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가버리는 저 빛물결처럼, 영원히 - 박완서《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북적북적]

권애리 기자 2022. 10. 9.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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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룸] 북적북적 357 : 흘러가버리는 저 빛물결처럼, 영원히 - 박완서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부족한 것 천지였습니다. 넉넉한 건 오직 사랑이었습니다.

자기 생의 마지막을 보내는 "그때가 가을이었으면 좋겠다. 가을과 함께, 곱게 쇠진하고 싶다."고 썼던 작가를 가을의 한복판에서 함께 읽고 싶습니다. 이 분은 결국, 가을은 아니고, 나무들이 벌거벗은 가지를 모두 드러내는 계절, '나목'의 계절 겨울에 돌아갔습니다. 바라던 가을은 아니었지만, 왠지, 시리면서도 포근한 함박눈이 나목의 벗은 가지들을 덮어주는 날에 눈을 감으셨을 것만 같은 분, 따로 소개하는 것이 무색한 분입니다. 오늘의 [북적북적]은 고 박완서 작가의 타계 10주년 에세이집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입니다.
 
내 외손자로부터 조그만 민들레꽃을 선물 받은 날 창밖의 봄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햇빛은 반짝이고 공기는 감미로웠고 수양버들은 신선한 녹색으로 푸르러 더할 나위 없이 유연한 몸짓으로 살랑거렸다.
녀석도 기억할까? 만 두 살 적의 어느 황홀한 봄날을. 그의 볼과 머리털에 머물렀던 할미의 눈길을.
손자야, 너는 애써 그것을 기억할 필요는 없으리라. ('민들레꽃을 선물 받은 날' 中)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는 2020년 12월에 1쇄가 나온 이후, 올여름까지 무려 10쇄를 찍었습니다. 최근에 나온 이 10쇄가 이른바 '윤슬에디션'입니다. '윤슬'이란 햇빛이나 달빛에 비쳐서 반짝이는 잔물결을 뜻하는 말입니다. 수영하는 청소년들이 담긴 어떤 '윤슬'을 그린, 밝은 청록의 물빛 유화를 표지로 삼아 나왔습니다.
흐르는 강물이 빛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은 유독, 이 세상에서의 우리 시간이 순간보다도 유한하게 흘러가버린다는 엄연한 사실을 새삼 일깨우는 동시에 그 시간이 이토록 아름답고 애틋하다는 감상을 자아내는 풍경이라고 저는 늘 생각해 왔습니다. 그 현상을 표현하는 단어도 어여쁩니다. 그리고, 돌아간 지 10년 넘게 지났지만 시간이 갈수록 더욱더 그 존재감이 우뚝했음을 느끼게 하는 이 작가, 박완서의 생전 작품들을 기리는 에세이집의 표지를 '윤슬'로 삼은 것은 그야말로 적절한 편집이었다는 느낌입니다.
 
집 앞엔 숲이 있고 동네가 숲에 안긴 것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그것 때문에 지금 사는 집을 장만하게 되었다. 그만큼 숲이 주는 위안은 도시 문화권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 앉은 것 같은 소외감을 다독거려주고도 남는다. 그러나 그 작은 숲이 불안에 떨 적에 보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다. 특히 요새처럼 숲이 진녹색으로 두텁게 번들거릴 때 어디서 오는지 모를 수상한 바람이 숲을 흔들 적이 있다 그럴 때 숲은 온몸에 비늘을 뒤집어쓴 한 마리 거대한 공룡으로 변한다. 중생대의 공룡이 멸종의 예감으로 괴롭게 몸을 뒤채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는 것은 상상력이 아니라 생생한 현실감이다. 숲의 나무들이 저희들끼리 연대하여 한 마리의 거대한 공룡으로 변신한 걸 보면서 느끼는 공포감이 제발 나만의 것이었으면 좋겠다. 만일 사람들이 함께 그런 것을 느낀다면 어떡하든지 숲을 제거하고 그 자리에다 콘크리트를 치든지 아파트를 짓든지 하고 말 것 같아서이다. 인간은 공포감을 느꼈다 하면 무슨 수를 써서든지 그것을 제거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 숲이 괴롭게 뒤채는 건 미구에 닥칠 그런 운명을 예감하기 때문이 아닐까. ('다 지나간다' 中)

작가가 생전 40년에 걸쳐 여기저기 발표해 온 에세이 660여 편 중에 35편을 추린 것이라,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를 펴들었을 때 이미 이전에 어디선가 읽었던 글들을 여럿 만나게 되실 수도 있습니다. (특히 여기 실린 에세이 중에 '사십 대의 비 오는 날'은 피천득의 '인연'이나 윤오영의 '방망이 깎던 노인'과 함께 '국민 수필'의 반열에 올라있는 작품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이번 낭독에서는 제외했지만, 다시 읽어도 역시, 새록새록 마음 깊이 파고드는 글맛과 멋에 새삼 감사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문득 이 작품이 그리우시다면,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를 펴주시면 좋겠습니다.) 실은 처음엔 예쁜 표지에 이끌려 집어들었을 뿐, 제게도 익숙한 에세이들이 꽤 되리라는 건 짐작했다는 고백을 하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신간이라고 말씀드리긴 뭣한 이 작품을 이번주에 선택한 건, 오랜만에 박완서 에세이의 책장을 넘기며 '이 얼마나 소중한 글들인가' 새삼 가슴에 사무치게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 가을이 지나가 버리기 전에 함께 읽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손가락에 물집이 잡히는 것도 모르고 오래도록 잔디에 가위질을 하는 것은 풀 냄새 때문만은 아니다. 유년의 뜰을 떠난 후 도시에서 보낸, 유년기의 열 곱은 되는 몇십 년 동안에 맛본 인생의 단맛과 쓴맛, 내 몸을 스쳐간 일이라고는 믿어지지 않게 격렬했던 애증과 애환, 허방과 나락, 행운과 기적, 이런 내 인생의 명장면(?)들에 반복해서 몰입하다 보면 그렇게 시간이 가버린다.

70년은 끔찍하게 긴 세월이다. 그러나 건져 올릴 수 있는 장면이 고작 반나절 동안에 대여섯 번도 더 연속 상연하고도 시간이 남아도는 분량밖에 안 되다니. 눈물이 날 것 같은 허망감을 시냇물 소리가 다독거려 준다. ('다 지나간다' 中)

박완서 작가는 "죽을 때까지 현역 작가로 남는다면 행복할 것"이라고 겸손하게 이야기했다지만, 이 책에 실린 글들 중 70세가 넘어서 낸 작품들만 봐도 작가가 문학가로서 생애 마지막까지 얼마나 깊고 깊게 계속 해서 무르익어갔는가 알 수 있습니다. 진솔하고 평이하게만 말하고 있는 것 같은 한 줄 한 줄, 문학이 아닌 곳이 없습니다.
저도 박완서 작품을 읽으며 자라났습니다. 늘 이 분의 글을 좋아했습니다. 어렸을 때, 박완서 작가보다 '더 화려하게 잘 나가던' 몇몇 작가들도 있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제가 이걸 굳이 기억하는 이유는, 외람된 생각이긴 하지만, 당시 어린 마음에도 솔직히 그들의 유명세를 잘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 비해서 박완서 작가는 (유명 문인 중 하나이긴 했지만) 세상이 왠지 '여류'라는 카테고리에 묶어 일종의 '특별 부문', '틈새 부문' 취급을 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었고, 그게 분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마도 사람들의 마음은 결국 비슷비슷하게 흐르고, 문학은 이토록 냉엄한 것인가 봅니다. 그 잘 나가던 작가들, 박완서보다 훨씬 더 높게 평가받는 것 같아서 괜히 내가 분했던 그들 중 상당수의 작품을 이제는 찾는 사람이 없습니다. 반면, 왠지 덜 화려한 곳으로 비껴나 계시는 것 같은 인상을 줬던 박완서 선생님의 글은 그때도 그랬듯이 지금까지도 윤슬처럼 빛납니다. 아마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그러할 것입니다.
 
숱한 꿈은 자라면서 맞닥뜨린 현실에 혼비백산, 지금은 그 편린조차 지니고 있지 않다. 나는 그때 내가 어떤 꿈을 꾸었는지 생각해낼 수가 없다. 다만 그 꿈과는 동떨어진 모습이 되어 늙어가고 있음을 알 뿐이다. 하루하루를 사는 내 모습이 별안간 한길로 나앉은 나의 옛집의 모습만큼이나 초라하고 어설프다는 걸 알 뿐이다. ….(중략)…. 다시 꿈을 꾸고 싶다. 절박한 현실 감각에서 놓여나 꿈을 꿀 수 있었으면 좋겠다. 조금만 한가해지면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아직은 꿈을 단념할 만큼 뻣뻣하게 굳은 늙은이가 돼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꿈' 中)

이번에 박완서 에세이를 다시 읽으며 새삼 느꼈습니다. 박완서의 모든 글에는 이 분의 '어머니됨'이 담겨 있습니다. '어머니됨'은 그의 문학을 조금도 제한하지 않았습니다. 한계가 아닙니다. 어머니이자, 할머니, 아내, 딸, 여성이라는 점이 그의 문학과 지성에 한계를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세계를 더욱더 깊고도 날카롭게 벼렸다는 깊은 진실을 저는 이제야 비로소 마음 깊이 깨닫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라는 단어를 쉬이 둘러싸게 마련인 세상의 얕은 선입견들과 달리, 그의 글과 사유들은 그저 넉넉하고 따스한 것 같으면서도 늘 '한칼'을 서늘하게 숨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없는 사랑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오늘 낭독의 시작을 이번 낭독에는 넣지 않은 에세이 '행복하게 사는 법'에서 따온 것은, 역시 이 두 줄이 박완서 에세이로 (다시) 들어가는 날에 가장 걸맞은 문고리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손자야, 너는 이 할미가 너에게 쏟은 정성과 사랑을 갚아야 할 은공으로 새겨둘 필요가 없다. 어느 화창한 봄날 어떤 늙은 여자와 함께 단추만 한 민들레꽃 내음을 맡은 일을 기억하고 있을 필요도 없다. 그건 아주 하찮은 일이다.
나는 손자에게 쏟는 나의 사랑과 정성이 갚아야 할 은공으로 기억되기보다는 아름다운 정서로 남아 있길 바랄 뿐이다. 나 또한 사랑했을 뿐 손톱만큼도 책임을 느끼지 않았으므로.

내가 불태운 것만큼의 정열, 내가 잠 못 이룬 밤만큼의 잠 못 이루는 밤으로 갚아지길 바란 이성과의 사랑, 너무도 두렵고 무거운 책임감에 짓눌려 본능적인 사랑 또한 억제해야 했던 자식 사랑…… 이런 고달픈 사랑의 행로 끝에 도달한, 책임도 없고 그 대신 보답의 기대도 없는 허심한 사랑의 경지는 이 아니 노후의 축복인가. ('민들레꽃을 선물 받은 날' 中)

언제까지나 윤슬처럼 빛나리라고 믿는 박완서 작가의 글들과 함께 가을 하늘빛처럼 빛나는 주말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세계사' 출판사의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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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애리 기자ailee17@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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