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형·짱개·똥남아'.."우리는 150년 전부터 지독한 인종주의자였다"[책과 삶]

임지선 기자 2022. 10. 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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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불러보았다
정회옥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72쪽 | 1만7000원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 기념 대회가 19일 서울 보신각 앞에서 열려 참가자들이 구호가 적힌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김창길기자
‘영·미 1등국, 아프리카 4등국’
미국 유학 다녀온 개화기 엘리트
비 백인을 열등한 존재로 취급

민족·발전주의 등과 시대별 결합
한국식 인종주의 스펙트럼 완성

흑형·짱개·튀기·똥남아·개슬람···
한 번은 듣거나 불러보았을 ‘멸칭’
“인종차별 없는 한국? 그건 착각”

한국에는 인종차별이 있을까, 없을까.

의외로 많은 한국인들이 ‘한국은 인종차별 없는 나라’ ‘이 정도면 외국인에게 차별 없는 나라’라고 생각한다. 이는 ‘순수한 믿음’에 불과하다. 그저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한국이 인종차별이 없는 나라’라고 여긴다면 당신은 알고 보면 일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차별과 배제에 둔감한 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한 번은 불러보았다>는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해 식민주의, 순혈주의, 민족주의, 발전주의, 우월주의 등 시대별 지배 담론과 얽히고설키며 한국식 인종주의가 만들어진 과정을 짚어본다. 150여년간의 여정은 ‘흑형’ ‘짱깨’ ‘튀기’ ‘똥남아’ ‘개슬람’ 등 우리 모두가 한번은 불러보았을 또는 들어보았을, 멸칭이 탄생한 배경이다. 소수자 정치론을 연구해온 저자 정회옥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많은 한국인이 인종주의자이면서도 스스로 인종주의자임을 깨닫지 못한다고 꼬집는다.

저자가 말하는 한국식 인종주의의 첫 단추는 강화도조약을 맺은 1876년 개항 이후다. 이때 미국 유학을 다녀온 개화기 조선 엘리트들은 백인 중심적이고, 비백인을 열등한 존재로 취급하는 서구의 위계적 인종 관념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들은 근대적 매체인 신문을 통해 이를 그대로 전파했고, 대중도 ‘인종주의’를 흡수했다. 1899년 2월23일 ‘독립신문’ 사설은 ‘영국과 미국을 비롯해 1등 문명국’ ‘일본과 이탈리아, 러시아 등은 개화국’ ‘대한과 청국, 태국, 페르시아, 미얀마, 터키, 이집트’는 반개화국이라고 했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야만스러운 4등 국가라며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저자는 “개화기 엘리트들이 미국의 인종주의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더욱 관용적인 인종관과 세계관을 제시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우리 사회는 차별과 혐오 없는 사회가 되지 않았을까”라고 되묻는다.

저자는 ‘한국인은 피부색이 검으면 위험하고 가난하며 열등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이것이 바로 한국식 인종주의의 민낯이라고 지적한다. 픽사베이

한국식 인종주의의 두번째 형성 시기는 일제강점기다. 일본에 저항하면서 순혈주의와 단일민족을 강조하는 민족주의가 시작됐고, 일본의 일상적 폭력에서 비롯된 집단적 열등감이 함께 형성됐다. 반공주의가 시작된 이승만 정부 시절,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처럼 단일민족으로서의 통합과 단결은 생존과 번영에 직결됐다. 결과적으로 단일민족으로 뭉치는 데 방해되는 존재나 우리 민족이 될 수 없는 사람은 배제하는 문화로 이어졌다. 한국전쟁을 계기로 미국과 접촉 속도나 빈도가 증가하자 수많은 한국인이 미국 대중문화를 자연스럽게 수용했다. 1952년 크게 유행한 ‘샌프란시스코’라는 노래가 있다. 나를 ‘아메리카 아가씨’로 칭하고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금문교를 생각하며 로맨스를 꿈꾸는 가사가 담긴 노래다. 저자는 한국 대중문화의 미국 지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노래로 꼽았다.

박정희 시대를 거치면서 경제발전주의와 가족주의가 결합했다. 이 역시 한국인의 타자 배제적 성향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수출 주도형 경제성장을 추구하면서 ‘우리나라 대 외국’ 대립축이 형성됐고 우리와 우리가 아닌 집단을 빠르게 구분하는 한국인의 배타성, 그 구분 기준이 경제적 성공이 되는 과정을 거쳐 한국식 인종주의는 점점 완성됐다.

21세기에도 한국은 여전히 피부색과 경제력 등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차별하는 사회다. 얼핏 친근감의 발로로 느껴지는 ‘흑형’이라는 유행어도 사실 인종차별적 표현이다. 단적으로 우리는 ‘백형’이나 ‘황형’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흑형은 흑인을 독립된 개인으로 보는 대신 ‘몸이 좋은 집단’ ‘운동을 잘하는 집단’ 등으로 간주하는 편견에 기반한다.

특히 한국식 인종주의는 피부색의 밝고 어두운 정도와 출신 국가의 경제력 수준이 중첩되어 매우 복잡한 모습을 띠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지난해 인도네시아에서 유행한 한국 관련 만화가 있다. 만화에서 한국인은 백인 남성에게 “모든 인종은 평등하다.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을 멈춰라”라고 울면서 호소하지만 정작 어두운 피부색의 동남아시아인 남성에게는 냉소를 띠며 “노예 인종”이라고 조롱한다. 한국식 인종주의의 이중성을 비꼰 만화다. 저자는 “오늘날 한국인은 백인을 모방하는 동시에, 같은 인종이지만 경제성장이 더딘 동남아시아인을 멸시하는 태도를 보인다”고 말한다.

인천의 차이나타운. 경향신문 자료사진

국가가 법과 제도를 동원해 ‘체계적으로’ 차별해온 또 다른 집단이 ‘화교’다. 1894년 청일전쟁에서 중국이 패배하면서 화교를 향한 조선인들의 멸시가 심해지기 시작했다. 1948년 외국인에 대한 출입규제와 외환규제, 1950년 외국인의 창고 폐쇄령 등의 조치로 무역업에 종사하는 화교의 경제력을 빼앗았다. 저자는 ‘인종 없는 인종주의’라고 표현했다. ‘국민 음식’인 짜장면을 ‘짱깨’로 부르는 이면에도 이웃 민족(중국)이자 심지어 동포(조선족)인데도 차별하는 이중성이 깔려 있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저자는 타인에 의해 차별당한 역사와 타인을 차별해온 역사를 짚어가는 과정을 통해 ‘한국을 인종차별이 없는 청정지역’이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착시일 뿐”이라고 단언하며 제안한다. “우리는 150여년 전부터 지독한 인종주의자였다. 식민지배의 경험을 통해 ‘민족’이라는 전통을 만들었다면, 이제는 ‘관용’과 ‘환대’의 전통을 만들 차례다.”

한 번은 불러보았다

임지선 기자 vis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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