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굴지 대기업 맞아?..친조부모는 되고 외조부모는 안된다니 [나기자의 데이터로 세상읽기]

나현준 2022. 10. 8.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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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가·외가 조부모상 차등 살펴보니
노인 年마다 25만명 사망하고
앞으로 사망자수 대폭 증가
기업서 친가·외가 차등 여전
SK·GS 등서 국내 대기업서
경조사비·휴가 등 안내 달라
2013년 인권위 문제로 지적
국회에도 법안 계류됐지만
현실선 고쳐지지 않고 있어

[나기자의 데이터로 세상읽기-15]

[사진 = 연합뉴스]
지난해 한 해 사망자 수는 총 31만7680명입니다.

이 중 65세 이상 노인 사망은 약 25만명(약 80%)에 달하는데요. 고령화 시대에 맞게 노인이 많아지면서 이 숫자는 점차 증가할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장래인구추계치를 보면, 2030년이 되면 총 사망자 수가 40만명을 돌파하고 2050년엔 68만명, 2060년엔 74만명 등 사망자 수 증가폭이 가팔라집니다. 보통 사망자의 80%가 65세 이상 노인인 점을 감안하면, 그만큼 노인 사망자 수도 급증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년도별 사망자수 추이. (장례 추계 포함). 이중 약 80%가 65세 이상 노인 인구로 추정된다. [자료 = 통계청]
경조사 발생 시 지원해주는 제도를 둔 기업이 많은데 아직도 친가와 외가에 차등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계(父系)에만 가족 구성원에 관한 법적 책임이나 권한을 부여하는 호주제 때문에 친가·외가 차등이 있어 왔는데요. 호주제가 2005년 폐지된 이후 벌써 17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기업·기관에서는 '조부(조모)'와 '외조부(외조모)' 경조사에 차이를 두고 있습니다.

실제로 최근 외조모상을 당했던 SK그룹 한 계열사에 다니는 A씨는 황당한 일을 겪었습니다. 회사에 문의하니 친가 쪽 조부·조모상은 휴가 3일에 경조비가 지급되는 데 반해, 외가 쪽 외조부·외조모상은 휴가 2일만 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A씨는 "큰아버지·작은아버지와 이모·외삼촌 휴가에도 차이를 둘 정도로 친가·외가 차등이 아직도 심하다"며 "아직도 이런 구시대적 관행이 남아 있다는 게 놀랍다"고 말했습니다. SK뿐만이 아닙니다. 지난해 말엔 GS리테일도 외가·친가 경조사 차등과 관련된 보도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직장인들이 주로 쓰는 블라인드에서도 국내 굴지 대기업이 여전히 친·외가 간에 경조사 차등을 두고 있다는 성토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실 경조사 휴가·경조사비 지급은 사실 법적으로 강제되는 건 아니고 노사 협의하에 부여하는 약정 휴가입니다. 회사 입장에선 친가·외가에 차등을 둬도 법을 어긴 건 아닌 것이죠. 하지만 이런 차등 자체가 시대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실제로 이 글을 쓰는 기자 역시 최근 외조모상을 겪으면서 이를 절감했습니다. 저희 회사는 휴가, 경조사비 지원 혹은 근조·조화 제공 등과 관련해 명시적 차등은 없었지만, 조모상과 달리 외조모상은 문자 공지를 하지 않았습니다. 노동조합 측에 문의하니 "당연히 바꿔야 하는 제도"라는 해석을 받았고요. 이에 앞으로는 외조모상도 공지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정부도 이를 모르는 건 아닙니다.

2013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친가·외가에 차등을 두는 것은 부당하다며 노사 합의를 통해 이를 시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했지만, 근 10년이 지나도 바뀐 게 없는 현실인 것이죠. 당시 국가인권위원회는 외가란 이유로 휴가와 경조비를 더 적게 지급하는 기업이 61%에 이른다고 말했었죠. 지금도 사정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을 것으로 보이네요.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2013년 발표한 조사결과. 미확인 기업을 제외하고, 조사기업 중 61%(41개)가 친가와 외가에 휴가 - 경조비 관련해 차등을 두고 있었다. 현재도 이 같은 관행은 계속 남아 있는 실정이다. [자료 = 국가인권위원회]
국회도 관련 법안을 이미 내놓은 상황입니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박주민 의원안·송옥주 의원안)에서 친가·외가 간 경조사 휴가 차등을 두는 것을 아예 법으로 금지하는 내용을 담았는데요. 국회에서 3차례 정도 논의가 됐지만 여전히 계류 중이고 진척이 없습니다. 국회 검토보고서를 보면, "노사 간 합의 사항이어서 이를 법으로 강제하기엔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는 문구가 적혀 있네요.

다만 법으로 강제하긴 어려워도 주기적으로 여론을 환기해 나가며 문화를 바꿔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아이 양육 등으로 인해 여성 쪽(외가·친정)과 가깝게 사는 경우를 더욱 심심치 않게 보는 시대입니다. 부계보다는 오히려 모계에 더 가깝게 상황이 바뀌고 있는 건데요. "외가 쪽이 더 친근하다"는 사람들도 많이 늘고 있습니다. 호주제가 폐지된 지 곧 20년이 되는데, 앞으로는 이런 기사를 안 쓸 수 있도록 친가·외가에 차등을 두는 옛 문화가 근절됐으면 합니다.

[나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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