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의 불편한 진실] 이주호 장관은 자유주의자인가?

기자 입력 2022. 10. 8.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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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교육정책의 사령탑이었던 이주호씨가 윤석열 정부의 새 교육부 장관 후보로 지명되면서, 새삼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이 재론되고 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은 뜻밖에 민주당 정부들과 연속성을 가지고 있다. 첫번째 연속성은 고교평준화에 대하여 비판적이었다는 점이다. 자사고를 처음 인가한 것은 김대중 정부였다. 민사고·상산고 등 6개 자사고가 문을 열었다. 특목고를 대폭 늘린 것은 노무현 정부였다. 임기 중 외고 11개, 과학고 3개가 인가되었다. 이로 인해 고입경쟁과 사교육이 증가한다는 비판 여론이 일자, 2006년 김진표 교육부총리는 “평준화를 보완하기 위해 특목고가 필요하다”는 한마디로 일축했다. 같은 해 한나라당 국회의원이던 이주호씨가 펴낸 저서의 제목이 바로 <평준화를 넘어 다양화로>였고, 그의 뜻에 따라 이명박 정부는 자사고를 무려 45개 인가했다.

이범 교육평론가·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이명박 정부와 민주당 정부의 두 번째 연속성은 바로 대입제도에서 드러난다. 수능 비중을 낮추고 수시모집을 중심으로 다양한 전형요소를 활용하려는 방향이 일치한다. 수시모집은 김영삼 정부 시절이던 1997학년도 대입에 처음 등장한 이래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김대중 정부 31%, 노무현 정부 52%, 이명박 정부 62%, 박근혜 정부 74%, 문재인 정부 78%에 달했다. 수시모집 중 입학사정관전형은 노무현 정부 마지막 해 10개 대학 254명을 선발하는 일종의 시범사업이었는데, 이명박 정부는 ‘대입 자율화’를 대선 공약으로 삼고 입학사정관제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이를 위해 집권 첫해 157억원을 대학들에 나눠주었고 이것이 임기말엔 거의 400억원에 달했다. 이주호씨는 “입학사정관제가 성공하면 많은 교육 문제가 해결되는 만큼 가장 우선순위에 두겠다”고 공공연하게 발언했다.

이 같은 고교정책과 대입정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자율’이다. ‘자율’은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5년에 발표된 ‘5·31 교육개혁안’의 핵심이었고, 이후 거의 30년간 한국 주류 교육계의 믿음이었다. 자율은 고전적 자유주의의 ‘자유’나 ‘시장’ 개념과도 겹치는 한마디로 ‘치트키’다. ‘자율이 좋아? 아니면 규제가 좋아?’라는 질문에 ‘규제가 좋다’고 답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이 영향력은 민주당에도 면면이 이어진다. 일례로 김대중 정부에서 교육부 장관을 지낸 이해찬씨는 2018년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여전히 ‘대입제도는 대학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이던 장하성씨는 사립학교까지 평준화시킨 박정희식 고교평준화를 개발독재와 관치의 상징으로 간주했다. 문재인 정부가 대통령령을 개정하여 자사고·외고·국제고를 일반고로 ‘일괄’ 전환할 것이라는 세간의 예상을 뒤엎고 교육청별 ‘재지정 평가’로 후퇴한 데에는 그의 역할이 컸다.

그런데 대중은 이런 ‘자율’ 개념에 근거한 정책을 싫어한다. 입학사정관제나 그 후신인 학생부종합전형(학종)에 대한 반감은 잘 알려져있고, 여론조사를 해보면 고교평준화 찬성이 늘 반대를 앞지른다.(가장 신뢰도 높은 한국교육개발원의 교육여론조사에서 두 배가량 차이난다) 이것은 무지한 대중이 고매한 자율 개념을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그 자율이 ‘갑’의 자율이기 때문이다. ‘갑’인 대학이나 고교에 자율(특히 학생선발권)을 주면, ‘을’로서는 그들이 이리 줄서라 하면 이렇게 줄서고 저리 줄서라 하면 저렇게 줄서야 한다. ‘을’의 위치에서 교육경쟁을 경험하는 대중으로서는 ‘갑’의 자율을 강조하는 정책에 호의적이기 어려운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1995년의 5·31 교육개혁안이나 이주호씨의 <평준화를 넘어 다양화로>에서 다루는 자율은 ‘갑’으로 행세하는 ‘기관’의 자율, 즉 대학이나 고교의 자율이다. 하지만 창의성이나 다양성의 원천은 궁극적으로 ‘개인’의 자율, 즉 학생이나 교사의 자율이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는 이주호도, 이해찬도, 장하성도 관심이 없다. 고교학점제는 학생 개인에게 자율권을 줘서 이수과목의 다양화를 꾀하는 정책인데, 교원단체들로부터 협공을 받아 될 둥 말 둥한 상태다. 교사 개인의 자율권을 넓히는 교육과정 간소화, 교과서 자유발행제, 교사별 평가 등은 몇 년째 사실상 논의가 단절된 상태다. 교육부가 내려보내는 ‘학교생활기록 작성 및 관리지침’이 50쪽에 달하고 이에 근거해 교육청별로 작성하는 ‘학업성적관리지침’이 100쪽에 달한다. 평가·기록과 관련된 규제만도 이러할진대, 여기서 무슨 창의성이 나올까? 이 와중에 10년 전 장관이 재등장하여 계속 ‘기관’의 자율만 외친다면? 나는 그가 적어도 고전적 자유주의자가 아님은 확실하게 선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범 교육평론가·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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