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프리즘] 디딤돌과 걸림돌

박신홍 입력 2022. 10. 8. 00:26 수정 2022. 10. 8.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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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홍 정치에디터
여(與)는 한자 사전에 ‘더불 여, 줄 여’라고 풀이돼 있다. ‘더불어 참여하다’가 주요 뜻풀이 중 하나다. 한국 정치에선 대통령을 도와 국정에 함께 참여한다는 의미에서 집권당을 여당(與黨)이라 칭한다. 여라는 글자엔 ‘같이하다, 협조하다, 주다’는 뜻도 담겨 있다. 대통령뿐 아니라 야당과도 같이 협조해 국정을 원만히 이끌어달라, 양보할 건 양보하고 명분도 제공해 주면서 서로 윈윈하는 가운데 국민을 편안하게 해달라는 바람이 여당이란 두 글자에 함축돼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의 여당인 국민의힘은 나머지 여(餘)자를 쓰면 딱 맞을 여당(餘黨)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존재감이 제로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다섯 달이 다 돼가지만 오히려 짐만 될 뿐 정국 정상화나 국정 현안 해결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는 거추장스러운 잉여(剩餘)의 존재로 전락하고 있다. 그뿐인가. 고물가와 고금리에 신음하는 민생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수수방관한 채 마치 여의도에 구경 나온 여행객마냥 유유자적하는 모습은 여당(旅黨)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싶을 정도다.

리더의 부재는 더욱 심각하다. “사자가 이끄는 양떼가 양이 이끄는 사자의 무리를 이긴다”는 마키아벨리의 경구처럼 아무리 지리멸렬해도 중심을 잡아주는 지도부나 경험 많은 중진이 있으면 이처럼 갈피를 못 잡고 헤매진 않을 텐데 불행하게도 한국의 집권 여당은 여전히 ‘비상 체제’이자 컨트롤타워 부재 상태다. 도대체 윤석열 정부가 언제 출범했는데 여태 비상시국 타령만 하고 있는 건가. 당내 권력 쟁취를 위해 비상한 결단을 내린 것 말고 국민을 위한 비상한 대책 하나 제대로 내놓은 게 있는가. 그러니 양치기 소년 소리를 듣는 것 아닌가. 그 많던 보수 진영의 원로와 책사들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더 근본적인 문제는 아직도 야당인 줄 착각하고 야당 때 습성을 벗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위기감도, 절박감도, 사명감도, 책임감도 보이지 않는다. 창피함과 죄송스러워하는 마음은 더더욱 찾아보기 힘들다. 20대 지지율이 급락하고 전통적 지지층마저 등을 돌리려 하고 있지만 오로지 이들 머릿속엔 내년도 아니고 내후년 4월 총선에서 살아남을 궁리만 가득할 뿐이다. 대한민국 여당이 금배지가 유일한 목표인 ‘정치 자영업자’의 집합체라는 건 국민 입장에서 볼 때 너무 서글픈 일 아닌가. 국가적 위기 극복과 새 정부 국정 수행을 위한 디딤돌이 되긴커녕 걸림돌만 자초하고 있으니 지금의 이 여당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스위스 철학자 앙리 마리엘은 “신뢰는 거울의 유리와 같아서 한번 금이 가면 원래대로 하나가 되지 못한다”고 경고했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특히 여당이 지금처럼 무기력한 모습에서 헤어나지 못할 경우 자칫 ‘타키투스의 함정’에 빠질 공산이 크다는 우려도 적잖다. 정부나 조직이 신뢰를 잃으면 진실을 말하든 거짓을 말하든 모두 거짓으로 받아들여지는 함정을 코앞에 두고 있다는 지적이다. 신뢰가 없으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 않는 게 민심 아니던가. 오죽하면 국민의힘이 워낙 죽을 쑤고 있다 보니 전 정부와 전 여당만 부각시켜 준다는 말까지 나오겠는가.

“5분의 승리는 격려를, 7분의 승리는 나태를, 10분의 승리는 교만을 낳는다.” 일본 전국시대 명장 다케다 신겐의 이 한마디는 5할의 신승에도 마치 10할을 다 차지한 듯 권력에 취해 있는 지금의 여당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하지만 경제가 시장을 이기지 못하듯 정치는 민심을 이기지 못한다. 권력이 공간을 지배할 순 있어도 시간을 지배하진 못한다. 민심이란 거울에 금이 가면 쫙 갈라지는 건 시간문제다. 마블 시리즈 ‘로키’에서 주인공은 “늑대의 귀가 보이는 곳 근처엔 늘 다른 늑대의 이빨이 숨어 있는 법”이라 했다. 눈앞의 위기는 전조에 불과할 수 있다는 뜻이다. 급박해지면 걸림돌부터 치우자는 목소리가 커지는 게 세상 이치다. 시간이 결코 많지 않다.

박신홍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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