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도로 보내는 검정치마의 러브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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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커버를 먼저 봐야 한다.
불에 타고 있는 집의 이미지가 한눈에 들어올 것이다.
이것은 마치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나 등장할 법한, 세트 같아서 도리어 매혹적인 집이다.
우리가 예술에 감동하는 가장 큰 이유, 그건 바로 그 예술 안에서 불현듯 '나의 조각'을 발견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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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커버를 먼저 봐야 한다. 불에 타고 있는 집의 이미지가 한눈에 들어올 것이다.
그런데 뭔가 좀 독특하다. 이것은 마치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나 등장할 법한, 세트 같아서 도리어 매혹적인 집이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화염에 싸인 집의 정원에 아이가 누워 있고, 오른쪽 뒤편에서는 공룡이 집을 향해 걸어온다.
다음으로는 뮤지션 본인이 쓴 소개를 읽어본다. “〈Teen Troubles〉는 1999년도로 보내는 러브레터입니다. 빨갛게 치켜뜬 눈으로 뜨거운 여름 햇살을 받아내며 방황하던 어린 시절. 지나고 보니 평범한 건 하나도 없었고, 내 마음도 떠난 적이 없습니다.”
아하. 이제 좀 이해가 된다. 검정치마(조휴일)는 지난 두 장의 앨범과 〈Teen Troubles〉를 합쳐 3부작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면서 〈Team Baby〉(2017)에서는 ‘사랑’을, 〈Thirsty〉(2019)에서는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를 드러냈다. 〈Teen Troubles〉가 품고 있는 정서는 ‘노스탤지어’다.
1999년, 조휴일은 열일곱 살이었다. 한창 욕망에 휘둘릴 나이였다. 노랫말을 빌리자면 그는 “들개처럼 하고 싶은 거만 하면서 살 거야”라고 외치는 청춘이었다.
그런데 우리 모두 알고 있지 않나. 순수와 열정이 “녹슨 푸르름”으로 바뀌는 것은 차라리 필연이다. 심지어 대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경험 역시 시간이 흐르면 추억으로 되새김질되곤 한다.
그렇다. 노스탤지어는 단지 아름답기 때문에 우리를 자극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노스탤지어의 뿌리에는 결코 지워지지 않을 상처가 배어 있다. 어쩌면 그것은 엉망진창으로 뒤섞여 있는 여러 감정들의 타래다.
한데 조휴일과 내(혹은 우리)가 다른 점이 있다. 내(혹은 우리)가 그 시절을 ‘라떼’로 화석화한다면, 조휴일 같은 뮤지션은 그것을 예술로 승화한다는 점이다.
노랫말과 사운드 모두 다채로움을 지향한다. 그의 가사는 여전히 함축적이어서 듣는 이마다 조금씩은 다른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사운드는 장르적으로 정의하기가 어렵다. 그러면서도 그는 결코 ‘오버’하지 않는다. 커리어를 통틀어 검정치마는 언제나 진한 감정을 더없이 무표정하고 건조한 보컬로 노래해왔다. 그의 음악이 ‘구리지 않게’ 들리는 가장 큰 바탕이라고 본다.
그렇다고 중심이 부재하는 것은 아니다. 1999년에 젖줄을 댄 앨범답게 그 시절 조휴일이 동경했던 사운드가 등뼈를 형성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페이브먼트(Pavement)류의 로파이 인디 록과 플레이밍 립스(The Flaming Lips) 같은 밴드의 영향은 절대적이다. ‘Flying Bobs’ ‘John Fry’ 등에서 그 흔적을 느낄 수 있다.
뭐랄까.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끝끝내 자기 얘기만 하는데 귀를 기울이지 않을 도리가 없는 앨범이다. 이것은 아마도 그가 지독한 에고이스트인 덕분이리라. 과연 그렇다. 보편적으로 설득력 있는 화법은 정치인이나 갖춰야 할 덕목이다.
예술가는 다르다. 예술가는 기어코 자신의 에고를 견지해야만 타인을 위한 예술을 겨우 산파할 수 있다. 비평가 밥 스탠리가 강조한 것처럼 “음악(팝)은 온 세상을 구하려 할 때보다 상심한 한 마음을 치유하려 할 때 더 의미심장해지는 법”이니까.
우리가 예술에 감동하는 가장 큰 이유, 그건 바로 그 예술 안에서 불현듯 ‘나의 조각’을 발견하기 때문일 것이다.
배순탁 (음악평론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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