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장관 해임건의안은 무조건 72시간 내 국회서 표결해야 한다?

이아미 2022. 10. 9. 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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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발의된 총리·장관 해임건의안 총 160여건..통과된 것은 박진 장관 포함 7건
대부분은 표결 못한 채 폐기..의장이 "사회 안 보겠다" 거부한 사례도
지난달 29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박진 국무위원 해임건의안 처리가 진행되자 본회의장을 빠져나가는 국민의힘 의원들.

(서울=연합뉴스) 정성호 기자 이아미 인턴기자 =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 진성준 의원은 지난달 28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국무위원) 해임건의안 표결 상정 시 국회의장이 재량권이 없다고 본다"며 72시간 이내에 무조건 표결 안건을 올려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냐는 진행자의 질의에 "그렇다"고 답했다.

야당이 발의한 박진 외교부 장관 해임건의안의 본회의 표결을 앞두고 이 안건이 반드시 상정돼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실제 해임건의안은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됐고, 야당의 단독 표결로 통과됐다. 그러자 국민의힘은 김진표 국회의장이 의장으로서 중립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며 사퇴 촉구 결의안을 냈다.

국회법 112조 제7항은 국무총리 또는 국무위원 해임건의안이 발의됐을 때 의장이 발의 후 처음 열린 본회의에 안건을 보고하고, 그때부터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에 무기명 투표로 표결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기간 내 표결하지 않은 해임건의안은 폐기된 것으로 간주한다.

진 의원의 말처럼 장관 해임건의안은 무조건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에 부쳐져야 하는 걸까.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등재된 자료를 보면 제헌국회 이후 발의된 국무위원 해임건의안은 지금과 같이 명칭이 바뀌기 이전인 제7차 개헌헌법 전 '불신임결의안'까지 모두 합쳐 160여 건에 달한다.

그러나 이 중 가결된 것은 박진 장관의 해임건의안을 제외하고 단 6건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모두 폐기되거나 부결됐다. 박 장관 건은 7번째로 국회를 통과한 국무위원 해임건의안이다.

과거에 통과된 국무위원 해임건의안을 보면 ▲ 1955년 임철호 농림부 장관 불신임결의 ▲ 1969년 권오병 문교부 장관 해임건의 ▲ 1971년 오치성 내무부 장관 해임건의 ▲ 2001년 임동원 통일부 장관 해임건의안 ▲ 2003년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 해임건의안 ▲ 2016년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이 있다.

이 중 박근혜 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김재수 장관 사례를 제외하곤 모두 국회의 해임건의가 수용됐다. 해임건의안은 구속력 없는 국회의 건의이지만 이전에는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에 의해 받아들여졌다.

반대로 가결되지 않은 해임건의안을 보면 본회의 상정 후 표결을 거쳐 부결된 사례도 있지만, 대부분은 72시간 내 표결하지 못해 폐기됐다. 폐기된 사유는 의장이 본회의 상정 자체를 하지 않거나, 본회의에 상정은 됐지만 의결 정족수를 채우지 못한 경우, 72시간 내 본회의가 열리지 못한 경우 등 다양하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은 해임건의안이 폐기된 사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않고 있다. 대신 과거 언론 보도를 통해 추적해보면 국회의장이 72시간 내에 해임건의안을 상정하지 않아 안건이 폐기된 사례들이 여럿이다.

[표] 2000년 이후 국회에 발의된 역대 국무총리·국무위원 해임건의안

2003년 9월 김두관 행자장관 해임건의안 처리 사회를 보기위해 국회 본회의장 단상으로 올라서다가 막는 여당 의원과 이를 말리는 야당 의원들 사이에 막혀 국무위원석에 앉아 있는 박관용 당시 국회의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가장 최근 본회의에 상정조차 되지 못한 채 폐기된 건은 2015년 10월 제출된 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해임건의안이다. 당시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본회의 안건으로 상정되지 못했다. 2011년 8월 현인택 통일부 장관 해임건의안 역시 본회의에 올라가지 못했다.

또 2002년 8월 김정길 법무부장관 해임건의안도 여야 의원들이 국회의장의 등원을 저지하거나 지원하는 등 대치 상황으로 인해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하고 자동 폐기됐다. 당시 박관용 국회의장은 한나라당에 의해 해임건의안이 발의되자 "한나라당이 해임건의안을 단독처리하려 할 때는 국회 본회의 사회를 보지 않겠다"며 버티기도 했다.

의장이 상정하지 않아 의안이 폐기된 사례는 아니지만 재량권을 발휘했다고 비치는 사례도 있다. 2012년 7월 김황식 국무총리 해임건의안 처리 당시 강창희 국회의장은 여야가 의원 총회를 통해 협의 중인 상황에서 해임건의안을 직권상정한 바 있다. 이 건은 표결에 부쳐졌지만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이 불참해 정족수 미달로 폐기됐다.

이런 전례들을 보면 72시간 내 표결 안건을 무조건 본회의에 올려야 한다는 발언은 무리한 주장으로 볼 수 있다. 또 역대 국회의장들도 해임건의안 상정 때 일정 부분 재량권을 행사해왔다고 풀이할 수 있다. 여기에는 해임건의안이 그 속성상 여야 간 합의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사정이 반영된 것으로도 보인다.

국회법 제112조(표결방법) 제7항

법 조문이 해임건의안 상정에 대해 국회의장의 재량권을 허용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법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해석이 갈린다.

헌법재판소 연구관을 지낸 노희범 변호사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일반 안건과 달리 해임건의안 같은 인사안은 여야 의견 대립이 첨예하다. 이때 여야가 합의하지 못하고 의안이 상정되면 국회의장이 직권상정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의장 재량권이 있는 것은 아니다"며 "법 조항만 두고 봤을 때 (해임건의안을) 무조건 국회 본회의에 보고하는 것이 맞다"고 밝혔다.

국민대 법과대학 정철 교수도 "헌법이 해임건의안과 그 의결 요건을 직접 규정한 취지를 보면, 안건 상정 여부나 일정을 정하는 데 (의장이) 재량이 있어 상정하지 않을 수 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말해 의장 재량권의 가능성을 일축했다.

반면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민병로 교수는 다른 의견을 내놨다. "'72시간 내에 표결하지 아니한 해임건의안은 폐기된 것으로 본다'는 구절은 의장이 본회의에 상정하지 않는 경우까지 포함하기 때문에 의장이 꼭 상정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며 "이 부분이 단서 규정이 되어 의장이 상정하거나 하지 않은 경우가 발생할 수 있고, (따라서) 의장 재량권이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meteor30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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