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현 "저들은 얼굴마담·꼭두각시 원했지만, 난 '진짜 혁신' 하고 싶었다" [아무튼, 주말]
타임 '넥스트100인' 오른 MZ 정치인
'비대위원장 82일' 책 펴내는 박지현
‘82일.’ 스물여섯 살 박지현이 더불어민주당의 공동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지낸 시간이다. 한국 정치사에서 20대 여성이 주요 정당의 당대표급 위치에 오른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지난 3월 13일부터 6월 2일까지 거대 야당의 사령탑으로 지내는 동안,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세간의 화제가 됐고 큰 파장을 일으켰다. 민주당 안팎에서는 그를 반대하는 이들과 지지하는 이들이 격하게 충돌했다.
당초 정치권에서는 그가 ‘바지사장’ ‘꼭두각시’ ‘선거용 총알받이’에 지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그는 끊임없이 당 주류와 다른, 반성과 쇄신의 목소리를 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박완주·최강욱 의원 사건과 관련해) 우리 당은 잘못된 과거를 끊어내야 한다. 선거를 이유로 성폭력 사건에 대한 조사와 처벌을 늦추지 않겠다” “(당내 586그룹을 겨냥해) 아름다운 퇴장을 준비해야 한다”….
6·1 지방선거가 민주당의 참패로 끝나고, 박지현은 비대위원장직에서 물러났다. 한 달여 뒤 그는 당 대표 출마를 선언했지만, 6개월 전 입당한 권리당원이어야 피선거권이 있다는 당헌·당규를 이유로 거부당했다. 이후 이재명 신임 당 대표를 향해 “(전당대회) 권리당원 투표율 37%를 ‘압도적 외면’으로 읽어야 할 것”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에 대해) 이 대표가 침묵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등의 쓴소리를 쏟아냈다.
최근 그의 이름이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에 등장했다. 타임은 지난달 28일(현지 시각) ‘떠오르는 인물 100인(TIME 100 NEXT 2022)’ 리더 부문에 박지현을 선정했다. 타임은 “그의 재임 기간은 짧았지만, 급격한 인지도 상승은 그를 한국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정치인 중 한 명으로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앞서 블룸버그통신은 “권력형 성범죄, 여성에 대한 폭력, 윤석열 대통령의 젠더 정책에 분노하는 한국 여성 수백만 명의 길잡이별(lodestar)이 됐다”고 그를 평가했다.
지난달 말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박지현을 만났다. 잔뜩 인상 쓴 표정으로 뉴스에 나오던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광장 분수에서 노는 아이들을 보고 “귀여워”란 말을 연발하며 웃었고, 취미를 묻는 말에 잠시 머뭇대다 “코인노래방 가는 것”이라고 말하며 쑥스러워했다. 정치 얘기가 나오자 표정이 진지해졌다. 이런 대목에서였다. “민주당으로부터 토사구팽 당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그렇다. 나를 비대위원장 자리에 앉힌 것은 말로만 혁신과 변화를 위한 것이었지, 실제로는 얼굴마담과 꼭두각시 역할만 하라는 것이었다. 진짜 혁신해보자 하니까 ‘너 왜 진짜 하려고 해? 안 돼, 절대 안 돼’ 하며 문을 닫아버리더라”고 했다. 2시간 30분가량의 인터뷰 동안 그는 대부분 즉답을 내놨다. 민주당 강경 지지층으로부터 비난받을 것이 두렵지 않느냐는 말에, 그는 “내가 봉사활동을 해도 욕하는 분들이다. 뭘 해도 싫어하니까, 괜찮다”며 웃었다.
◇월요일이 너무 싫었다
-비대위원장에서 물러난 지 4개월 정도 흘렀다. 어떻게 지냈나.
“아시다시피 당 대표 출마를 했었다. 비록 무산됐지만 민주당의 민낯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였다. 인도 정부가 세계 청년 정치인들을 초청해, 열흘간 다녀왔다. 최근엔 기후위기, 국민연금 등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다. 그리고 책을 쓰는 중이다. 20대 여성으로 거대 정당의 비대위원장이 되어 겪은 일들을 남겨놓는 게 중요할 것 같아서 집필을 시작했다. 11월 중 발간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민주당 비대위원장으로 지낸 82일은 어떤 시간이었나.
“매일 정신이 없었다. 누군가 내 멱살을 잡고 끌고 다니는 느낌이었다. 다 부딪치면서 스스로 알아가야 했다. 사소하게는 회의 주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부터 (당무와 관련해) 누구 하나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지금 민주당을 보면, 만족할 만한 성과는 사실 없다. 차별금지법 같은 이슈는 내가 좀 더 세게 얘기해서 밀어붙였어야 하지 않았나 후회한다. 그래도 내가 남긴 것을 꼽자면, 청년들도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는 것 아닐까. 그동안 민주당에서 청년들이 ‘들이받은’ 적이 없었다.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할 수 있는 청년도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회의를 느꼈을 때가 많았나.
“매번! 가장 회의감과 무력감이 컸을 땐 의원들이 철저히 나를 패싱(무시)했을 때다. 기자와 카메라가 없던 월요일 고위전략회의 때 유독 그랬다. 나 빼고 참석자가 모두 남성 중진 의원들이었다. 내가 얘기하는 것은 들은 체도 안 하고 휴대폰을 보거나 옆자리 의원과 떠들더라. 나를 꼭두각시로 (비대위원장에) 앉힌 것을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태도와 행동에서 그게 뻔히 보였다. 월요일이 너무 싫었다.”
-중진 의원들과 고성을 지르며 싸우기도 했다.
“‘책상 쾅’을 말하는 건가, 하하! ‘586 용퇴론’ 등 쇄신안에 대해 말했는데, 회의가 비공개로 전환되자 윤호중 위원장이 ‘지도부의 자질이 없어요!’라고 소리치며 책상을 쾅 치고 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전해철 의원이 이야기를 시작하자 (윤 위원장이) 뻘쭘해 하며 자리에 앉았고, 내가 말하려고 하자 다시 일어나 나가더라. 웃기지 않나. 나를 동등한 정치인, 같은 비대위원장으로 본 게 아니라 어린 여자애 정도로만 취급했기 때문에 나온 행동이었다.”
박지현은 지방선거를 일주일 앞두고 혁신안을 발표했다. 지도부 내홍의 원인이 됐던 ‘586 용퇴론’을 포함한 세대 교체와 당내 성범죄 무관용 원칙, ‘내로남불’과 온정주의 타파, 폭력적인 팬덤 정치와의 결별 등이 담겼다.
-혁신안이 이뤄졌나.
“지금 보면 제대로 이뤄진 게 하나도 없다. 신당역 사건에 대해 ‘좋아하는데 안 받아주니 폭력적 대응을 했다’는 망언을 한 서울시의원을 (당이) 제명해도 시원치 않은 판에 겨우 당원권 정지 6개월 징계를 했다. 민주당은 변화와 혁신을 거부하고 있다.”
-‘586 용퇴론’에 반발이 거셌다.
“변화는 시끄럽게 이뤄지는 게 당연하다. 시대가 바뀌었으면 사람도 바뀌어야 한다. 낡은 생각으로 시대를 따라잡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대로 있으면 우리 당에 희망은 없다. 기득권이 스스로 물러나는 일은 없다. 계속 싸우고 밀어낼 것이다.”
-당 대표 선거에 나선 이유는?
“개인적으로는 진짜 안 하고 싶었다. 얼마나 더 욕을 먹을지 무서웠다. 그래도 혁신의 메시지를 내는 것이 중요하단 생각에 도전했다. 내가 들이받아야, 다른 청년들도 도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폭력적 팬덤 따랐다면 ‘박지현’은 사라졌을 것
박지현의 존재가 대중에게 처음 알려진 것은 ‘n번방’ 사건을 공론화한 추적단 ‘불꽃’의 활동가였을 때다. 그는 2019년 7월부터 1년 넘게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가 벌어지는 텔레그램 대화방 100여 곳을 잠입 취재했고, 경찰의 수사와 가해자 검거를 도왔다. 작년 12월 민주당 영입 제안을 받은 그는 올해 1월 27일 선대위에 합류했다. 대선을 40여 일가량 앞둔 때였다.
-정치에 입문한 이유는?
“‘불꽃’ 활동을 하면서 한계를 많이 느꼈다. 변화를 이루려면 입법이 필요한데, 의원 한 명 만나기도 어렵더라. ‘내가 정치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불꽃 활동을 하면서 민주당 권인숙 의원과 연이 닿았고, ‘선대위에 들어와줬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여성 혐오와 성별 갈라치기를 선거 전략으로 쓰는 국민의힘이 정권을 잡게 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수락했다.”
-‘n번방’ 공론화에 힘쓴 이수정 교수는 이재명 후보가 스토킹 살인을 저지른 조카를 변호한 것을 비판했는데.
“후보 개인의 결함이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나는 민주당의 대선 공약, 정책을 보고 합류를 택했다. ‘불꽃’ 활동을 하던 2020년 경기지사였던 이재명 대표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 (이 대표가)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고 느꼈다. 그를 도운 것에 후회는 없다. 나는 지나온 일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 편이다.”
-대선도, 지선도 패배했다.
“몸과 마음을 다 바쳐서 일했다. 국민의 바람대로 당이 반성하고 혁신할 수 있도록 노력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민주당은 반성도, 혁신할 생각도 없었다.”
-친민주당 성향의 ‘스피커’ 중엔 지방선거 패배의 원인을 박지현에게 돌리는 이들이 있다.
“그 스피커라는 사람들, 대부분 ‘사이버렉카(견인차가 교통사고 차량을 먼저 차지하려고 경쟁하듯 인터넷에서 조회 수를 올리기 위해 설익은 주장과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이들)’들이다. 처음엔 날 좋아했다. 그런데 내가 검수완박 속도 조절을 얘기하고, 조국 전 장관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성 비위 의혹을 받은) 박완주 제명하고, 최강욱 징계해야 한다고 하니까 돌아섰다. 모든 것에 대해 ‘박지현 탓하기’로 전략을 바꾼 거다. 그들이 하라는 대로 박완주·최강욱 의원 봐주고, 586 물러나라 하지 않았으면 그들은 나를 계속 좋아했겠지. 그러나 그렇게 했다면 박지현이란 사람은 사라졌을 거다. 내가 살아온 인생, 상식을 다 부정해버리는 것이니까.”
-선거 패배의 원인을 뭐라고 보나.
“민주당이 폭력적 팬덤이 시키는 대로 민생은 내팽개치고 검수완박 같은 것이나 한 데 있다. 현재 민주당은 국민의 목소리가 대변되지 못하고, 극렬 팬덤에 속한 일부 당원들 목소리만 과대 대표되고 있다. 폭력적 팬덤의 특징은 정치인을 숙주 삼아 이들에게 바이러스를 퍼뜨리다가 마음대로 안 되면 숙주를 죽이려고 한다는 것이다. 현재는 극렬 문파, 극렬 조국파 등이 섞인 사이버렉카와 개딸들이 자신의 정치를 관철하기 위해 이재명 대표를 숙주 삼고 있다.”
-폭력적 팬덤을 끊어내는 게 가능할까.
“민주당이든 국민의힘이든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해야 하는데, 목소리를 내는 순간 팬덤에 찍힐 게 두려워 말을 못한다. 지도자가 나서서 이 잘못된 구조를 부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극렬 문파의 문자 폭탄을 ‘양념’이라고 하면서 끊어내지 않은 것이 지금의 상황을 만든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위협을 받은 일도 많았나.
“선거 유세 지원을 가면 나를 붙잡고, 욕하고, 소리 지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갈수록 강도가 세져서 ‘이러다 테러를 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7월에는 한 유튜버가 집 앞에 찾아오기도 했고, 8월에는 ‘n번방’ 가담자들이 ‘박지현 능욕방’을 만들어 불법 합성물들을 유포하기도 했다.”
-민주당 안에서 당을 바꾸고 싶은 건가.
“나를 응원하는 분들, 나를 싫어하는 분들의 공통된 조언이 있다. 당을 떠나라는 것이다(웃음). 떠날 생각도, 신당을 만들 생각도 없다. 현실적으로 정치를 바꾸려면 거대 양당 안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주당을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대중 정당으로 만드는 것이 나의 목표다.”
-많은 정치인이 계파에 적을 두고 활동한다.
“줄을 선다는 것은 곧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다. 무엇보다 줄 서고 싶은 정치인이 없다. ‘썩은 줄’밖에 없기 때문이다. 줄 서는 정치가 진정으로 국민이 원하는 정치인가? 국민이 불행해지는 정치를 하고 싶진 않다. 나는 친명도 친문도, 반명도 반문도 아니다.”
-청년 정치가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는 뭐라고 보나.
“가장 큰 문제는 돈 문제다. 있는 집 자식이 아니면 정치를 할 수 없는 구조다. 정당이 청년 정치인을 키우는 데 예산을 배정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본다. 나 같은 경우는 ‘불꽃’ 활동으로 받은 상금이나 책 인세 등으로 생활하고 있다. 정당 내에서 청년과 기성세대가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문화도 필요하다. 만 40세가 넘어야 대선에 나갈 수 있는 헌법도 고쳐야 한다.”
◇국민 눈에서 눈물 나지 않게
박지현은 정치 입문 이후 가장 보람된 순간으로, 공군 성폭력 피해자인 고(故)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 조사를 위한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을 때를 꼽았다. “(여야 의원 중에) 그 누구도 특검법이 통과되는 현장에 이 중사 아버님을 초청하지 않았다. 아버님을 초청하고, 국회의장께 부탁해 본회의장 방청석에 계실 수 있게 했다. 특검법안이 통과되는 순간 아버님과 함께 꺼이꺼이 울었다.”
-당신이 추구하는 정치는 무엇인가.
“이 중사 아버님을 만나고 나서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따뜻하게 하는, 봄날의 햇살 같은 정치를 하자는 신념이 명확해진 것 같다. 정치인들이 툭하면 ‘민생’을 입에 올리지 않나. 민생이 뭔가. 국민의 목숨을 살리고, 그들의 삶을 보듬는 것 아닌가. 그런데 지금의 정치는 그렇지 않다.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뿐만 아니라, 애초에 눈물이 나지 않게 하는 게 정치인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받은 비판 중 가장 뼈아픈 것은.
“정치는 혼자 하는 게 아니라 함께하는 것이라는 말씀이다.”
-신당역 사건에 대해 여가부 장관이 ‘여성 혐오 범죄로 보지 않는다’고 했다.
“신당역 사건은 분명한 여성혐오 범죄다. ‘좋아하면 좀 쫓아다닐 수도 있지’ 하는 그릇된 남성우월주의, 성차별의식이 낳은 살인 사건이다.”
-왜 자꾸 이런 범죄가 일어날까.
“차별과 혐오를 해결해야 할 시대적 과제로 보지 않고 이용해야 할 정치적 책략으로 보는 정치인들이 문제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일부 20대 남성들 표를 얻기 위해 여가부 폐지 같은 갈라치기 공약을 내세웠다. 나는 이준석 같은 사람이 정치를 떠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지 5개월가량 지났다. 어떻게 평가하나.
“압수수색해서 누구 잡아넣기를 빼고는 전부 못 하는 것 같다. 지금 경제도, 외교도 다 나락으로 가고 있지 않나.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기에 잘하길 바라지만, 지금까지는 나라의 미래에 대한 비전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전임자로서 이재명 대표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여권이 계속해서 ‘똥 볼’을 차고 있는데, 그럴수록 당은 민생에 매진했으면 좋겠다. 이 대표가 자신에 대한 수사는 개인적으로 대응하고, 당은 민생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잘 이끌어주길 바란다.”
◇어릴 적 꿈 중엔 대통령도… ROTC도 지원
유년 시절 박지현의 장래 희망은 여러 가지였다. 군인, 기자, 검사, 국회의원, 대통령…. 그가 이런 꿈들을 품은 데는 윤리 교사였던 어머니 영향이 컸다.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사람, 정의로운 사람이 되고 싶어서 강한 직업들을 꿈꿨던 것 같다.” 대학시절엔 학군사관(ROTC)에 지원하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군대도 안 가본 여자가 어떻게 군통수권자가 되느냐’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ROTC에 지원했다. 오래달리기를 못해 떨어졌지만, 하하.” 그는 “한 마흔 넘어서 국회의원을 해보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예상치 않게 정치인이 빨리 돼버렸다”고도 했다.
-어렸을 때부터 나서는 걸 좋아했나.
“중·고등학교 때 반장·실장 같은 걸 도맡아 했다. 약간의 ‘관종’ 기질을 갖고 있달까, 하하! 중학교 때 반장을 처음 해봤는데, 생각보다 나랑 잘 맞더라. 내가 장(長)을 맡으면 (소속 집단에) 애정을 갖고 잘 챙겨서 다들 좋아했다. 민주당도 내가 속한 ‘우리 당’이기 때문에, 그렇게 욕을 먹어도 애정이 깊다.”
-지금의 꿈은 무엇인가.
“잘 모르겠다. 일단 여의도라는 이상한 굴에서 빠져나왔으니, 현실 속에서 내가 낼 수 있는 목소리를 내면서 방향을 잡아보려고 한다.”
-평범한 20대의 삶이 그립지는 않나.
“크롭티(짧은 상의)를 입고 돌아다니던 때가 그립다(웃음). 정말 하루 아침에 인생이 180도 바뀌었다. 때때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고생을 하고 있나’란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정치에 발만 담근 게 아니라 머리끝까지 담그지 않았나. 더 열심히 해볼 생각이다.”
정치에 입문하기 전 박지현의 인생 계획은 다음과 같았다. ‘26세에 방송 기자 취직, 32세에 자녀 출산, 50세에 10년간 세계일주, 60세에 세계일주 경험을 책으로 출간.’ 그러나 이미 ‘불꽃’ 활동을 하던 스물넷에 책을 냈고, 스물여섯에 정치에 입문했다. ‘직업 정치인으로서의 삶을 어떻게 계획하고 있나’ ‘다음 총선에 출마할 생각인가’ 등을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길지 않은 인생이었지만, 계획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더라. 긴 호흡으로 정치를 해볼 생각이다. 최근엔 기후위기에 관심이 많아졌다. 당장 챙겨야 하는 일인데, 우리 정치권이 관심이 없어 큰일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맑은 공기를 마시는 일상을 물려줄 수 있는 정치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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