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승-전-역사' 한일 관계..북한이 '열쇠'?

조효정 hope03@mbc.co.kr 2022. 10. 8.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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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일 연합 대잠수함 훈련(지난달 30일)


5년 만의 한미일 연합 해상 훈련... 한미일 안보협력 시동?

한국과 미국, 일본이 북한의 잠수함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달 30일 5년 만에 연합 대잠수함 훈련을 진행했습니다.

6일에는 미국의 핵 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 일본 자위대의 이지스 구축함인 초카이함, 한국의 이지스 구축함인 세종대왕함이 참여한 가운데, 북한의 탄도미사일 도발에 대응하기 위한 한미일 합동 해상 훈련이 시행됐습니다. 훈련 해역은 독도에서 약 185km, 일본 본토에서 약 120km 떨어진 동해 공해상입니다.

같은 날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북한의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 발사 시험과 관련해 25분 동안 전화 통화를 했습니다. 전화 통화는 '굴욕 외교'라는 비판이 나온 지난달 21일 미국 뉴욕에서의 한일 약식 회담 때와는 반대로, 일본 측의 요청으로 시작됐습니다.

기시다 총리는 4일 기자회견에서도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미·일, 그리고 한미일, 나아가 '한일협력'을 재차 확인하고 강화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한일 협력'을 굳이 덧붙인 데서 5년 만에 북한 미사일이 일본 상공을 가로지른 데 따른 위기감이 엿보입니다.

북한이라는 돌발적인 외부변수 때문이지만, 대화가 거의 단절되다시피 했던 문재인 정권 시절과 비교해 일본의 자세가 조금은 바뀐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기시다의 말, 말, 말

한일 관계에 대한 기시다 총리의 언급은 올해 들어 조금씩 바뀌어왔습니다.

"중요한 이웃 나라인 한국에 대해서는 일본의 일관된 입장에 토대를 두고 (한국 측에) 적절한 대응을 강하게 요구하겠다." (1월 17일 국회 시정방침 연설)

"한국은 국제사회의 다양한 과제에 대한 대응에 협력해야 할 중요한 이웃 나라다. 국교 정상화 이래 구축해온 우호 협력 관계의 기반을 토대로 한일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고 더욱 발전시켜나갈 필요가 있어 한국 정부와 긴밀한 의사소통을 해나가겠다." (10월 3일 임시국회 소신표명 연설)

"한국은 국제사회의 다양한 과제에 대한 대응에 협력해야 할 중요한 이웃 나라다. 지난달 유엔총회를 계기로 간담한 윤 대통령과는 현안을 해결하고 한일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릴 필요성을 공유하는 동시에 1965년 국교 정상화 이래 구축해온 한일 우호 협력 관계의 기반을 토대로 한일 관계를 미래 지향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에 일치했다." (10월 6일 중의원 대정부 질문)

우선 길이가 조금씩 길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중요해졌다는 뜻입니다.

내용도 "대응을 강하게 요구" → "긴밀한 의사소통" → "한일 관계를 미래 지향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에 일치"로 조금씩 입장이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눈여겨볼 대목이 있습니다."(일본의) 일관된 입장", "국교정상화 이래 구축해온 한일 우호 협력의 관계를 기반으로"라는 구절입니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그리고 청구권 협정으로 징용을 비롯한 강제 동원에 대한 배상문제가 다 해결됐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라는 의미입니다.

9월 20일 한일 외교장관 회담


한일 관계는 '기-승-전- 역사'?

우리 정부의 입장은 이미 윤곽이 공개됐습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21일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과의 회담에서 대위변제(채무자 대신 제삼자가 우선 배상한 뒤 채권자로부터 권리를 넘겨받아 이후 구상권을 행사)를 포함한 방안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구체적으로는 '한일 기업들이 돈을 모아 기존 재단(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을 활용해 피해자들에 배상한다'는 아이디어가 비중 있게 거론됐습니다. 대상 기업은 일제강점기 당시 강제동원된 조선인 노동자를 고용했던 일본 기업과, 청구권 자금으로 설립된 포항제철 등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하야시 외상은 "일본 측의 일관된 입장을 전했다"며, 배상문제가 해결됐다는 기존 주장을 반복했습니다.

기시다 총리의 측근 역시 지난 6일 한일 전화 통화 이후 아사히 신문에 "한일의 협조는 어디까지나 안전보장에 관한 것일 뿐"이라며, "한국이 (강제 동원 문제 해결) 성과를 가져오지 않는 한 진전하지 않는다는 입장은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일본 언론도 양국 정상간의 대화가 "북한 미사일 발사의 징후 파악과 추적에 관한 정보공유를 중시했다"(산케이 신문)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역사문제에 대해서는 깊은 논의가 이뤄지지 않아 본격적인 관계 개선은 여전히 예상하기 어렵다"(요미무리 신문)고도 전했습니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위안부 합의 복원이 역사문제 해결의 시작?

강제동원 배상문제보다 주목받고 있지는 않지만, 위안부 합의 복원이 한일관계 개선의 실마리가 될 것이라는 의견도 제기됩니다.

지난 7월 18일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기시다 총리는 위안부 합의에 대한 신념이 강하다. 합의 이행 확약 없이 (한일 정상) 회담을 받기 어렵다는 견해가 있다"고 전했습니다.

기시다 총리는 외상이었던 지난 2015년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위안부 합의를 발표한 당사자입니다. 위안부 합의에 대한 애착이 큰만큼, 문재인 정권이 사실상 위안부 합의를 폐기하면서 분노도 컸을 겁니다.

반면, 윤석열 정부는 여러 차례 '위안부 합의'를 국가 간의 약속으로 존중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기시다 총리가 한일 관계에 대해 변화된 입장을 보였다면 이러한 윤석열 정부의 입장도 한몫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일본 정치·외교 전문가인 쉴라 스미스(Sheila A. Smith) 미국 외교협회 선임연구원은 지난달 17일 한국 기자들과 만나 "일본 국민에게 위안부 합의 파기에 대한 분노의 감정이 있다"며, "위안부 합의가 복원된다면 양국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쉴라 스미스(Sheila A. Smith) 미국 외교협회 선임 연구원

하지만 역사문제는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모든 외교정책이 그렇지만, 특히 역사문제에 관해서는 두 나라 정부 모두 국민 여론을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외교협상에서 행위자가 양국 정부 외에 국민까지, 4명인 셈입니다.

당장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돈보다 일본 기업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 역시 "한일 위안부 합의는 피해자 중심의 문제 해결이라는 기본 원칙에 어긋난 합의"라고 봅니다. 당사자들의 반응에 따라 여론도 민감하게 움직입니다.

스미스 연구원은 이런 한일 역사문제에 대해 "해결책이 있을지 의문"이라며, "운동선수가 부상을 안고 뛰듯이, 양국 관계에 일종의 '숙제'로 남겨 두고 미래 지향적인 관계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타협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해결책은 문재인 정권 당시의 '투트랙 접근법'(역사문제와 정치, 경제 이슈 등을 분리)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상대방인 일본 정부가 이런 접근법을 거부해왔고, 숙제로 미뤄두기에는 피해자들과 법원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김정은 위원장, 기시다 총리


변수는 북한

그런데 문 정권의 외교정책을 부정하는 윤 정권에서 역설적으로 '투트랙 접근법'이 실현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옵니다. 북한이라는 공통의 안보위협 때문입니다. 물론 일본의 일방적인 수출 규제와 한일군사정보호협정(지소미아) 복원 등 앞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의 낮은 지지율도 운신의 폭을 좁히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가까운 이웃인 한국과 일본이 대화하기 시작했다는 점만은 긍정적입니다. 한일 정부가 반목하면 양국 국민도 피해를 보기 때문입니다. 다만 너무 서두르다가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과 미 동서센터(East-West Center)의 '2022 한·미 언론 교류 프로그램'에 참여해 작성되었습니다.

조효정 기자 (hope03@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news/2022/politics/article/6415083_3566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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