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칼럼] 혹독한 겨울이 닥쳐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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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여서는 안 될 것들이 줄어들고
늘려서는 안 될 것들이 늘어나
서로를 향한 돌봄과 보살핌만이
가혹한 겨울 막아 낼 유일한 무기
」
세상살이가 험난해지는 또 하나의 뚜렷한 징후, 그것은 결코 늘어서는 안 될 것이 자꾸만 늘어가는 것입니다. 지방 의료원에서는 의사를 구하지 못해 전국 35개 지방의료원 결원율이 14.5%로 치솟았습니다. 1분 1초가 급한 응급환자가 진료 자체를 받을 수 없는 기막힌 상황이 늘어납니다. 폐지를 주워 생계를 간신히 꾸려 가는 노인들이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노인들이 쇠약해진 몸으로 매일 11시간이 넘게 노동해도 손에 쥐는 것은 평균 시급 948원입니다. 더구나 쌀값이 폭락하면서 한숨짓는 농민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문체부는 ‘윤석열차’라는 카툰을 그린 고등학생의 작품을 전시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엄중히 경고하며 “전국학생만화공모전에서 행사 취지에 어긋난 작품을 선정해 전시한” 책임을 물었습니다. 이것은 예술과 창작의 자유를 침해하는 간접적인 검열이 늘어나는 결정적인 징후입니다. 작가에게 반드시 필요한 표현의 자유가 사라진다면, 작가가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자마자 자신의 생각을 스스로 검열해야 한다면, 우리는 어디에 가서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를 찾아야 할까요.
결코 줄어서는 안 될 소중한 것들이 줄어들고, 결코 늘어나서는 안 될 사회적 고통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고정희 시인의 피맺힌 시, ‘야훼전상서’가 떠오릅니다. “신도보다 잘사는 목회자를 용서하시고, 사회보다 잘사는 교회를 용서하시고, 제자보다 잘사는 학자를 용서하시고, 독자보다 배부른 시인을 용서하시고, 백성보다 살쪄 있는 지배자를 용서하소서!” 우리는 신도보다 잘사는 목회자가 아니라, 백성보다 배부른 지배자가 아니라, 만백성의 아픔을 치유하는 성실한 일꾼으로서의 리더를 원합니다. 끔찍한 스토킹을 당하고 불안에 떨며 잠조차 이루지 못하는 여성들의 안전을 든든히 지켜 주는 리더, 고통받는 모든 존재의 커다란 피난처가 되어 주는 리더, 젊은이들이 마음껏 꿈의 날개를 펼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는 리더를 원합니다. 우리는 아이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어른, 젊은이들의 꿈을 힘차게 응원해 주는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번 겨울은 단순한 계절의 순환이 아니라, 우리 인류 전체에게 닥칠 엄혹한 겨울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서로를 향한 돌봄과 보살핌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이것만은 결코 줄여서는 안 되는 것, 그것은 바로 타인의 고통이 바로 내 고통이 될 수 있다는 통렬한 깨달음입니다. 가정불화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심리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은 아버지를 생각하면 무력감이 연상되고, 어머니를 생각하면 의심이 연상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어른들을 생각하면 ‘무기력’이 떠오르고, 미래를 생각하면 ‘의심’부터 떠오른다고 말할까 봐 두렵습니다. 결코 이것만은 줄이지 말아야 할 것, 그것은 뭔가 잘못된 세상을 향해 질문을 던질 용기입니다. 우리가 더 나은 오늘을 향해 질문을 던질 용기만은 잃지 않기를. 당신이 세상을 더 나은 쪽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만은 잃지 않기를. 이제 우리 사회의 최대 과제는 서로를 향한 ‘돌봄’이 되어야 합니다. 매서운 추위를 몰고 오는 전 인류의 겨울이 닥쳐오고 있습니다. 서로를 향한 따스한 돌봄만이 인류의 이 가혹한 겨울을 막아 낼 유일한 무기일 것입니다. 돌봄을 향한 돌봄, 사랑을 향한 사랑, 서로를 향한 보살핌과 배려의 몸짓만은 줄이지 말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당신의 겨울이 부디 춥고 외롭지 않기를, 우리가 부디 서로의 쓸쓸한 어깨에 따스한 목도리를 둘러 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찾기를 바랍니다.
정여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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