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꼭 쉬어야 하나"..달력서 '빨간 날' 지운 대통령 [대통령 연설 읽기]
박정희 "우리 민족만이 가진 자랑거리"
노태우때 경제계 요구로 공휴일서 제외
2006년 국경일로 격상시킨 노무현
MB, 공휴일로 재지정 돼 '빨간날' 복원
문재인 "우리말로 K팝 떼창, 가슴 뭉클"
한글은 그 자체로 한국인의 자부심이자 정체성이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기록유산이라는 문화적 가치와 우수성은 접어두고라도, 한류 열풍으로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외국인을 볼 때면 어쩔 수 없이 ‘국뽕’(민족적 자부심을 뜻하는 은어)이 차오른다.
이렇듯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인 한글을 스스로 기념하고 자긍심을 갖기 위한 날이 바로 한글날이다. 한글날은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난 1945년에서야 지금의 10월 9일로 정해져 이듬해(1946년) 공휴일로 지정됐다. 하지만 한글날도 정권에 따라 적잖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재임 기간 11번의 ‘한글날 담화문’을 낸 박정희 전 대통령은 모든 공문서를 한글로만 작성하도록 지시하고 일제가 허문 광화문을 제자리에 옮겨 한글 현판을 세웠다. 세종문화회관이라는 이름도 직접 붙였다고 한다. 1962년에는 한글을 국보 제70호로 지정하면서 그해 기념식을 세종대왕의 묘역이 자리한 경기도 여주 영릉에서 거행했다.
박 전 대통령은 1965년 한글날 담화문에서 “세계 어떤 민족도 제 나라 글자를 위해서 기념하는 날을 가지는 민족은 없다. 우리 민족만이 가진 특유한 자랑거리”라며 “우리가 글자만을 자랑하기보다, 그 글자를 통한 높은 문화를 자랑하고 또 그 문화를 통한 우리들의 높은 생활을 자랑할 수 있어야만 한다”고 했다.
한글날은 1991년 달력에서 지워지는 ‘비운’을 맞는다. 10월에 통상 추석 연휴가 있는 데다 개천절(3일)을 비롯해 쉬는 날이 너무 많아 경제 발전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에서였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90년 한글날을 보름여 앞둔 9월 22일 중앙일보 창간 25돌 특별회견에서 “한창 일해야 할 가을철에 쉬는 날이 너무 많아 수출과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올해는 종전대로 공휴일로 지내고 내년부터는 기념일로 하겠다”고 했다. 이듬해부터 한글날은 법정 공휴일에서 제외됐다.
참여정부 들어 한글날은 국경일로 격상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6년 한글날 경축사에서 “한글은 계급적 세계관을 뛰어넘어 백성을 하나로 아우르고자 했던 민본주의적 개혁정치의 결정판”이라고 평가하며 “한글 창제에 담긴 민본주의와 자주적 실용주의, 그리고 창조 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지향하는 혁신과 통합을 이루는 길이 될 것”이라고 했다.
‘세종 없는’ 서울 세종로에 세종대왕이 들어선 건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이다. 한손에 훈민정음 해례본을 든 세종대왕 거대한 동상이 세종문화회관 앞에 설치되던 날 이 전 대통령은 “세종대왕 같은 위대한 지도자를 가졌다는 것은 민족의 큰 자랑이다. 특히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은 겨레의 보물”이라며 “독립일이나 승전일을 기념하는 나라는 많지만 문자를 만든 날을 국경일로 기념하는 나라는 우리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이후 임기 마지막 해인 2012년 국회가 ‘한글날 공휴일 지정 촉구 결의안’을 채택해 이듬해인 2013년부터 다시 법정 공휴일로 지정됐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공휴일에서 제외한 지 22년 만에 달력에 붉게 표시되기 시작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8년 10월 9일 572주년 한글날과 세종대왕 즉위 600주년을 맞아 세종대왕 영릉을 참배했다. 현직 대통령의 세종대왕 영릉 참배는 1994년 김영삼 전 대통령 이후 24년 만이었다. 문 전 대통령은 2020년 한글날에는 “한때 공휴일이 많아 경제가 어렵다는 이유로 한글날이 공휴일이 아닌 기념일로 격하된 적도 있었으나, 국민의 힘으로 다시 5대 국경일 중 하나로 승격됐다”며 “한글날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K팝과 드라마, 영화, 웹툰을 접하며 세계인이 한글을 통해 한국을 더 깊이 알아가고 있다. K팝 공연 때 세계의 젊은이들이 우리말로 떼창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해진다”고 덧붙였다.
서희연 기자 cub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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