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사라진 동물들의 목소리

기자 2022. 10. 8.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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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긋한 말씨의 내레이션이 이어지던 중, “시간은 마음이 쓰이는 쪽으로 흐르는 것이지 않을까?”라는 질문이 들려왔다. 공연이 시작한 지 약 5분쯤 지났을 때였다. 그 앞에도 적지 않은 말들이 있었지만 내게 공연의 진짜 시작점처럼 느껴진 것은 이 문장이었다.

신예슬 음악평론가

‘멸종동물생활협동조합×날씨’라는 타이틀만 보고 찾아간 신촌극장은 그날 따라 유독 어두웠다. 깜깜한 극장에 들어서자 중앙에 매달린 작은 오브제가 보였다. 유일하게 빛을 내고 있던 그 오브제 안에는 계곡처럼 보이는 풍경이 있었다. 극장 벽에는 스피커 열 대, 무대에는 모니터 두 대가 보였다. 극장에 들어설 때 극장장이 건넨 손전등을 켜 뭔가 적혀있었던 극장 티켓을 다시 비춰보았다. “거의 소리만 있는 공연입니다.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면 쉽게 들을 수 있는 그런 소리들입니다.” 극장에 모인 사람들은 재생 장치들을 바라보며 오브제 아래에 반원 모양으로 둘러앉았다.

우리는 잠시 1941년 웨이크섬 전투를 재현한 게임으로 추정되는 영상을 봤다. 전투기들은 서로의 뒤를 쫓았고, 영상은 일본군 전투기가 바다에 추락하며 끝났다. 그러곤 다시 어둠 속으로 돌아가 어디가 끝점일지 상상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들었다. 어둑한 극장에 모여 앉아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는 일은 조금은 꿈같은 구석이 있어서 모든 것이 선명하게 기억나진 않는다. 다만 시간이 어디로 향할지에 대한 질문을 출발점 삼아,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 양자역학, 이중 슬릿, 파동-입자의 영역에 도착했고, 그사이 어딘가쯤부터 사라진 동물들이 하나하나 호명되기 시작됐다.

온순한 성격을 지녔지만 무차별적 사냥으로 빠르게 절멸한 스텔러바다소의 이야기가 들려오자 한 스피커 위에 어스름한 조명이 들어오며 스텔러바다소의 형상이 등장했다. 멋진 무늬를 가지고 있었던 콰가가 어떻게 멸종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올 땐 다른 쪽에서 콰가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군인들에게 몽땅 잡아먹힌 웨이크섬의 웨이크뜸부기도 모습을 드러냈다. 큰바다쇠오리의 그림자도 떠올랐다. 그 공연의 흐름을 비행 궤도로 그린다면 분명 위아래와 동서남북을 이상하게 가로지르는 꼬인 곡선이 그려질 것만 같았다. 서로 아주 멀리 먼 곳에 놓여있었지만, 그 동물들의 이야기는 분명 연결되어 있었다.

파동-입자의 영역에 도달했다가 동물들이 어떻게 사라졌는지를 전해 들으며 꼭 그들이 살았을 것 같은 장소의 소리를, 그들에 관한 이야기와 그들이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이 공연을 어딘가에 파동의 형태로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사라진 동물들의 목소리를 찾는 시간이라고 이해했다. 마지막으로 그 멸종동물들은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파동 통번역기’가 그들의 대화를 번역했다) “관심을 기울여줄 것이라 믿어요.” “폭력보다 강한 사랑이 에너지로 보여지는 삶을 선택합니다.” “마음을 모으면 시공간을 넘어 에너지장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공연을 실험무대로 삼고, 어떤 이들은 공연을 통해 누군가의 극적 쾌감을 극대화하지만, 누군가는 공연의 형태로 자신이 믿는 중요한 이야기를 전달한다. 공연은 그때 중요한 확성 장치가 된다. 날씨의 멸종동물생활협동조합 공연은 마지막 경우다. 그는 어떤 미약한 파동을 증폭하고, 어떤 존재들의 목소리를 확성하며, 우리의 시간이 다른 방식으로 흐르길 바라는 마음 아래, 여기에 마음을 쓸 것을 제안한다. 멸종동물생활협동조합×날씨의 이야기는 45분간, 일주일 동안, 매일 두 번씩 되풀이됐다. 공연을 보고 온 지 며칠이 지났지만 나는 때때로 그 공연의 장면들을 되풀이한다. 아마 이야기를 접한 다른 이들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공연장에 모여 사람들이 함께 공유한 시간은 45분뿐이었지만, 그 시간을 지나오며 마음을 쓰게 된 사람들이 바라볼 시간은 그보다 훨씬 크고 넓을 것이다.

신예슬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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