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리듬이 만드는 건축을 추구한다" 건축가 한은주(上)

효효 2022. 10. 8.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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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정명석 변호사가 사는 집

[효효 아키텍트-146]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의 주택 위브릭버드(2019)는 인근 고속도로에서도 보이는 고바위 지역에 위치한다.

위브릭버드 전경 [사진 제공 = 소프트아키텍쳐랩]
'위브릭버드'는 서울 강남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던 건축주가 다른 방식의 갤러리 공간을 원하면서 카페와 주거를 동시에 요구했다. 최대 건폐율 48평에 불과한 대지 조건에 비해 지나치게 다양한 프로그램이었다.

물리적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건축적 관점으로 시간 개념을 도입하였다. 한은주 건축가는 방문하는 관객에게 주기와 패턴으로 안정화된 공간 경험을 선사할 수 있는 '감상의 리듬'에 주목했다.

성격이 다른 개별적인 각 공간들은 빡빡한 통로나 계단으로 연결되어 조여지고 풀어지는 공간 경험의 리듬을 형성하고 있다. 먼저 지하층 주 진입 공간에서 시작하는 갤러리, 10m 높이의 좁고 깊은 보이드 공간을 통해 연결된 1층 전시 공간, 지하와 1층의 연속적 전시 시퀀스를 깨고 2층으로 이어지는 VIP 라운지의 전시 공간은 남측 마당과 맞닿아 외부로 연장된다. 이후 4m에 육박하는 파라펫(옥상난간)이 오롯이 하늘만 끌어들여 원경으로 조각이나 설치 등 작품의 배면을 만드는 옥상의 야외 전시 공간에 다다른다. 위브릭버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리듬과 시퀀스가 핵심 건축 언어이다.

위브릭버드 실내에서 외부를 바라본 모습. [사진 제공 = 소프트아키텍쳐랩]
규모가 작고 등고선이 급한 대지에, 갤러리 공간을 마련하면서 동시에 높낮이가 다른 정원들을 사용(私用)하고자 하는 욕구는 상충한다. 위브릭버드는 보다 높은 서쪽에 면한 다른 대지를 의식하여 1층 테라스와 마당을 둔각의 매스로 감쌌다. 매스는 자연스럽게 서쪽으로 흐르면서 예각으로 마무리됐다.

화제작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정명석 역을 맡은 탤런트 강기영은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필자가 '리듬의 건축가'로 부르고 싶은 한은주는 동료 건축가들에게는 영국 RCA(Royal College of Art·왕립예술대학)에서 디자인을 하나 더 전공한 건축가로 인식되어 있다. 건축가 한은주 삶의 궤적을 살펴보자.

누구든 산사(山寺)의 요사채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風磬) 소리를 기억할 것이다. 풍경 속 붕어 모양의 쇳조각이 달려 있어 바람 부는 대로 흔들리며 소리가 난다. 필자는 1960년대 중반 경상도 양동 마을, 아침이면 부엉이 울음소리에 잠을 깨곤 했다. 메아리가 언덕 같은 산 너머 안강들을 휘돌아 오는 듯하였다.

프랑스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1901~1991)는 '어둠이 내린 정원의 표면을 주의 깊게 청취하면 식물들, 바람, 사물들이 연주하는 교향악을 들을 수 있다' <리듬분석-공간 시간 그리고 도시의 일상생활>(정기헌 번역 2013.갈무리)고 말한다. 이러한 사고는 풍경, 부엉이 울음 소리 등 아시아적 정서와도 맥이 통한다.

경북대 대학원 건축학과에 재학 중이던 한은주는, 앙리 르페브르의 저서 <공간의 생산>(1995년판 영문판)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르페브르가 말하는 '리듬 분석'은 시간을 인식하는 방식이다. 한은주 건축의 특징인 '인터랙티브'(interactive)는 앙리 르페브르의 중요 명제에서 이론적 출발점을 갖는다.

한은주는 20여 년 전 실무에 참여한 직후부터, 설계가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이 지대함에도 걸맞은 사회적 인정, 합당한 반대급부가 보장되지 않는 풍토에 회의를 느꼈다. 자신이 몸담았던 유명 건축사무소의 분위기 또한 권위적이고 설립자가 신화화되었다고 보았다.

자신은 선배 건축가들과는 방향을 달리하겠다고 결심을 하게 되는 차에 계기가 왔다. 2005년 10월 서울 아트센터 나비 국제 워크숍에서 '도시 유희의 장으로서의 운율적 지형학 개념' 프로젝트를 발표하였으나 참가자들과 제대로 된 이해, 소통이 어려웠다. 국내를 벗어나 자유롭게 소통하며 주제를 발전시키고 싶었다. 외국 대학에 방문학자 자리가 있는지를 찾아보았다.

영국의 런던경제대학과 RCA 건축과에 각각 편지를 띄웠다. RCA 이노베이션 디자인 엔지니어링과에서 반응이 왔다. RCA는 대학평가기관 QS의 세계대학순위에서 1994년부터 2022년까지 내리 8년 동안 미술·디자인부문 1위이다.

국내 여건에서 벗어나 주제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할지를 먼저 고민했다. 리서치 코디네이터로 포지셔닝하기로 하고 SKT로부터 서울 광화문 일대 데이터를 제공받아 도시인들의 움직임을 그래프 등으로 지형화하였다. RCA 디렉터가 인터뷰하러 서울에 왔다. RCA는 글로벌 통신회사 허치슨의 지원을 받고 있었기에 한은주가 가진 주제에 관심이 많았다.

2009년 RCA에서 연구의 일부로 작업했던 카본나노튜브 소재의 4D 데이터 비주얼라이제이션 작품 "RHYTHM ANALYSIS"을 SIGGRAPH (Special Interest Group on Graphic(s) and Interactive Techniques)에 제안해서 발표작으로 선정되었다. SIGGRAPH는 세계 최고 공신력의 인터랙션 분야 콘퍼런스이다. SIGGRAPH아트 갤러리에서 발표한 설치 작품(Rhythm analysis: a temporal stereopsis of urban telecommunication data topography)은 테크놀로지에 의해 확장될 수 있는 공간성과 도시 디자인의 미래지향적인 관점을 보여주었다.

2009년 시그래프 발표 작품 [사진 제공 = 소프트아키텍쳐랩]
나노테크놀로지(nanotechnology)를 적용한 재료인 카본나노튜브시트(carbon-nano-tube sheets)를 사용해 서울 중심부의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의 24시간을 움직이는 빛의 조각으로 구현했다. 카본나노튜브는 탄성과 내구성이 좋고 가벼워 조형적 요소도 갖추고 있다.

이 프로젝트에서 도시 공간의 보이지 않는 전자적 층위(electronic layers)가 시각적으로 드러나고 미세한 빛의 입자가 겹쳐진 투명 전도체(transparent conductive) 안에 배열됨으로써,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의 데이터는 구름 같은 모양을 이루며 도시 위에 떠 있는 모습으로 있다. 이 데이터 클라우드(data cloud) 형상은 24시간 추적된 데이터가 만든 여러 개의 데이터 지형이 겹쳐지면서 만들어진다.

건축의 물성을 존재하게 하는 것은 자연의 물리적 지형과 컨텍스트 위에 세워지는데, 동시대 건축은 사람이 도시공간을 점유하는 실시간 데이터 기반의 무형적 지형학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2013년 6월, 4년간의 학위 과정을 마치고 논문 <도시 공간에서의 위치 기반 인터랙션 디자인 연구>로 RCA 최초의 한국인 박사 학위자가 되었다. 한은주의 이러한 '도시 공간에서 프로그램의 유연성' 분야는 도시계획, 건축에서 이례적일 수 있다.

앙리 르페브르의 "리듬 분석(rhythmanalysis)"은 자동차와 스마트폰으로 대별되는 '모바일 문화'(mobile culture)를 이해하는 데 적용된다. 리듬 분석은 모바일 미디어(기기)가 주도하는 현대 도시 문화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반복은 차이를 생산한다"는 '리듬분석'의 전제 중 하나다. 르페브르는 반복은 동일한 것의 무한복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일상생활, 의례, 규칙 등 모든 반복 속에는 언제나 새로운 것이 틈입하는데, 그것을 차이라고 본다.

리듬을 읽는다는 것은 보이는 것의 표면(현재)을 넘어 존재의 심연인,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2004년)가 말한 현전(現前·현재 있음, presence)으로 시선이 가는 것이다.

[프리랜서 효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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