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듯 다른 쌍둥이, 한 묶음으로 보는 '패키지 육아' 금물

입력 2022. 10. 8. 00:21 수정 2022. 10. 8.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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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근아의 세상 속 아이들] 〈13〉 쌍둥이 육아
쌍둥이 육아
#1 하림이와 하준이는 6살 쌍둥이 형제다. 두 아이 모두 줄무늬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고 헤어스타일까지 똑같았다. 이란성이었지만 얼굴이 많이 닮아 마치 일란성 쌍둥이 같았다. “제가 아이들을 어떻게 구분해야할까요? 누가 하림이고, 누가 하준이죠?” 나는 웃으면서 부모님께 물었다. “얼굴이 약간 길쭉한 아이가 하림이예요.” 엄마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래도 여전히 둘을 구분하기 어려웠다. 진료실에서 아이들의 행동과 놀이하는 모습을 관찰하다 보니 두 아이의 차이가 조금씩 느껴졌다. 아이들 이름을 각각 불렀다. 하준이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즉각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 반면 하림이는 즉각 반응하지 않았다.

“하림이가 말도 늦다고 하셨네요? 언제부터 알게 되셨나요?”

“사실 3살까지는 두 아이가 함께 잘 놀길래 큰 걱정을 안했습니다. 4살 되면서 유치원에 가서 다른 반으로 배정이 되면서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하준이는 새로운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유치원 생활을 즐거워했는데 하림이는 적응을 잘 못했습니다. 선생님도 하림이가 말을 잘 못하고 혼자서 논다고 걱정을 하셨구요.”

“두 아이가 한번도 떨어져본 적이 없나요?”

“네. 모두 같은 어린이집, 같은 반이었어요. 그런데 하림이가 너무 하준이에게만 붙어있으려해서 둘을 떼어놨더니 하림이가 생각보다 많이 힘들어 했어요.”

작년 신생아 100명 중 5명이 쌍둥이

하림이는 기질적으로 예민하고 1년 정도의 언어지연이 있는 아이였다. 반면 하준이는 활달하고 주도적으로 놀기 좋아하는 아이였다. 하준이는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즐겼다. 하림이에 비해 하준이가 상대적으로 말을 잘하고 외향적이다 보니, 둘이 함께 있을 때는 대부분 하준이가 하림이를 주도하며 놀았다. 따라서 부모가 보기에는 두 아이가 서로 협력하며 잘 놀고 있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이와 같이 쌍둥이 중 한 아이의 기질이 예민하고 발달이 약간 느린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기질이 순하고 활발한 아이에게 묻혀서 느린 아이의 특성과 발달 문제를 눈치 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4살 때 유치원 반이 분리된 것이 결과적으로는 잘 된 일이었던 것이다. 하림이가 예민하고 말이 늦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일찍 대처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2 초등학교 4학년 다윤이와 서윤이는 이란성 쌍둥이 자매이다. 어릴 때부터 같은 어린이집, 유치원을 다녔고, 피아노 학원, 미술학원, 태권도 학원을 모두 손잡고 같이 다녔다. 방도 같이 쓰고 학교에서도 늘 같은 반이었으며 모든 물건들을 공유했다. 이 자매에게 서로는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였다. 그런데 사춘기 진입을 앞두고 다윤이가 고민에 빠졌다. 자신만의 방을 갖고 싶고 학교에서도 다른 반이 되어 자신만의 친구들을 만들고 싶은데 그럴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서윤이는 다윤이의 이런 마음을 눈치 챘는지 더욱 다윤이에게 집착하기 시작했다. 다윤이가 새로 사귄 친구와 노느라 서윤이와 함께 하교하지 못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때마다 서윤이는 토라지곤 했다. 부모는 서윤이를 위로했고 다윤이를 질책하며 서윤이를 잘 챙겨주도록 당부했다. 다윤이는 자신만의 공간을 갖지 못하고 친구들을 사귈 수 없어 속상했지만 겉으로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던 중 다윤이가 복통으로 소아청소년과에 내원하였고 소아정신과에 협진 의뢰가 되었다. 상담한 결과 다윤이는 우울증 초기 상태였다. 그리고 자신과 서윤이를 항상 묶음으로 생각하는 부모 때문에 속상하다고 말했다. 쌍둥이의 부모와 상담했다.

“선생님, 쌍둥이가 서로 친하게 지내며 모든 것을 함께 하는 것이 좋은 것 아닌가요?” 부모님은 자매가 어릴 때부터 우애가 돈독한 것에 대해 상당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다.

“다윤이와 서윤이는 기질이 매우 다르고 취향도 다릅니다. 모든 것을 함께 하는 것과 사이가 좋은 것은 다릅니다. 아이들 각자의 개성이 존중되어야 정체성도 잘 형성될 수 있습니다. 다윤이는 예민하고 겁이 많은 서윤이와 달리 호기심이 많고 독립심도 강한 아이예요. 그 특성에 맞게 존중해 주셔야 합니다. 게다가 다윤이가 서윤이를 챙겨야 할 의무는 없어요. 부모님께서 둘을 하나의 유닛으로 여기는 것은 서윤이에게도 좋지 않습니다. 더욱 의존적인 아이로 만들 수 있으니까요.”

우리나라 통계청 출생통계에 따르면 2021년도 출생아 26만600명 중 약 1만4000명이 다태아였다. 그 중 쌍둥이가 1만3600명으로 전체 출생아의 5.2%를 차지했다. 신생아 100명 당 5명이 쌍둥이인 것이다. 5%를 넘은 것은 지난해가 처음이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쌍둥이가 늘어난 것은 출산 연령이 높아지면서 시험관과 같은 난임 시술을 받는 부부가 많아진 영향으로 추정된다. 진료 현장에서도 과거에 비해 쌍둥이의 내원 빈도가 늘었다. 외래 한 세션 당 1~2명씩은 꼭 포함될 정도이다. 비단 진료현장이 아니더라도 주변에서 위 사례와 유사한 쌍둥이들을 접하는 것은 드물지 않다.

다른 쌍둥이 부모와 경험 공유 필요

쌍둥이 육아에서 가장 핵심은 “각각의 쌍둥이를 고유한 개인으로 대하는 것”이다. 쌍둥이라도 기질은 똑같지 않다. 심지어 일란성조차 기질과 성향이 다르다. 영유아기 초기에 쌍둥이 각각의 특성과 기질을 잘 파악해서 차이를 존중해주고 맞춤식 육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아이들이 자신의 개성을 인식하고 각자의 정체성을 발전시킬 수 있다.

보통 쌍둥이 부모들은 동시에 두 아이를 양육해야 하니 힘들고 지쳐서 둘을 한 묶음으로 인식해 일명 ‘패키지 육아’를 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우 하림이·하준이처럼 같이 발달이 느리고 의존적인 아이가 활발하고 주도적인 다른 아이에게 가려져 느린 아이의 발달 문제를 조기에 대처할 수 없게 만든다. 또한 다윤이·서윤이처럼 항상 함께 지내온 쌍둥이들은 각자 개인이 가장 좋아하는 관심사를 찾지 못하거나 자신만의 또래 관계를 형성하지 못할 수 있다. 그 결과 각자 정체성을 확립해야할 10대 전후에 의존적인 아이가 되거나 심리적으로 혼란을 겪을 수 있다. 그러므로 쌍둥이 부모는 아이 개인의 능력과 관심사, 특성을 최대한 일찍 파악해서 각자 발달 과제를 잘 이수할 수 있도록 지지하고 격려해야 한다.

쌍둥이를 현명하게 키우기 위한 실전 노하우 몇 개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쌍둥이 부모들과의 모임이나 커뮤니티를 통해 지식과 경험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이미 시행착오를 겪은 다른 쌍둥이 부모들과의 교류는 쌍둥이 육아에 대한 막막함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둘째, 각 아이와 부모가 일대일로 양질의 시간을 보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앉아서 마주보고 이야기하기, 소꿉놀이하기, 공놀이하기, 마트에 가서 좋아하는 물건 고르기 등과 같이 개별적인 관심에 맞게 어른과 단둘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이러한 시간을 통해 각 아이가 즐겁고 정서적으로 충만한 관계 경험을 하게 된다. 개별적으로 다른 시간에 자신만의 경험을 한다는 자체가 각 아이의 고유한 정체성 인식과 발전에 도움을 준다.

셋째, 부모는 쌍둥이를 동등하게 대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동등하게 대하는 것이 아이를 존중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아이들은 서로 다른 욕구를 가지고 있다. 똑같은 선물을 사주고 같은 양의 음식을 주는 등 반드시 동일한 방식으로 아이들을 대할 필요가 없다. 쌍둥이 아이들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존중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건강한 자아의식을 길러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소지품을 고를 때 아이들이 직접 선택하게 하고, 각 아이만의 특별한 공간을 부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소지품에도 각자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 좋다. 쌍둥이가 모든 것을 공유하고 같은 공간에서 함께 지내는 것은 부모 입장에서만 좋고 편리할 뿐이다. 두 아이가 함께 손잡고 다니는 모습이 흐뭇할지 모르나 쌍둥이의 개별적 자아 정체성 확립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재 중학생인 다윤이와 서윤이는 각자의 방을 개성대로 한껏 꾸몄다. 다윤이는 케이팝을 좋아하고 서윤이는 클래식을 즐겨듣는다. 학교에서도 다른 동아리에 가입해 활동 중이다. 서윤이는 더 이상 다윤이에게 의존하지 않는다.

천근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교수. 연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석·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장으로 재직 중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의과대학 자폐연구센터 객원교수 역임. 서울시교육청 자문위원, 가정법률상담소 교육위원, 법무부 여성아동정책심의위원으로 활동했다. 현재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홍보이사로 활동중이다. 저서로는 『아이는 언제나 옳다』, 『엄마 나는 똑똑해지고 있어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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