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자금만 2조3441억..네이버, 왜 하필 美 패션 중고거래 업체야? [방영덕의 디테일]
눈치채셨나요? '네이버' 이야기입니다. 네이버는 지난 4일 미국 패션 중고거래 플랫폼인 '포시마크(POSHMARK)'의 지분 100%를 인수한다고 밝혔습니다. 인수가는 무려 16억달러(약 2조3441억원)에 이릅니다. 올해 상반기 네이버가 보유한 현금 및 현금성 자산(2조8970억원)의 80%에 달하는 인수가입니다.
네이버 창사 이래 가장 큰 딜입니다만, 주가는 흘러내렸습니다. 개미 투자자들의 원성이 자자합니다. '1981년생 최고경영자(CEO)'인 최수연 네이버 대표는 "너무 심려하지 마시라"고 주주들을 달랬으나 역부족입니다.
왜 하필 미국 패션 중고거래 업체인지, 또 왜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이 넘는 시점 이렇게까지 비싸게 주고 사야만 하는 것인지 여전히 궁금한 분들을 위해 알아봤습니다.
지역 기반의 중고거래 플랫폼이라는 점에서 국내 당근마켓이 떠오릅니다. 당근마켓이 모든 물건을 다 파는 만물상이라면 포시마크는 패션을 전문으로 하는 버티컬 플랫폼이란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판매 제품을 올리는 피드는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처럼 꾸며 놓았습니다. 판매자의 일상생활(글과 사진 등)을 담을 수 있도록 한 것을 보면 당근마켓보다는 사실 인스타그램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실제로 포시마크에서 구매자들은 인플루언서인 판매자를 폴로하고요. 그가 입은 옷이나 패션 아이템 착용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거나 댓글과 채팅으로 소통할 수 있습니다.
자신과 패션 취향이 비슷한 인플루언서의 SNS를 보다 보면,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경험을 한두 번씩은 해보셨을 텐데요.
지난해 말 기준으로 판매자 560만명과 구매자 760만명이 하루 평균 25분씩 포시마크에 머물렀습니다. 네이버 웹툰에서 보듯 체류시간이 긴 편이라는 게 네이버 측 설명입니다. 체류시간이 길수록 무엇인가를 사고팔 수 있는 기회는 더 생길 수 있습니다.
포시마크는 결론적으로 인스타그램의 쇼핑 기능(이커머스)을 담당하면서 SNS와 커뮤니티를 결합한 차세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입니다. 최 대표는 포시마크에 대해 "이용자들이 취향에 맞는 스타일을 발견하고 구매까지 이어지는 구조를 모두 확보하고 있다는 면에서 뛰어난 플랫폼"이라고 강조합니다.
나스닥 상장사인 포시마크는 중고거래에 따른 20%란 수수료를 기반으로 상당한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연 매출이 4000억원에 달합니다.
국내 당근마켓이 광고 외에 뚜렷한 수익 모델을 찾지 못한 점을 고려하면 포시마크는 견고한 수익 모델을 갖춘 셈이지요. 플랫폼 사업자의 주요 수익 모델인 광고 매출이 아직 없기 때문에 추가적인 매출 가능성도 높습니다.
이 수익 모델과 관련해 김남선 네이버 최고재무책임자(CFO)가 한마디를 했습니다. "쿠팡도 창업 이래 지금까지 흑자를 낸 적 없을 정도로 커머스는 수익 내기가 어렵다. 중고거래 과금 모델이 성공한 적 없었는데, 포시마크는 작년까지 흑자를 낸 기업"이라고 말이죠.
다만 엔데믹에 따른 온라인 쇼핑 수요 둔화와 마케팅비 증가로 올해와 내년에는 적자가 예상됩니다. 이에 김 CFO는 "라이브 쇼핑, 고마진 광고 등 신규 수익원으로 최소 20% 이상의 연평균 성장률을 회복해 2024년 조정 상각전영업이익(EBITDA) 기준 흑자를 내겠다"고 밝혔습니다. 믿어봐도 될까요.
하지만 여전히 인수가가 너무 높아 회사 경영에 부담이 될 것이란 우려가 많은 게 사실입니다. 이에 따라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네이버의 신용등급 유지 여력이 감소할 것으로 평가했고요. 국내 증권사들 역시 네이버의 목표주가를 줄줄이 낮춘 상황입니다.
이 같은 우려에 네이버는 "좋은 가격에 좋은 회사를 잘 샀다"고 한 줄로 요약합니다.
네이버는 유사한 기업들의 매각가와 비교하고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감안했을 때 16억달러는 적정 범위라고 판단했습니다. 1년 전 포시마크의 주요 경쟁사 중 하나가 16억달러에 매각됐는데 매출이 지금 포시마크의 5분의 1도 안 되는 회사였다는 사례를 들기도 합니다.
김 CFO는 "단기적으로 환율의 등락에 따라 원화 기준 비싸게 인수했다 생각할 수 있지만, 이미 달러자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고 헤징(회피) 방법도 많다"고 강조하는데요.
오히려 킹달러 상황에서 달러 매출을 올릴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그동안 일본을 중심으로 해외사업을 전개해 온 네이버는 최근 같은 금융환경에서는 환차손이 불가피했는데, 이번 포시마크 인수로 안정적인 달러 수익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이 때문에 네이버는 그동안 국내에서는 '크림'(명품 리셀·중고거래 플랫폼)을, 일본에서는 '빈티지시티'(의류 액세서리 전문 리셀 플랫폼)를 성장시켜 왔고, 유럽에서는 '베스티에르 콜렉티브'(글로벌 패션 리세일 플랫폼)에 투자를 했습니다. 포시마크 인수로 북미 지역에도 거점을 마련해 커머스(상거래) 글로벌 시장 진출을 꾀하는 것입니다.
뉴욕타임스는 네이버의 포시마크 인수 건과 관련해 "한국의 구글로 불리는 네이버의 글로벌 야망이 확대되고 있다는 신호"라고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끝날 때까지 다 끝난 것이 아니지요. 네이버가 포시마크를 인수하려면 미국 규제당국의 심사를 거쳐야 합니다. 미국 경쟁법 집행기관인 법무부와 연방거래위원회에 기업결합 전 신고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인수가 적정성은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논란입니다. 미국 로펌들은 포시마크의 인수 가치가 저평가된 것은 아닌지, 이 때문에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친 것은 아닌지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자칫 향후 집단소송으로 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포시마크 인수 발표 후 네이버의 시가총액은 불과 이틀 사이 4조8000억여 원이 날아갔습니다. 인수가를 훨씬 웃도는 금액입니다.
온라인 시장은 너무나도 빨리 변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장기적 가치를 잃을 수 있습니다. 네이버 경영진이 고민하는 부분이겠지요. 하지만 인수 가격과 시점이 왜 적정하다고 생각하는지 주주들에게 잘 설명해 믿음을 주고, 납득시키는 일 역시 경영진의 책임입니다.
[방영덕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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