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의 미술소환] 바이오그래피
“향기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향기만으로 그때의 상황을 다시 생각해 낼 수 있고, 향으로 역사적 인물을 떠올릴 수도 있지요. 공기는 인간뿐 아니라 세상 모두가 공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기는 미술의 너무나 큰 소재가 될 수 있지요. 향기는 공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도구이며, 하나의 조각입니다.”
세상이 주목하지 않았던 인간·비인간을 다른 감각으로 소환하여 메시지를 전하는 아니카 이는 사회의 한계를 거부하고 도전해 온 인물들을 불러내고, 모든 여성이 유연하게 연결되는 미래를 상상하며 세 여성에 대한 향수를 제작했다. 극좌 성향의 일본 적군파 지도자이자 테러리스트, 혁명가로 언급되는 시게노부 후사코를 모델로 한 ‘시게노부 트와일라잇’, 고대 이집트의 여성 파라오 핫셉수트에 대한 향수 ‘급진적 절망’, 모든 여성의 집단적 역사를 복합적 향으로 담을 수 있는 기계를 상상하여 만든 ‘표피 너머’가 관객을 치열했던 여성들의 삶 속으로 끌어들인다.
작가가 매료된 여성들은 여성성과 주체성에 대한 전통적인 시각을 돌아보게 하는 선구적 인물들이다. 남성과 여성의 칭호를 혼합했던 핫셉수트는 남성, 여성, 동물의 이미지를 섞어 자신의 조각상을 만들 만큼, 이분법적인 구분의 세계를 뛰어넘고자 했다. 가부장적인 일본에서 일찍부터 지도자로 활약한 시게노부 후사코는 1970년대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을 위해 세계 곳곳에서 각종 테러에 가담한 혐의로 2000년 오사카에서 체포되어 올해 5월, 만기출소했다. 출소 후 그는 “싸움을 우선시하는 바람에 납치 사건처럼 낯모르는 이들에게 폐를 끼친” 과거에 대해 사과했다.
여성가족부 폐지가 공식화되는 상황을 맞이하며 세상 모두가 공유하는 공기를 타고 흐르는 이 여성들의 향기가 궁금해진다.
김지연 전시기획자·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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