짱깨·흑형·개슬람.. 우리 안의 인종차별을 돌아보라

윤상진 기자 2022. 10. 8. 03: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Books가 만난 사람] 한국사회 인종주의 짚은 정회옥 명지대 교수

한 번은 불러보았다

정회옥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72쪽 | 1만7000원

“‘전 세계가 한국 OO에 열광한 이유’와 같은 제목의 ‘국뽕(맹목적인 자국 찬양) 콘텐츠’들이 인기를 끌고 있고, ‘K컬처’에 이은 ‘K시리즈’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죠. 개인의 성취를 국가의 성취로 포장하며 민족에 대한 자부심이 커질수록 다른 민족에 대한 경계와 차별은 더욱 심해집니다. 특히 우리보다 열등하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이 그 대상이 되죠.”

‘짱깨’ ‘똥남아’ ‘개슬람’ ‘흑형’... 한국 내 인종차별과 인종적 멸칭의 역사를 다룬 책 ‘한 번은 불러보았다’를 낸 정회옥 명지대 교수는 우리 사회의 인종주의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미국 아이오와대에서 ‘아시아계와 히스패닉의 정치 참여’를 주제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 소수자와 인종주의에 대해 연구했다. 지난 5월엔 서구 사회의 아시안 혐오 현상을 짚은 책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를 내기도 했다.‘K컬처’는 세계로 뻗어나가며 높게 평가받고 있지만, “정작 세계의 다른 인종들을 대하는 우리의 인식은 그 위상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정 교수의 말. 국내 거주 외국인의 수가 200만 명을 넘어선 지금, 우리 안의 인종주의를 돌아봐야 한다는 것이 이번 책에 담긴 메시지다.

그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인종주의에 무감각한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한 공영방송 다큐멘터리의 포스터를 들었다. 작년 2월 방송된 이 프로그램의 포스터는 미디어 환경의 변화를 인류의 진화 과정에 빗대 다섯 단계로 표현했는데, 진화를 거듭하면서 피부색이 점차 하얗게 변하는 식으로 묘사했다. 포스터가 배포되자 곧바로 ‘인종차별’이라는 지적이 이어졌고, 방송사는 결국 각 단계 피부색을 동일하게 수정한 뒤 포스터를 다시 배포했다.

(위)2019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집회 참여자들이 ‘인종차별과 혐오 OUT’이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왼쪽 아래 사진은 진화 과정에 따라 피부색을 밝게 채색한 다큐멘터리 ‘호모 미디어쿠스’의 포스터. 인종차별 논란이 일자 오른쪽 사진처럼 피부색을 수정해 다시 배포했다. /김지호 기자·KBS

“공영방송에서도 인종에 대한 편견을 거르지 못했을 정도로, 인종별로 서열을 매기고 차별 대우를 하는 인종주의는 우리 무의식에 깊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한국의 인종주의는 다른 나라와는 다른 특징을 갖고 있죠. 첫 번째는 피부색뿐 아니라 경제적 저개발국의 국민을 더욱 깔보는 ‘GDP 인종주의’고, 우리가 국내 거주 외국인들에게 인종차별을 하고 있는지조차 깨닫지 못한다는 인종주의의 ‘비(非)가시화’가 다른 하나입니다. 무엇보다 정치와 언론, 보수와 진보 진영을 막론하고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인종주의에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죠.”

그는 오늘날 한국의 인종주의가 19세기 말 개항부터 150여 년 동안 인종차별적 관념이 누적된 결과라고 설명한다. “개항 이후 ‘서구화’가 목표였던 당대 사회는 서구 열강의 차별적 인종관(觀)마저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습니다.” ‘독립신문’ 등 당시 지식의 창구였던 신문에서조차도 흑인을 열등한 존재로 간주한 기사들이 이미 많았다는 것.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는 식민지인으로서의 ‘열등감’과 대항 수단으로서의 ‘민족주의’가 동시에 자라났고, 한국인의 인종 콤플렉스가 생겨났다. 이후 ‘반공’과 ‘산업화’의 영향으로 한국의 인종주의는 ‘적자생존’ 성격을 띠게 됐고, 그 결과 우리는 타 민족에게 점차 폐쇄적인 자세를 취하게 됐다. 그는 “우리에겐 민족∙국가 간의 장벽이 느슨해진 세계화가 ‘다른 민족과의 경쟁’을 의미했다”며 “오히려 다른 민족에 대한 배타성은 더욱 강해졌다”고 분석했다.

“강의를 하다 보면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조차 ‘우리나라 정도면 인종차별 없지 않아요?’라는 말을 해요. 사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와 소비하는 콘텐츠 곳곳엔 인종차별적 관념이 녹아 있는데도요.” 백인과 한국인이 결혼하면 ‘글로벌 가족’이라고 부르지만, 동남아 사람과 한국인이 결혼하면 ‘다문화 가족’이라고 표현한다. 또 백인 혼혈이면 예능에, 동남아 혼혈이면 다큐에 주로 출연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일제강점기 일본이 한국인에게 한 것과 유사한 인종차별이 오늘날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책에 썼다. “한국식 인종주의엔 ‘백인-한국인-흑인-동남아인’으로 이어지는 서열이 존재해요. 우리는 손흥민에게 인종차별적 제스처를 하는 유럽 관중에게 분노하면서도, 정작 동남아 출신 이주노동자에게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죠.” ‘백색에 대한 지향’과 ‘경제적 성공에 대한 욕망’이 혐오와 차별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 인구에서 국내 거주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4%. 초∙중∙고 다문화가정 학생 수는 지난 10년간 3배 이상 늘어 현재 16만 명 수준이다. “지금의 인구 추세를 봤을 땐, 앞으론 더욱 다양한 인종들과 함께 생활해야 하는 시점이 오게 되죠. 최근에서야 이민청 설립 등 기초적인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데, 늦은 만큼 공론장에서 인종 문제에 대한 논의를 서둘러야 합니다.”

한국 사회의 인종주의를 지적한 책 '한 번은 불러보았다'를 펴낸 정회옥 명지대 교수. /장련성 기자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