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언론 보고 현안 안다는 ‘식물 질병청장’

김경은 기자 2022. 10. 8.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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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국회 보건복지위 국정감사에서 정의당 강은미 의원이 백경란 질병관리청장에게 작년 10월 코로나 백신 접종 후 사망한 A군 사례를 언급했다. “그 부모가 공개를 반대했는데 (질병청이) 왜 공개했느냐”고 묻자 백 청장은 “보고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강 의원이 다시 “A군이 백신 접종 후 백혈병으로 사망하자 질병청이 20일 만에 ‘백신과 인과성 없음’이라고 발표하려 했던 사실을 아느냐”고 묻자 백 청장은 “언론 보도를 통해 알았다”고 답했다. 백 청장은 국감 내내 “보고받지 못했다” “언론 기사 보고 알았다”를 여러번 반복했다.

그러자 의원들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강 건너 불구경하냐” “유체이탈 화법”이라면서 백 청장 거취 문제까지 거론했다. 국민의힘 강기윤 의원은 “목소리를 크게 해달라. 그래야 자신 있어 보인다”고 충고했고, 역시 국민의힘 소속인 조명희 의원은 “말투가 쌀쌀하고 (태도가) 뺀질뺀질하다”고 질타했다.

백 청장은 서울대 의대를 나와 삼성서울병원에서 일했던 손꼽히는 감염병 전문가다. ‘과학 방역’을 내세운 윤석열 정부 코로나 전선을 이끌어야 할 수장이다. 그런데 이번 국감장에서 보인 태도는 “전문가 맞느냐”는 의구심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복수 의료계 인사들이 전한 속사정은 달랐다. 백 청장이 조직 장악에 실패하면서 사실상 ‘식물 청장’에 가까워져 있다는 것이다. 평생을 질병청 조직과 함께했던 전임 정은경 청장과 달리 백 청장은 안철수 의원과 친분이 있다는 정치적 배경을 등에 업고 ‘굴러온 돌’이란 게 내부 인식이라고 한다. 그렇다 보니 백 청장 취임 이후 질병청 간부들이 청장에게 제대로 보고하지 않은 채 정책을 공개하는 일이 잦아졌고, 뒤늦게 이를 접한 백 청장이 뭐라 하지도 못하고 속만 썩이고 있다는 전언이다.

조직 장악력에 대한 우려는 백 청장 취임 당시부터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취임 6개월이 다 된 시점에서 아직도 이런 잡음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는 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자질 논란으로 이어지고 ‘인사 실패’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백 청장 입지가 흔들리다 보니 질병청 국감은 본질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 지금은 2년 넘게 우리 사회를 괴롭혔던 코로나 대유행이 차츰 잦아들며 팬데믹에서 엔데믹으로 전환하는 시점이다. 이 시기 방역 정책은 어떻게 전개될지를 묻고 백 청장은 대책과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한 백신 전문가는 “(국감이) 정말 한심하다”면서 “코로나 정부 대응에 문제가 없는지, 앞으로 정책 방향에 대해 파고드는 의원은 없고, 취임 훨씬 전에 샀던 청장의 주식 보유 적절성이나 백신 피해 유가족을 데려와 보상이 미흡하다는 감정적 질문만 끝없이 반복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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