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인하 "빚 내서 집 사라".. 타키투스 함정에 빠진 중국

차학봉 부동산전문기자 2022. 10. 8.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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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학봉 기자의 부동산 봉다방>
부동산 버블 붕괴 기로에 선 중국-1편
시진핑 연임 위한 집값 잡기 대출 규제가 개발업체 연쇄부도 촉발
30년 우상향 집값 이끈 선분양제가 폰지 사기극으로 전락, 금융 부실화
토지매각으로 재정충당 지방정부, 공동구매 등 부양책 남발
3연임 시진핑 시험대, 일본식 버블 붕괴 막기 총력전 펼칠 듯

작년까지만 해도 부동산이 ‘악의 근원’이라도 된 듯 집값 잡기에 골몰하던 중국이 이제 집값 부양을 위해 총력전을 펴고 있다. 중국은 2020년 코로나 봉쇄로 인한 경기침체를 막기위한 금리인하로 집값이 치솟자 부동산 대출 총량제, 주택담보대출 심사 강화, 위장이혼을 통한 주택청약 방지대책 등 ‘규제 폭탄’을 쏟아냈다.

시진핑 주석이 3기 연임을 위해 극약처방을 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시진핑 주석은 ‘집은 투기의 대상이 아니라 거주의 수단’이라고 강조하면서 부의 재분배를 의미하는 공동부유(共同富裕)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각종 규제 대책이 쏟아졌다. 특히 일본의 버블을 붕괴시킨 대출 총량제는 중국에서도 효과를 발휘, 집값을 잡았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이 꽁꽁 얼면서 부작용도 커졌다. 작년 말 민간 1위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그룹이 디폴트 선언을 하면서 건설업체 연쇄부도 우려가 나오고 부동산 버블붕괴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코로나 봉쇄, 미중 무역갈등이 겹치면서 중국의 성장률이 반토막 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매출 기준으로 중국 1의 부동산 개발사인 비구이위안(碧桂園·컨트리가든)이 장쑤성 전장에 건설한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지난해 10월 31일 촬영한 사진. 비구이위안은 최근 실적 발표를 통해 반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96% 급감했다고 밝혔다. /AFP 연합뉴스

◇금리인하에도 집값 하락세 지속

지난 8월 중국 상위 70개 도시의 신규 주택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2.1% 떨어졌다. 수치상으로 보면 큰 폭의 하락은 아니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상황은 심각하다.

중국 100대 부동산 개발업체의 9월 신규 주택 판매액은 전년 동월보다 25.4% 감소했다. 1~9월 누적 감소율은 45.4%에 달한다. 주택판매는 작년 8월부터 지난 달까지 14개월 연속,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 신규주택 판매가격의 인하를 지방 정부가 통제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20 % 이상 집값이 폭락한 지역도 많다.

부동산업체 연쇄부도와 경기 침체 부작용이 발생하자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지난달 사실상 기준 금리인 1년 만기 대출우대금리(LPR)를 3.70%에서 3.65%로 0.05%포인트 인하했다. 5년 만기 LPR도 4.45%에서 4.30%로 0.15%포인트 내렸다. 인민은행은 지난 1월에도 금리를 인하했다. 이에 따라 대출금리는 사실상 20여년만의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전세계가 금리를 올리고 있지만, 중국은 거꾸로 금리인하를 단행하고 있다.

◇ 부동산 의존 경제, 토건국가의 종말?

중국은 부동산 가격 상승에 기반한 ‘콘크리트 의존형’ 경제이다. 중국 지방자치단체들이 국유재산인 토지의 사용권을 매각해서 재원으로 활용한다. 토지사용권 매각 자금이 2020년 기준 지방정부 재정수입의 약 46%를 차지한다. 부동산 시장 냉각이 지속되면 토지매각이 불가능해지고 지방정부의 재정파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지방 정부가 앞장서서 부동산 경기부양책을 펴는 이유이다. 부동산 관련 산업이 GDP 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30%에 육박하고 부동산이 중산층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 60~70%이다. 부동산 가격 장기하락은 지방 정부의 파탄은 물론 중산층의 몰락을 초래할 수 있다. 중국은 부동산 가격이 오르지 않으면 국가시스템이 유지될 수 없는 진정한 ‘토건국가’라는 비아냥도 나온다.

최근 세계은행이 발표한 중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2.8%이다. 중국 정부의 목표치(5.5%)의 절반 수준이다. 세계은행은 “코로나19 봉쇄 정책으로 생산과 내수, 수출에서 차질이 발생했고 부동산 위기도 상황을 악화시켰다”고 분석했다.

◇경제성장률 반토막, 다주택도 대출 규제완화, “빚내서 집사라”

집값 하락을 방지하려는 파격적 대책이 줄을 잇고 있다. 기존 주택을 팔고 신규 주택을 사면, 매각한 주택에 매긴 개인소득세를 환급해주는 제도도 도입했다. 새 주택 매입금액이 기존 주택 매각 금액 이상이면 개인소득세 전액을 감면한다. 개인소득세는 매각 금액의 10% 수준인데, 이번 조치로 베이징 등에서는 수십만위안(수천만원)을 아낄 수 있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이달부터 생애 첫 모기지 금리를 0.15%포인트 내렸다.

대출을 풀어 부동산 투기 장려책도 나왔다. 주택 보유자가 추가로 주택을 구입할 때 일시불로 내야 하는 계약금(선수금) 비율도 낮췄다. 8월 난징, 장쑤, 쑤저우 정부는 구매자가 첫 모기지 대출을 상환하고 두 번째 주택을 계약할 경우 선수금 비율을 기존 50%에서 30%로 낮췄다. 구매자는 두 번째 주택 구매자금의 70%를 은행에서 대출받을 수 있다.

한마디로 빚내서 집 사라는 정책이다. 지방정부들은 생애 최초 주택 구매자에 대해 보조금 지급, 기존주택을 처분하고 신규 주택 구입시 취득세 지원 등의 대책을 발표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자치단체가 신규주택을 사는 소비자들에게 집값의1%에 해당하는 지역 상품권을 지급하는 등 주택구입을 독려하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지방 정부가 최근 몇 주 동안 최소한 70개의 부동산 완화 조치를 발표했다고 전했다.

◇선분양제도의 파탄

최근 중국 산시성 시안의 산시성 은행보험감독국 앞에서 아파트 분양 피해자 1000여 명이 당국에 조사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공사중단으로 피해를 보는 수분양자가 늘면서 모기지 상환 거부 운동이 중국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소셜미디어

민간 부동산업체 1위인 헝다가 디폴트 선언을 한데 이어 비구이위안(컨트리가든) 도 신용등급이 투자부적격으로 하향조정되는 등 경영위기에 빠졌다. 비구이위안은 헝다,완커와 함께 중국 3대 부동산 그룹이다. 헝다가 무리한 차입으로 자동차 등 문어발식 사업확장을 한 반면 비구이위안은 부동산개발에 전념해왔다. 그런 비구이위안도 순이익이 급감하면서 주가가 1년 사이에 70% 폭락했다. 대형업체들의 잇딴 위기로 아파트 공사지연과 중단사태가 잇따르자 모기지 상환 거부 운동도 확산되고 있다. 블룸버그 등은 모기지 상환 거부 현장이 119개 도시 342곳에 달한다고 전했다.

중국의 부동산 업체들은 90% 이상의 주택을 선분양으로 판매한다. 주택담보대출 상환은 분양 직후부터 시작된다. 주택 선분양자는 30% 정도의 계약금을 일시불로 내고 나머지는 주택담보대출로 상환한다. 원칙적으로는 분양대금은 해당 아파트 건설 비용으로만 사용해야 하지만, 개발기업들은 신규 택지 매입 등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도 한다.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미완성 상태로 방치된 주택이 중국 전역에 200만채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공사중단된 상태에서는 주택담보대출 원리금을 상환할 수 없다는 모기지 상환 거부 운동이 중국 전역으로 확산되는 것은 선분양제도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타키투스의 함정, 국가 신뢰의 위기로?

중국 부동산업체들이 신뢰를 상실한 이른바 타키투스의 함정(Tacitus trap)에 빠졌다고 일본경제신문이 최근 분석했다. S&P 글로벌 레이팅의 루이스 쿠이스 아시아 지역 수석이코노미스트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 주택 공급 시장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면, 사람들은 경제 전반에 대한 확신을 잃는다”라고 말했다.

모기지 상환저지 운동이 확산되면서 부동산 개발사들의 자금사정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 은행의 부실채권도 급증하고 있다. 주택담보대출은 은행 대출의 20% 정도를 차지한다. 씨티그룹의 조사에 따르면, 현재 전체 부동산 대출의 거의 3분의 1이 부실 채권으로 분류된다. 자본력이 약한 지방 금융기관부터 경영위기에 빠지고 있다. 다만 일부 지방자치단체와 정책은행들이 자금난으로 공사가 지연되고 있는 부동산업체에 대한 본격적인 지원을 시작했다.

시진핑 주석이 16일 개막하는 제 20차 중국 공산당 당대회에서 3연임이 확정되면 좀 더 파격적인 부동산 경기 부양책을 발표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부동산 경기침체를 방치할 경우, ·체제 위기로 전환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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