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사를 위한 요리 스파게티 알라 '빠시'
오늘 저녁 횟집에서 아주 탱탱한 새우를 맛봤다면, 우리는 그걸 누가 손질했는지 굳이 알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음식의 품질을 칭찬하는 걸로 충분하다. 요리사가 얼음물에 손가락을 넣느라 발갛게 ‘유사 동상’에 걸리기도 한다는 것까지 우리가 챙길 수는 없다. 모르고 넘어간다.
언젠가 부산의 해물탕 식당을 취재한 적이 있다. 그 집 주방장 겸 부주방장 겸 설거지 겸 회계담당(혼자서 일하는 사장이란 뜻이다)의 손은 늘 빨갰다. 해산물을 싱싱하게 손질하기 위한 그의 노하우 때문이었다.
“해물은 얼음물에 담가가 까뿌야 좋아요. 새우고 오징어고. 그기 이 집 비결이지예.” 주방마다 손질 매뉴얼이 있다. 매뉴얼에 손이 얼도록 차가운 물에서 해물을 손질하라고 하진 않았을 거다. 하지만 더 나은 품질을 위해서 얼음물에 손을 넣기도 한다. 나도 월급쟁이로 일할 때는 얼추 차가운 물에 넣어서 해물을 손질했다. 잠시 사장으로 일할 때는 엄청 차가운 물을 썼다. 얼음과 찬물을 반씩 배합해서 손을 넣으면 30초도 견디기 어려웠다. 대신 해물은 더 싱싱해졌다. 사장은 치사해지는 법이다.
숯 피우는 그릴 일도 오래 해봤다. 왠지 그릴이라 하면 거창하고, 고기 굽는 불판이라 하면 저렴해 보이는 게 이 바닥이다. 차콜그릴에 구우면 10만원, 숯불판에 구우면 5만원이다. 어쨌든 양식당에선 그릴, 한식당에선 불판이다. 숯을 쓰면 당연히 고기가 더 맛있다. 하지만 필연적으로 굽는 이의 폐는 공격받는다.
일 마치고 요리복을 벗어보면 목 칼라 안쪽이 거뭇거뭇하다. 씻을 때 코를 풀면 회색이다. 손님은 어쩌다 고깃집에서 두어 시간 숯을 대하지만, 그건 이미 잘 피워진 놈이라 분진이 별로 없다. 게다가 아주 질 좋은, 코끼리 코 같은 연기 배출기가 고기에서 뿜는 기름까지 삭삭 빨아들인다.
하지만 저 부엌의 뒤에서 피우는 숯은 생숯이고, 탁탁 소리를 내면서 숯이 몸서리를 칠 때마다 분진이 일어난다. 어느 돈 많은 고깃집에서 가게 좁은 구석에 옹색하게 설치한 숯판 위에 위력적인 배출기를 설치하겠나. 숯판에서 일하는 후배에게 내가 한 말은 고작 이랬다. 무책임한 말이었다. “얼른 돈 벌어서 그거 때려치워라.”
언젠간 노동조건을 바꾸기 위해 산업안전보건공단 같은 곳에 진정을 넣든가, 아니면 사장을 고발하든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당장은 숯에서, 프라이팬에서, 튀김기에서 피어오르는 분진과 유증기를 막을 수는 없는 것 같다. 요리사가 폐에 병이 생겨서 첫 산재 인정을 받은 게 지난해인가 그랬다. 그것도 공공의 단체급식 조리원이라 그나마 가능했을 것이다. 대한민국에 영세한 식당만 50만 개다. 그런 식당 요리사가 유증기와 숯불 때문에 폐에 병이 생겼다고 산재 판정을 기대하는 건 요원한 일이다.
종종 점심 약속을 할 때 제일 난감하다. 낮 12시는 위가 음식을 거부한다. 요리사들은 손님들 식사 시간에 요리한다. 당연히 식사 시간이 다르다. 오랜 변화로 내 위는 낮 12시에 음식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낮 4시, 저녁 10시. 두 끼를 먹는다면 그렇다. 아마 많은 요리사들이 그럴 것이다.
요리사들은 무얼 먹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어디까지나 내가 겪거나 들은 사연이라는 걸 염두에 두고 들어주시라. 식당 밥이 제일 맛없는 곳은 호텔이다. 응? 제일 맛있어야 할 것 같지 않나. 천만에. 호텔은 재료 관리나 근무 관리가 아주 깐깐하다. 주방에서 남는 재료를 쓱 꺼내 (테스트한다는 명목으로) 구워서 끼니를 때우는 건 불가능하다.
호텔마다 사정이 다르겠지만, 메뉴 개발을 한다는 건 주방장 결재 아래 필요한 재료를 들이고 날짜를 맞춰 진행한다. 아무 때나 재료 가지고 굽고 지지고 회 뜨고 하기 어렵다. 파는 음식은 미리 먹어봐야 하니, 먹긴 하는데 이것이 ‘밥 대신 이걸로 대신하는 거요’ 하는 건 안 된다. 요리사들도 식사 시간이 되면, 우르르 구내식당에 몰려가 외주를 준 대기업 계열 급식회사에서 운영하는 그렇고 그런 메뉴를 받아먹는다. 이른바 ‘짬밥’이다.
최고급 식당도 다를 게 없는 환경
트러플 소스와 영양 송이구이를 곁들인 최고 등급 한우 안심스테이크를 만들기 위해 요리사가 점심에 먹은 건 공장 간장과 설탕에 절인 오스트레일리아산 불고기와 된장국이다. 호텔 요리사들이 그래서 ‘일반집’(그들은 호텔 밖의 식당을 모두 그렇게 부른다. 더러는 로드숍이라고도 한다)을 부러워할 때도 있다. 맘대로 요리를 해서 먹을 수 있으니까.
그러나 꼭 그렇지도 않다. 피자집에서 일하던 내 후배는 피자라면 아주 질색을 한다. 피자 반죽은 대개 남게 마련인데, 하루 한 끼는 그 반죽을 펴서 이런저런 토핑을 얹어 피자를 구워 식사를 대신했다. 이게 강요인지, 자발적 선택인지 모호하다. 누군가 이걸로 강요죄를 물어 고소를 하면 아주 재미있겠다. 세상 물정 모르는 재판관이 이럴지도 모른다. “매일 피자를 준다는데 왜 싫어요?”
파스타를 많이 파는 집은 보통 면을 삶아둔다(요새는 안 그런 집도 많다). 그런 면으로 ‘알 덴테(al dente, 면이 씹는 맛이 날 정도로 살짝 덜 익은 상태)’라고 뻥을 치기도 했다. 어쨌든 남은 면은 대개 버리는데 이걸로 꼭 밥을 먹는 집도 있다. 피자집과 비슷한 이유다. 버리기 아깝기도 하고, 연습도 하는 김에 끼니도 때우자, 이런 거다.
이탈리아 파스타는 이탈리아어로 표기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바지락을 썼다면 스파게티 알레 봉골레, 볼로냐식이라고 하면 알라 볼로네제, 이런 식이다. 알라(alla)란 무슨 무슨 식이란 뜻의 이탈리아식 메뉴 작명 관습이다. 많이 보셨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파스타집이나 이탈리아 식당에서 자투리가 남아서 만들어 먹는 파스타를 뭐라고 부를까. 스파게티 알라 ‘기레빠시’다. 기레빠시란 일본어에서 온 말이다. 줄여서 ‘빠시’라고도 한다. 한국의 기술 작업장은 여전히 일본어 잔재가 남아 있다. 자르고 남은 자투리 재료를 일본어로 ‘기레하시(きれはし)’라고 하는데 여기서 온 말인 듯하다.
파스타는 어떤 재료든 수용하는 특성이 있다. 정말 별게 다 들어간다. 파스타집만 파스타를 해먹는 게 아니다. 한식집과 일식집도 중국집도 해먹는다. 그 집 사정에 맞는 재료가 들어간다. 우리가 볼 수 있는 모든 소스, 그러니까 마요네즈와 케첩과 멸치젓과 간장과 ‘쯔유’와 고추장과 춘장, 김치가 들어가며 배추와 감자와 당근과 마늘과 대파, 청경채에 고수와 사과와 복숭아(?)도 들어갈 수 있다. 고기는 무엇이든 대환영이다. 팔다 남은 삼겹살과 햄과 소시지들, 닭 껍질과 상태가 별로인 닭튀김과 어디서 굴러다니던 손질된 자투리 고기들이 다 파스타 재료가 된다.
기레빠시 파스타는 위트 있지만, 요리사의 근무 상황을 풍자한다. Spaghetti Alla Kirepassi. 써놓고 보니, 아주 근사한 아랍풍의 건물에 들어 있는 시칠리아 식당의 메뉴 같다. 하기야, 그런 식당에서도 요리사들은 ‘빠시’로 만든 스파게티를 먹는다. 이건 틀림없다. 미쉐린 별 셋짜리 식당도 거기서 거기다. 절대로 거위 간 소스의 스테이크를 먹을 수는 없다.
박찬일(셰프)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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