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전 대통령에게는 서해 피살 공무원 살릴 3시간이 있었다 [쓴소리 곧은 소리]
골든타임 세 시간 동안 아무 조치 안 취해..사흘 뒤 북한 통지문 온 뒤에 첫 반응
(시사저널=이영종 뉴스핌 통일전문기자(북한학 박사))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으로 불리는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씨 사망은 국가와 대통령의 존재 이유를 따져 묻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이 경각에 달렸을 때 정부와 대통령은 어떤 극단의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전력투구해야 한다는 너무나 당연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대준씨 피격 사망은 참극이다. 북한 수역으로 떠밀려간 우리 국민이 어떤 구조도 받지 못한 채 결국 북한 경비병에 의해 난사당했다. 그리고 수습되지 못한 시신은 기름이 부어진 채 불태워졌다. 왜 북측 수역에 들어가게 됐는지 경위가 명확히 밝혀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당시 정부가 서둘러 '월북몰이'에 나섰다는 게 속속 드러나고 있다. 제대로 된 구조 노력보다 사건의 본질을 왜곡하고 덮어버리는 데 급급한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해양수산부와 국방부는 책임자가 나서 잘못에 대해 사과했다. 국가정보원과 검찰 등도 진상 규명을 위한 조사와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구조해 달라'는 취지의 대북 감청 내용 등 월북 정황과 배치되는 첩보를 무단 삭제한 혐의로 국정원에 의해 검찰에 고발된 상태다.
대통령과 靑참모 나섰으면 참극 막았을 수도
하지만 여전히 침묵하는 한 사람이 있다. 사건 당시 긴박했던 상황 속에서 누구보다 국민 보호에 책임감을 느끼고 긴밀하게 대응했어야 할 사람이다. 이젠 전직 대통령이 된 문재인. 세월호 침몰 참사에 누구보다도 집착했고 '사람이 먼저'라고 입버릇처럼 외치던 그는 왜 대한민국 국민 이대준씨의 피격 사망에 대해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선 사건 당시 상황을 재구성해볼 필요가 있다. 2020년 9월21일 해양경찰에는 "낮 12시51분께 소연평도 남방 1.2마일 해상에서 해양수산부 소속 어업지도선 선원 1명이 실종됐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해양경찰과 해군함정, 항공기 등 20여 대가 투입돼 집중 수색을 벌였지만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데 하루 뒤인 22일 오후 이씨가 북측 수역에서 발견된 정황이 포착됐다.
우리 군 당국의 대북 감청망에 북한 해군 경비정의 통신 내용이 잡혔는데, 이씨로 추정되는 인원이 '대한민국 공무원'이라 밝히면서 구조를 요청하는 정황이었다. 하지만 북한 경비병은 상부의 지시에 따라 해상에 떠있던 이씨를 소총으로 난사한 뒤 불질러 태워버렸다.
문제는 최초 발견부터 사망까지 무려 6시간이 걸렸지만 당시 청와대와 우리 군 당국, 대북 부처의 대응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부실했다는 점이다. 최초 이씨가 북측 수역에 있다는 사실을 우리 군 당국이 파악한 게 9월22일 오후 3시30분이다. 그런데 이 내용이 문 대통령에게 보고된 건 3시간이 지난 오후 6시30분께였다.
더 중요한 건 대통령 보고가 이뤄진 뒤 이씨가 숨지기까지 3시간의 시간이 있었다는 점이다.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꼭 챙겼어야 할 '이대준 골드타임'이다. 이 시간에 대통령과 청와대 핵심 참모들이 직접 나서 우리 국민의 구조와 안전 확보에 집중력을 발휘했다면 얼마든지 참극을 막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남북 핫라인을 가동해 즉각 구조를 요구하거나 사살해선 안 된다는 경고를 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이 시간을 그냥 흘려보냈다. 청와대 측은 북측과의 통신선이 단절돼 있었고, 사태 파악이 정확히 되지 않아 대응에 한계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거짓에 가깝다. 2018년 3차례의 남북 정상회담 등을 거치면서 서울과 평양 사이에는 최고지도부 의중을 전달할 핫라인이 가동되고 있었다. 대북 여론이 싸늘해질 때쯤이면 청와대가 공개했던 문재인-김정은 간 친서가 이를 뒷받침한다.
차라리 문 대통령과 참모진의 관심이 딴 데 쏠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게 더 합당해 보인다. 이씨의 사망이 확인된 몇 시간 뒤인 9월23일 새벽 문 대통령의 제75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이 공개됐다. 미리 녹화된 내용이라고 하지만 북한에 대한 비판은 한마디도 없이 당시 문 대통령이 공들이던 한반도 종전선언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당부하는 말로 채워졌다. 이씨 사망 사흘 뒤인 9월25일 열린 72주년 국군의날 기념식에서 문 대통령은 이 문제를 꺼내지 않았고, 아예 북한이란 단어를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
"사람이 먼저"라던 文의 침묵 미스터리
청와대는 이씨가 사망한 사흘 뒤인 9월25일 북측 통일전선부의 통지문을 공개했다. 민주당 일각에서 최근 "(북측) 사과를 받고 굴복시켰다"고 주장하는 문건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10여 발의 총탄으로 불법 침입자가 사살된 것으로 판단…해상 현지에서 소각하였다"는 상황 설명과 변명이 담겼다. 다만 끄트머리에 "김정은 동지는…우리 측 수역에서 뜻밖에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여 문재인 대통령과 남녘 동포들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더해준 데 대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뜻을 전하라고 하시었다"는 대목이 포함됐다. 하지만 이씨의 시신이 싸늘한 바다를 정처 없이 떠돌고 있을 시점에 나온 청와대의 서한 공개는 뒷북에 가까웠다.
이대준씨 피격 사망 사건의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감사원은 사건 당시의 정부 대응과 관련해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한 서면조사를 통보했고, 문 대통령은 "대단히 무례한 짓"이라며 반발했다. 이를 둘러싸고 여야는 감사원의 독립성 문제로까지 전선을 확장했다. 사건 당시 집권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국정감사에서 윤석열 정부 들어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월북 번복'을 기획했다고 주장하며 유족과 고인을 두 번 멍들게 하고 있다.
이씨의 아들은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서 국가의 존재 이유를 묻고 있다. "아빠가 죽임을 당할 때 이 나라가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는 절규다. 대한민국 국민이, 그것도 접적 수역에서 태극기를 단 채 밤샘 근무를 하던 공직자가 북한군에 난사당해 숨졌는데도 대통령과 정부가 침묵한 까닭을 국민들은 궁금해하고 있다.
의혹을 풀어줄 납득할 만한 답변과 진상조사가 충분히 이뤄지기 전까지 유족과 국민의 준엄한 물음은 끊임없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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