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금수저' 물고도 '천원짜리' 앞에서 꼼짝 못할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2. 10. 8.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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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과한 '금수저', 솔솔 피어나는 막장 드라마의 향기

[엔터미디어=정덕현] 첫 회 5.4%(닐슨 코리아) 시청률에서 2회 7.4%로 수직상승했을 때만 해도 MBC 금토드라마 <금수저>에 대한 기대감은 그 어느 때보다 컸다. 제목처럼 진짜 드라마판의 '금수저'가 될 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 정도였다.

실제로 <금수저>는 가난한 흙수저 이승천(육성재)이 재벌2세 금수저 황태용(이종원)과 운명이 바뀌는 판타지가 펼쳐지면서 시청자들을 몰입시켰다. 물론 어느 노파가 준 금수저로 자신이 살고 싶은 친구 집에서 세 번 밥을 먹으면 그 친구와 운명이 바뀐다는 판타지는 '수저계급론'을 너무 직설적으로 풀어내서인지 다소 황당하고 우스운 면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워낙 수저로 나뉘는 삶의 현실이 가진 무게감이 커서인지, 이러한 판타지는 실소가 아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면이 있었다.

하지만 <금수저>는 수저로 나뉘는 우리네 현실을 너무 도식화해서 그려내는 한계를 드러냈다. 금수저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비판의식을 진짜 금수저를 판타지로 등장시켜 그려낸 것까지야 일종의 드라마의 밑그림이니 용인되는 면이 있었지만, 그 후로 흘러가는 전개가 예상 가능한 범주 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재벌2세의 금수저가 되었지만 가족을 외면할 수 없는 이승천과 반대로 흙수저가 되었지만 폭력적인 금수저 가족을 벗어나 가난해도 행복하고 단란한 가족 안에서 평온함을 찾아가는 황태용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결국 이승천이 금수저를 포기하고 다시 본래의 가족으로 돌아가게 되는 이야기도 그래서 너무나 전형적인 '가난의 서사'가 작위적으로 전개되면서였다.

어떻게든 돈을 벌기 위해 도신그룹이 추진하는 재개발 지역의 주민을 몰아내는 하청업체에서 일하게 된 이승천의 아버지 이철(최대철)이 주민과의 대치 상황에서 사고를 당하자, 이승천은 그것이 자신이 부모를 버린 데 대한 천벌이라 여겨 본래대로 수저를 되돌리게 되는 것. 하지만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이승천이 마주한 가난의 그림자는 더더욱 짙어진다. 사고를 당한 이철 때문에 가족은 더 큰 빚을 지게 되고 이를 갚기 위해 그의 아내 진선혜(한채아)는 장기매매를 알아보고 딸 이승아(승유)는 유흥업소에서 일할까도 고민한다.

하필이면 자동차 위로 떨어져 사고를 당했고 그래서 자동차 수리비조로 1억의 빚을 오히려 지게 되는 상황도 상식적이지는 않지만, 이것 때문에 온 가족이 유흥업소에 장기매매까지 알아본다는 설정도 너무 과장이다. 또 이승천이 1억을 빌리기 위해 황태용의 아버지 도신그룹 황현도(최원영) 회장을 찾아가 자신을 담보로 돈을 빌려달라고 하는 이야기도 마찬가지로 개연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이처럼 개연성이 갈수록 실종되어가는 전개는 이승천의 상황을 극으로 몰아가려는 작가의 작위적인 의도를 점점 드러낸다. 이승천에게 오여진(연우)이 1억을 빌려주고(학생들이 이렇게 한다는 게 가능한가), 그 1억의 빚 때문에 이승천네 가족은 오여진의 집에 얹혀살며 사실상 하인처럼 부려진다. 이것은 다시 본래의 가족으로 돌아온 이승천이 1년 후 또 다시 금수저를 이용해 운명을 바꾸고 싶게 하기 위한 작가의 설정으로 너무 드러나는 작위성이 엿보인다.

금수저를 이용해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판타지 설정이 있다고 해서 전개에 있어서의 '내적 개연성'을 마구 흩트릴 수는 없다. 하지만 <금수저>는 작가가 어떤 상황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그 전개를 자의적으로 그려나가고 거기에는 상식적으로 이해되기 어려운 과도함이 더해진다. 작품이 저 스스로의 힘에 의해 납득될 수 있게 흘러가는 게 아니라, 작가의 드러나는 개입에 의해 마구 이리저리 휘둘리는 것. 우리가 흔히 막장이라는 부르는 것이 지금 <금수저>에서 점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반면 동시간대 방영되고 있는 SBS 금토드라마 <천원짜리 변호사> 역시 리얼리티보다는 판타지를 그리는 드라마지만, 이 작품은 풍자적인 의도를 가진 내적 개연성이 충분한 차이를 보인다. 그래서 다소 과장된 전개가 그려지지만, 그런 캐릭터라면 나올 법한 이야기라는 장르적 개연성을 충족시킨다.

무엇보다 <천원짜리 변호사>의 이러한 판타지는 시청자들에게 빵빵 터지는 웃음과 속 시원한 사이다를 전해준다. 시청률도 우상향 곡선을 그리며 15%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금수저>가 수저를 바꾸는 판타지까지 그려내면서도 다소 뻔한 가난의 고구마를 꾹꾹 채워 넣으며 5%대 박스권 시청률에 머물러 있는 것과 사뭇 다른 방향성이다. 무엇보다 부자면 다 저렇고 가난하면 다 저럴 거라는 막연한 상상을 작가의 과잉된 의도로 그려내고 있는 점은 <금수저>가 가진 맹점이다. 설정은 나쁘지 않았으나 전개가 아쉬운 대목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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