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그래픽, NFT아트로 순수미술 영역에 입성
미술로 보는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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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으로 온라인을 통한 비대면 활동이 많아지면서 메타버스 등의 디지털 세상이 어느새 우리 일상에 바싹 다가왔다. 미술계에서는 전시장이 폐쇄되고 온라인 뷰잉룸이 주목받으면서 자연스럽게 디지털 파일로 작품을 감상하는 사례가 늘었다. 그리고 2021년 3월11일 크리스티의 온라인 경매에서 비플이라는 작가가 2007년부터 5천 일 동안 매일 한 작품씩 그려 올린 작품들 전체를 하나로 콜라주(화면에 종이·인쇄물·사진 따위를 오려 붙이고 일부에 가필한 작품)해서 NFT로 만든 <일상: 첫 5천 일>(Everydays: The First 5000 Days)이 약 765억원에 팔리면서 NFT아트는 곧바로 미술계의 새로운 화두가 됐다. NFT는 무엇이고 NFT아트란 무엇인가?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 NFT(Non Fungible Token)는 ‘대체불가능토큰’으로 번역한다. 디지털상의 모든 대상은 파일 복사를 통해 원본과 완전히 동일한 복제가 가능하다. NFT란 무한 복제가 가능한 디지털 대상에 원본임을 증명하는 NFT 꼬리표를 붙여서, 추후 아무리 많은 복제 파일이 돌아다녀도 대체가 불가능한 원본의 가치를 인정받도록 한 것이다. 메타버스 같은 가상공간이 대중화하면서 디지털자산 거래가 함께 활성화됐고, 이들 자산의 원본성을 증명할 필요를 해결한 것이 바로 NFT다. NFT는 주로 블록체인 기반의 암호화폐로 거래된다. NFT아트는 디지털화한 이미지에 NFT를 붙여 미술품처럼 거래하는 대상을 뜻한다.
‘프로필 사진’용 활성화
크리스티 경매가 기폭제가 되어 국내에서도 2021년 하반기에는 국내 최대의 미술품 경매회사인 서울옥션과 국내 최대 코인거래소인 업비트의 지주회사 두나무가 각각 관계사 간의 협력으로 NFT아트 거래를 시작했다. 블록체인 기반의 암호화폐 업계는 NFT 거래가 활성화하면 거품 논란이 끊이지 않는 코인의 실질적인 사용가치를 증명할 수 있고, 미술계는 그간 실물거래에 국한됐던 미술품 거래를 디지털화함으로써 정체된 시장의 외연과 규모를 확대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양 업계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NFT아트는 순식간에 미술시장의 뜨거운 감자로 관심을 모았다. NFT 총거래량에서 아트의 비중은 2020년 24%에서 2021년 1분기에는 비플의 고가 낙찰과 관심에 힘입어 43%로 급등했다. 이후 계속 하락해 2022년 1분기에는 8%에 불과하다.
메타버스상의 땅을 거래하고 훈민정음 해례본의 NFT도 발매되는 등 다양한 NFT가 만들어지고 거래되지만, 현재 실용적 가치를 가지는 NFT는 사실상 PFP NFT가 유일하다. PFP란 ‘프로필 픽처’(ProFile Picture)의 약자로 카카오톡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프로필 사진으로 쓸 수 있도록 만든, 인물 중심의 캐릭터 일러스트를 뜻한다.
2017년 1만 개 한정으로 발매된 크립토펑크는 하나가 2021년 6월 소더비에서 140억원에 낙찰되고, 2022년 2월에는 약 280억원의 낙찰 기록을 보이면서 사실상 NFT 시장을 활성화한 주역이었다. 그리고 2021년 4월 1만 개가 발행된 ‘지루한 원숭이들의 요트클럽’(BAYC·Bored Ape Yacht Club)은 소유자만 입장 가능한 사교모임을 열고, 소유자에게 저작권과 함께 추가 NFT를 무상 제공하면서 탈물질화한 디지털 자산인 NFT의 물질적인 용도와 가치를 개발해냈다.
실제로 BAYC는 에미넘, 패리스 힐턴, 마돈나, 네이마르 같은 연예계·스포츠계 슈퍼스타들과 일론 머스크 같은 인물들이 SNS 프로필 사진으로 사용하고 있다. BAYC 구매자는 이들과 교류하는 사교클럽 회원권을 사는 셈이다. 아디다스는 최근 BAYC 원숭이를 하나 사서 여기에 아디다스 저지를 입힌 새로운 캐릭터를 만든 뒤 이를 NFT로 개당 약 90만원에 3만 개를 팔아 270억원의 수입을 올렸다.
이런 움직임에 따라 국내에서도 고릴라를 기반으로 한 ‘메타콩즈’라는 PFP NFT 1만 개가 발매됐다. 아예 유명 가수인 선미의 이미지를 프로필 픽처로 만든 ‘선미야클럽’이 만들어지는 등 연예계와 스포츠계 유명인들과의 협업을 통한 NFT 개발이 관심받고 있다.
이처럼 PFP NFT가 부상하면서 프로필 픽처를 그리는 작업으로서의 컴퓨터그래픽(CG)이 재조명되고 있다. 컴퓨터그래픽은 컴퓨터로 대상의 형태와 색채 등을 입력하고 변환해서 영상을 만드는 컴퓨터기술이다. 디자인과 건축설계 등에만 사용하던 것이 이제는 영화, 게임, 광고산업, 컴퓨터아트, 산업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비플이 5천 일 동안 매일 그린 그림도, 크립토펑크나 BAYC의 원숭이 그림도 모두 컴퓨터그래픽이다. 데이비드 호크니가 아이패드에 그린 그림에서 보듯이 이제 컴퓨터의 광원에서 나오는 빛의 색상이나 게임에서 보던 만화 같은 이미지를 순수미술에서 흔히 접할 수 있다. 컴퓨터그래픽은 이미 순수미술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고, 이제 비로소 순수미술 영역에 입성한 것이다.
희귀성이 과시욕 자극
혹자는 BAYC의 원숭이나 크립토펑크의 이미지를 1만 개 그린 것도 미술이냐고 반박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에게 익숙한 단색화나 구사마 야요이 등 대부분의 순수미술 작가들도 사실상 매 작품의 차이는 그다지 크지 않다. 미술시장에서는 점점 더 작품 간의 차이보다는 특정 작가의 작품임을 드러내는 표식이 중시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NFT아트 열풍은 블록체인 원장에 실제 내용물이 아닌 고유식별자만 등록하는 문제를 비롯해, 저작권 침해와 표절작품 판매 등 법적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으면서 초기의 과열 상태가 급냉각됐다. 그러나 애초에 NFT는 디지털 영역을 대상으로 하며, 여기서 성장한 컴퓨터그래픽에서 NFT아트는 출발한다. NFT아트는 최소한 컴퓨터그래픽이 순수미술 영역에 진입했음을 보여줬다. 또한 NFT는 오늘날 미술품이 소비되는 주요한 욕구가 과시욕이라는 사실을 ‘하나의 이미지의 1만 개의 변주’라는 방식으로 단순화해서 전면에 드러내 보여준다.
이승현 미술사학자 shl21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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