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를 죽이면 '왕'이 된다고 착각하는 남자들 [젠더살롱]

입력 2022. 10. 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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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폭력으로 권력을 확인했던 헨리 8세와 힘겨운 '안전이별'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문화를 읽습니다. 역사 에세이스트 박신영 작가는 '백마 탄 왕자' 이야기에서 장자상속제의 문제를 짚어보는 등 흔히 듣는 역사, 고전문학, 설화, 속담에 배어 있는 성차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번갈아 글을 쓰는 이한 작가는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활동가'로서 성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남녀가 함께 고민해 볼 지점, 직장과 학교의 성평등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한스 홀바인(Hans Holbein the Younger)이 1540년 그린 헨리 8세 초상화. 로마 국립고대미술관. 위키피디아 캡처

서유럽사에서 16세기부터 18세기에 걸친 시기는 절대왕정 시대다. 이 시절 각국의 왕은 지방 영주의 권력을 제한하고 왕권을 강화하여 근대 국가의 체제를 갖춘다. 왕권 강화의 방법 중 하나는 국가가 사법권을 갖고 폭력을 독점하는 것이었다.

중세 영주와 농노의 관계는 근대 지주와 소작농 관계와 다르다. 토지에 대한 소작료만 받는 지주와 달리, 영주는 사법권을 갖고 있기에 그 지역의 실질적 지배자였다. 영주에게는 '생살여탈권(生殺與奪權)' 즉, 피지배민을 살리고 죽이는 것을 맘대로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 또 중세에는 중앙 공권력에 속한 경찰도 없었기에 사적인 복수와 결투가 흔하게 이루어졌다.

근대 국가 성립 과정에서 상황은 변한다. 국왕은 분쟁을 국왕의 재판정으로 가져온다. 지방 영주가 아니라 왕의 판결에 복종하게 하여 왕권을 강화한 것이다. 또 정적에 대한 테러, 사적인 복수와 결투를 금지한다. 허가를 받지 못한 귀족의 성채 시설을 파괴하고 도시의 무장을 해제한다. 왕은 귀족의 무력을 행사할 권리를 막고 게르만 전사 귀족의 후예인 이들의 호전성을 왕의 군대에서 왕을 위해 발휘하도록 이끈다.

사법권과 폭력을 국가가 독점한 상황에서는 왕이 폭군이 되기 쉽다. 16세기 영국의 절대왕정을 수립한 헨리 8세(1491~1547)가 대표적이다. 6번 결혼하고 2명의 아내를 처형한 것으로 악명 높지만 결과적으로 헨리 8세가 이혼하고 국교회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로마 교황청과 결별한 덕분에 이후 영국은 대륙의 분쟁에서 벗어나 내실 있게 발전할 수 있었다.

헨리 8세의 첫 왕비는 가톨릭교도인 에스파냐의 공주 카탈리나다. 둘 사이에 메리 1세가 태어났다. 이후 대를 이을 왕자가 태어나지 않은 데다가 왕비의 시녀인 앤 불린과 사랑에 빠지자 헨리 8세는 카탈리나와 이혼하려 했다. 그러나 가톨릭교회는 이혼을 인정하지 않았다. 뇌물 등 어떻게든 꼼수를 써보려고 해도 통하지 않았다. 교황청 뒤에는 유럽 대륙을 호령하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로스 1세가 버티고 있었는데, 카탈리나는 카를로스의 막내 이모였기 때문이다. 대단한 처가 때문에 싫증난 아내를 쉽게 버릴 수 없는 처지였다고나 할까.

헨리 8세는 교황과의 관계를 끊고 영국의 캔터베리 대주교에게 억지로 결혼무효 선언을 하게 한 다음 이혼하고 앤과 결혼한다. 독자적인 개신교 교회, 즉 영국 국교회(우리나라에서는 성공회)를 설립하고 스스로 교회 수장이 된다. 이 두 번째 결혼에서 엘리자베스 1세가 태어난다.

앤 역시 카탈리나처럼 유산만 거듭하고 왕자를 낳지 못한다. 헨리 8세는 이혼을 요구했다. 앤은 버티었다. 왕은 앤에게 누명을 씌워 처형해버리고 제인 시모어와 결혼한다. 세 번째 결혼으로 드디어 태어난 왕자가 에드워드 6세다.

제인 왕비가 출산 후 사망하자 헨리 8세는 지금의 독일 지역에 있었던 클레베 공국의 공주 아나와 네 번째로 결혼한다. 가톨릭 국가 에스파냐에 대항하기 위해 유럽의 개신교 국가와 손잡기 위한 정략결혼이었다. 그러나 또 이혼.

한스 홀바인(Hans Holbein the Younger)이 1539년경 그린 헨리 8세의 네 번째 왕비인 클레베 공국의 아나. 파리 루브르 박물관. 위키피디아 캡처

다섯 번째 왕비는 10대 소녀 캐서린 하워드였는데, 간통죄로 처형당한다. 여섯 번째 왕비 캐서린 파는 변덕스럽고 잔인한 헨리 왕의 비위를 잘 맞추어 살아남았다. 헨리 8세 사후 재혼했지만 출산 후 사망한다.

헨리 8세의 이혼 과정은 요즘 시각으로 보면 많이 이상하다. 아내가 이혼에 응하지 않는다고, 아내가 간통했다고 죽여버리다니? 남편이 왕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헨리 8세는 왕권을 강화하며 강력한 전제정치를 행하는 과정에서 토머스 모어, 토머스 크롬웰과 같은 공신들도 50여 명이나 반역죄로 처형했다. 그러니 아내가 왕인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게 행동한 것 역시 반역죄였던 것이다. 간통을 했든, 이혼에 응하지 않고 버티었든.


힘겨웠던 '안전이별'

그러면 절대권력자인 왕이 이혼을 원할 때 순응했기에 네 번째 왕비 아나는 쉽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일까? 아니다. 아나의 이혼 과정도 쉽지 않았다. 이 시기는 이미 왕이 국교회의 수장이었기에 교황청의 허가를 받을 일도 없다. 성적 결합이 없었기에 아나만 동의하면 혼인 무효로 돌려 비교적 간단히 이혼할 수 있었다. 문제는 전쟁 가능성이었다. 헨리 8세는 아나 왕비가 자신이 받은 모욕을 고자질하고 남동생인 클레베 공작 빌헬름을 부추겨 전쟁을 일으킬 것을 걱정했다. 치사하게도 오가는 편지들을 뜯어보기까지 했다. 이혼을 원하는 왕에게 반역죄로 꼬투리 잡혀 처형당할 수도 있었던 위험한 순간이었다.

아나는 지혜로웠다. 영국에서의 생활에 만족한다는 내용만을 편지에 써서 보낸다. 아나는 이혼을 원한다는 내색도 보일 수 없었다. 헨리 8세가 가진 남자로서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 또한 위험했기 때문이다. 매력적인 왕을 몹시도 원하고 그에게 사랑받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표현을 공개적으로 계속해서 왕의 허영심을 만족시키면서, 동시에 성공적으로 이혼하고 살아남아야 했다. 이 어려운 일을 아나는 해낸다. 추밀원의 요청에 따라 '힘겹고도 슬프지만 왕에게 품은 큰 사랑으로 이혼 판결을 인정한다'고 왕에게 편지를 쓴 것이다. 확인 편지로써 혼인 무효 판결에 정당성을 부여한 것은 물론, 상실감에 젖어 있음을 암시해서 왕을 기분 좋게 만들어준 것이다.

아나의 이혼 과정은 '안전이별'의 역사적 예다. 나를 먼저 버린 왕이지만 거부 의사를 대놓고 밝히면 생명이 위험해진다. 왕을 거부하면 반역죄인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위의 일은 16세기에 일어난 일이고, 남자가 절대군주였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모든 폭력은 왕이 아니라 국가가 통제한다. 왕실이 있는 국가에서도 신하를 마구 처형하는 왕은 없다. 우리는 문제가 생기면 사적 폭력을 쓰지 않고 경찰에 신고한다. 왕처럼 갑질하는 회장은 바로 제보해서 여론의 지탄을 받게 만든다. 헨리 8세 시대와 같은 폭력은 오직 여성에 대한 폭력이다.

포털 사이트 다음과 네이버에서 '왜 안 만나줘'를 검색하면 수많은 여성에 대한 폭력 사건 뉴스가 나온다. 다음, 네이버 캡처

21세기가 된 지 20년이나 지났는데도 여전히 아내 폭력, 데이트 폭력, '왜 안 만나줘' 스토킹 폭력이 만연하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스토킹 처벌법이 시행된 이후 같은 해 12월 31일까지 스토킹 처벌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검거된 피의자 818명 중 남성은 669명(82%)이었다. 2021년 신상정보가 공개된 피의자는 총 10명인데 그 가운데 절반이 스토킹 중이거나 예전에 교제했던 여성과 그 가족을 살해한 피의자였다. 여성에게는 남성을 거부할 권리가 없고, 남성은 본인 마음에 안 들게 구는 여성을 때리거나 죽일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벌어지는 일이다.

도대체 어느 남자가 그런 전근대적 망탈리테(정신구조)를 가지고 있냐고? 지난달 발생한 '신당역 역무원 스토킹 살인사건'에 대해 이상훈 서울시의원이 "좋아하는데 안 받아주니 남자 직원(가해자)이 폭력적인 대응을 했다"고 망언한 사실을 보라.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오죽하면 '안전이별'이라는 말까지 생겼겠는가.

이상훈 서울시의회 의원이 지난달 16일 오후 열린 시의회 본회의에서 시정질문을 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사건 발생 후 엄벌하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아예 처음부터 안 하도록 여성에 대한 범죄에 관대한 사회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 거부당해서 화난다고 상대를 죽이는 것을 왜 로맨틱하게 포장하고 이해해 주는가. 남성이 친구 남성에게 야구장 같이 가자고 했다가 거절당했다고 상대를 죽이는가? 내가 응원하는 야구팀을 욕하면 나를 무시했다고 화나서 상대를 죽이는가? 그렇지 않다. 대개 여성에게 거부당했을 경우에 살인으로 이어진다. 왜? 하급 인간인 여성은 남성을 거부할 권리가 없기에 남성을 거부하면 반역죄인이기 때문이다.

앞서 헨리 8세는 왕이니까 아내인 여성을 죽일 수 있었다. 이를 뒤집으면 '여성을 죽이면 왕이 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왕처럼 권력을 행사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가 있다'가 된다. 말이 심한가? 그렇지 않다. 길고양이 학대 사건을 보라. 갑질 폭력 하는 자들을 보라. 자신보다 약한 상대를 때리고 죽이는 것 자체가 재미있고 자신이 왕이나 전지전능한 신이 된 듯한 쾌감을 느끼기에 폭력을 쓰는 것이다. 그런데 피해자가 여성인 경우에만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피해 여성 탓을 하거나 가해남성의 창창한 미래를 걱정해 준다. 이 사회가 성차별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성에 대한 남성의 사적 폭력 행사를 용인해 주기 때문이다.

21세기에도 여전히 미개한 자들의 그릇된 권력욕과 지배욕을 로맨틱하게 포장하고 이해해 주지 않아야 여성이 안전한 사회가 된다.

덧. 16세기 튜더 왕조 시절, '곰 곯리기(bearbaiting)'라는 것이 있었다. 말뚝에 쇠사슬로 묶어놓은 곰을 맹견이 물어뜯어 죽이는 것을 구경하는 대중오락공연이었다고 한다. 헨리 8세 시절의 각종 폭력 중, 지금은 야만으로 여겨 금지된 것이 대부분인데 여성에 대한 폭력만 이어지고 있는 것, 정말 이상하고 끔찍하지 않은가?

박신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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