줬다. ‘열정’이라는 책을 쓰면서 강의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종합편성채널도 생기면서 토크 프로그램이나 홈쇼핑에 자주 나가게 됐다. 전국에 강의나 방송을 다니게 되면서 일과 여행을 같이 할 기회가 많이 생겼다. 여행 책을 쓰자 제주 생활로 연결되고, 영미 투어까지 오게 됐다. 어느 하나도 치밀한 계획 하에 이뤄진 건 없었다.

관광이 아닌 ‘인스피릿’ 여행, 세상에 하나뿐인 ‘영미 투어’
제주살이 중인 윤 아나운서. /사진= 윤영미 아나운서 제공
“제 여행기를 인스타그램에 올리니까 팔로워분들이 궁금해하기 시작했어요. ‘윤영미가 소개하는 제주는 남다르다. 내가 가본 데도 좀 다르고, 또 안 가본 데도 너무 많고. 이런 제주가 있었나?’하면서 궁금해 하시고.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한 작은 여행사에서 ‘영미 투어’를 해보자고 제안이 왔어요.”

윤 아나운서는 제주에 살면서 그냥 지나가다가 ‘저게 뭐지?’하고 들어가 보는 곳들이 많다. 차 몰고 들어가거나 걸어가면 의외의 장면들이 펼쳐져 있곤 하다. 이름이 없어서 ‘영미 포레스트’라고 이름을 짓기도 했다. 제주에 친구들이 찾아오면 이렇게 관광지가 아닌 곳들을 많이 데려갔다. 그러다 보니 친구들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따라나서는 영미 투어 최고다’라는 얘기를 해줬다.

윤 아나운서. /사진= 강예신 여행+ 기자

그는 영미 투어를 2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영미 투어는 여행사의 어떠한 프리미엄도 누리지 않는다. 식당도 할인받지 못하고 카페도 줄 서서 들어가며 숙박도 싸게 한 적이 거의 없다. 대신 그가 가장 좋아하는 최고의 것들을 까다롭게 선별해 누릴 수 있게 한다. 특히 영미 투어만 할 수 있는 것들을 준비한다. 이를테면 귤 농장 하는 지인을 섭외해 귤 따는 체험을 하면서 바비큐를 즐긴다. 그다음 가수 강허달림의 집에 가서 차를 마시고 강허달림 집 뒤에 아무도 없는 곶자왈을 함께 산책한다. 아주 개인적인 사유지여서 아무도 못 들어가는 숲의 주인을 알아 이곳에 데려가기도 하고, 그가 살고 있는 ‘무모한 집’에서 바비큐도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윤 아나운서가 함께한다. 워낙 신경을 많이 쓰는지라 6번 다녀와서 6번 모두 병이 났을 정도다.

영미 투어는 제주 세 번, 남해-여수, 거제, 부산을 한 번씩 총 6기를 진행했다. 모집 빈도는 ‘윤영미 마음’이지만, 1년에 약 3회 정도 진행한다. 일정은 2박 3일, 딱 10명만 인스타그램을 통해 모집한다. 보통 5초에서 3분 내에 마감된다. 이달 말 네 번째 제주, 7기 영미 투어를 앞두고 있다. 추후 일본 산골 투어 등 해외편도 진행할 예정이다.

남은 인생은 여행자의 삶으로
윤 아나운서. /사진= 윤영미 아나운서 제공

윤 아나운서는 당당하고 행복한 인생 2막을 꿈꾸는 이들에게 ‘주저 말고 행하라’고 전한다. 1년 안에 하고 싶다, 한 달 살기 하고 싶다 등 말만 하지 않고 행하면 된다고. 여행이 아니더라도 무엇이든지 심장이 뛰는 대로 행하길,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고 발걸음을 향하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오랜 시간 무모하고 자유롭게 살아온 그에게도 앞으로의 계획이나 꿈이 있는지 물었다.

“꿈이 있다면, 제가 제주도에 무모한 집을 했잖아요. 강원도 바닷가에 또 하나의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강원도 쪽에 하나를 하고 싶고 전라남도나 경상남도 쪽에도 빈집을 빌려서 리모델링 하고 거점을 마련해서 남은 인생은 여행자의 삶을 살고 싶어요. 그 지역 사람들과 소통도 하고 문화 프로그램 같은 것도 하면서 사는 게 제 꿈이에요.”

[강예신 여행+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