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의 책과 지성] 폴란드 여인이 만난 부처님

허연 입력 2022. 10. 8.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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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 토카르추크 (1962~)
"글을 쓸때 가장 중요한 건 타인들과의 교감이다."
불교철학에 기반한 작품 쓰는 폴란드 노벨상 작가
201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폴란드 출신 올가 토카르추크의 책을 읽다 보면 흥미롭고 매력적인 부분이 자주 발견된다. 특히 마음을 흔드는 구절은 불교사상이 완벽하게 이식된 부분들이다.

토카르추크가 불교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것이야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과연 이 정도구나 싶다. 토카르추크를 구성하는 사상의 기저 한복판에 불교적 세계관이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그가 한 언론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이다.

"나는 늘 소우주와 대우주는 서로 뗄 수 없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왔다. 나이가 들수록 커다란 사건이나 현상들 속에 투영되어 있는 사소하고 일상적인 우리의 작은 흔적들이 더욱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다른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발견(혹은 느낌)은 내 생애 가장 강렬하고 아찔한 체험 중 하나다."

이게 무슨 말인가. 불교의 기본 원리인 연기법(緣起法)에 대한 완벽한 설명 아닌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같은 인터뷰에서 토카르추크는 자신의 글쓰기에 이런 정의를 내린다.

"글을 쓸 때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바로 다른 존재 혹은 다른 사람들과 교감하려는 시도다. 공감의 가능성, 바로 여기에 글쓰기의 본질과 매력이 있다. 어떤 인물을 창조하려면 '나'라는 인물에서 빠져나와 그 인물의 감정을 느껴야 하고 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

완전 동체대비(同體大悲)다. 토카르추크는 일체중생을 나와 한 몸으로 동일시하는 동체대비를 글쓰기에 적절하게 대입한다.

그의 글은 '에덴'이라는 이상향에 매달렸던 다른 서구 작가들과는 궤도가 다르다. 그는 끊임없이 인연을 이야기하고, 존재의 유동성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세상의 모든 생명체, 더 나아가 우주에 속한 모든 존재가 결국 하나임을, 그래서 동일하게 존중받아야 함을 역설한다. 문학적 자비심이다.

토카르추크는 강대국 사이에서 부침을 겪은 폴란드 술레후프에서 태어났다. 바르샤바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했고 카를 융의 사상에 심취했으며 이 무렵 불교철학을 공부했다고 알려져 있다. 졸업 후 심리치료사로 활동하다가 글을 쓰기 시작해 '방랑자들'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 등으로 주목받았다. 그의 문학은 신화와 전설, 종교를 아우른다. 장르의 경계도 없다. 그는 소설가이자 시인이며 수필가이자 사회운동가다. 경계를 허물어버리는 토카르추크식 사고 체계는 그의 문학을 돋을새김해준다.

토카르추크의 대표작 '방랑자들'에는 이런 대목이 등장한다.

"살아 있다는 것은 삶을 벗어나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모든 죽음조차 삶의 일부다."

새로 태어나는 것도 죽는 것도 없다는 불생불멸(不生不滅)에 대한 완벽한 설명이다.

※ 문화선임기자이자 문학박사 시인인 허연기자가 매주 인기컬럼 <허연의 책과 지성> <시가 있는 월요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네이버 기자페이지를 구독하시면 허연기자의 감동적이면서 유익한 글을 쉽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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