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영하는 왜 자신의 MBTI를 비밀에 부쳤을까
'비공개' 선언한 사람들

“MBTI를 여쭤봐도 됩니까?”
“비밀입니다.”
“E(외향성)인지 I(내향성)인지 그것도 안 됩니까?”
“비밀입니다.”
소설가 김영하가 얼마 전 한 방송 프로그램에 나와 MBTI를 묻는 질문에 답한 말이다. 김영하는 “MBTI에 대해서 회의를 가지고 있다”며 “(MBTI는) 자기가 생각하는 자기를 검사하는 것이라 믿지 않는다”고 했다.
간단한 모임 자리부터 시작해 소개팅, 공식 인터뷰, 면접장에 이르기까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이 질문이 날아든다. MBTI란, 성격을 16개 유형으로 분류하고 이를 영어 알파벳 4개로 표현한 것이다. 지난해 말 한국리서치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18~29세 국민 90%가 “MBTI 검사를 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30대도 65%, 40대는 42%, 50대도 30%가 이 검사를 해 본 적 있다고 했다.
‘MBTI 과몰입 현상’이 계속되면서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대기업 직장인 이모(35)씨도 김영하처럼 ‘MBTI 비밀론자’다. 그는 MBTI가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잘 모른다”고 답한다. 이씨의 MBTI는 INFP(인프피). MBTI 세계에서 내향적이고 감정적이라 ‘사회생활 부적응’으로 평가받는 유형이다. 한 식품 기업이 ‘INFP는 지원 불가’라고 채용 공고에 올렸다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씨는 “인프피가 사회생활이 어렵다고 하는데 같은 회사에서 7년간 근무하면서 매년 평균 이상의 근무 평가를 받았고, 최상위 등급도 여러 번 받았다”며 “처음엔 재미로 MBTI를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업무 능력까지도 선입견을 가지고 보는 것 같아 예전부터 나를 알아 온 사람들 외에는 MBTI를 말해주지 않는다”고 했다.
취업준비생인 김소현(28)씨도 “MBTI가 뭔지 제발 그만 물어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MBTI로 처음 본 누군가를 평가하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MBTI가 정말 신빙성이 있다 해도 그건 개인의 내밀한 성격인데 지금처럼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이를 물어본다는 것 자체가 실례 아닌가요?”
美 CNN은 한국 젊은 층의 MBTI 과몰입 현상에 대해 “코로나 팬데믹과 취업 경쟁, 경직된 기업 문화, 치솟는 집값 등으로 미래가 불안한 상황에서 시간과 노력을 아껴 목표를 이루려는 욕구가 커졌다”고 지난 7월 분석하기도 했다. 상대를 알아가는 데 전통적인 방식으로 시간과 노력을 쓰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오주영 교수는 “세상이 빨리 바뀌어 가면서, 정보를 얻는 것도 신속하고 효율적인 것을 추구하는 시대가 온 것 같다”며 “누군가를, 때로는 나에 대한 평가를 신속하게 하고 싶을 때 아주 간단하고 쉽게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평가할 수 있는 도구가 MBTI인 셈”이라고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현장에선 MBTI 검사가 활용되지 않는다. MBTI는 자가 보고 검사(자신이 스스로 하는 검사)로 해당 성격이 그 사람을 정말 반영하는 것인지, 내가 바라는 나를 반영한 것인지 알 수 없다. 또 MBTI에서 사람의 특성을 외향·내향과 같이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과 달리 대부분 사람은 양쪽의 특성이 모두 있기 때문에, 한쪽의 특성이 너무 강하지 않으면 검사 결과가 일관되게 나오지 않을 수 있다.
오 교수는 “MBTI는 분류할 수 있는 성격이 16가지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같은 MBTI 카테고리 내에서도 다양한 성격의 사람이 존재할 수 있다”며 “MBTI는 어디까지나 가볍게 재미로 활용하고 너무 과몰입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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