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세에 '수퍼 을' 경비원 경험, 모욕이 난치병보다 더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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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스타그램’ 인기 작가 김완석
“안녕하세요? 저의 직업은 경비원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의아하게 쳐다본다. 어른들은 직설적으로 물어보기도 한다. “어려 보이는데, 왜 그런 직업을 선택한 거예요?” 그럴 때면 포장하지 않고 솔직하게 대답한다. “경쟁에서 밀려서요.” 순간 분위기는 싸늘해지지만, 비겁하게 거짓말하는 것보단 낫다. 내 직업에 당당하진 못하더라도 부끄럽게 여기고 싶지는 않다.
섬유근육통 앓아 힘든 일 못 해 경비원 선택
병명은 섬유근육통인데, 통증은 칼날이 뼈를 쑤시는 것처럼 아프다. 어떨 때는 에어컨 바람이 몽둥이처럼 무겁다. 인터뷰가 있던 날, 대구에서 올라왔다는 김씨는 겨울용 장갑을 끼고 있었고, 배낭에는 파스가 가득했다.
경비원 일이 몸보다 마음을 크게 다치는 직업이라는 생각을 미처 못 했다. 교대 근무를 하면서 낮과 밤이 엉키고, 경비실 의자 말고는 변변히 쉴 만한 휴게공간도 없었다. 직원 수당을 가로채서 근무복·모자·펜 하나까지도 경비원들이 직접 사게 하는 관리소장은 너무 뻔뻔했다. “군대도 아닌데 입주민들에게 경례를 하라고 시키길래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어요. 무엇보다 제일 힘든 건 입주민들이 쏟아내는 비속어와 폭력이었죠.”
새벽 2시 경비실 문을 두드리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중학생을 아이의 아버지는 발로 짓밟으며 폭행했다. 술 냄새 풍기는 아버지를 말리자 폭력은 나를 향했다. 그 틈에 아이가 도망치자 아버지는 소리쳤다. “이 XX야, 너 때문에 내 아들이 없어졌잖아. 찾아내!” 112신고 끝에 경찰이 출동했고, 그때서야 알았다. 아버지의 직업은 사람을 살리는 의사였다.
500㎜ 페트병을 들고 나타난 할머니는 다짜고짜 소리를 질렀다. “이게 하늘에서 떨어졌는데, 느그들은 우리한테 돈 받아쳐먹으면서 이런 것도 하나 못 봐?” “할머니 화 푸세요. 물병은 제가 바로 치울게요.” “그럼 네가 처리하지, 내가 해? 쓸모없는 경비원 주제에.”
딩동! 역시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씨, 뭔데요?” “안녕하세요? 경비실에서 마스크 드리러 왔어요.” “코로나인데 집 앞까지 찾아오고 지X이야 지X은.” 그녀는 며칠 전에도 엘리베이터 앞에서 내 손에 쥔 치킨 잔해를 보며 말했다. “냄새나는데 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X이야 지X은.”
김씨가 근무한 아파트의 입주민은 대부분 부유층, 지식인층에 속했다. 하지만 그들의 우아함은 가면일 뿐이었다. “층간 소음, 담배 연기 민원으로 하루에도 몇 통씩 전화가 와요. 그리고는 우리에게 욕을 하고 짜증을 내죠. 이미지 관리를 위해 문제 당사자에게는 함부로 못하고 그 화풀이를 우리 경비원들에게 하는 거예요. 인간적인 모멸감이 들지만 어쩔 수 없어요. 참을 수밖에.” 이런 날엔 김씨의 SNS엔 이런 글이 올라온다. “상황에 맞지 않는 분노는 진상이지만, 화를 내야 할 때 참으면 만만한 사람이 된다…편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다 보면 어느새 쉬운 사람이 되고 만다.”
SNS에 쓴 글 모아 에세이 펴내
김씨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위로가 되어준 것들은 거창한 것들이 아니었다”며 “작은 배려나 사소한 언어에서 시작됐다”고 했다. SNS에 위로의 글을 한 문장씩 올리기 시작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자존감이 떨어진 나를 위로하기 위해 느리게 걸어도 괜찮고, 뒤쳐져도 괜찮다 쓰기 시작했는데 댓글들을 보면서 세상에는 나처럼 방황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았죠. 하루의 끝에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생각날 때마다, 사람을 관찰하다 틈틈이 휴대폰에 메모해둔 생각을 매일 SNS에 올렸다. 요즘 유행하는 ‘글스타그램(이미지 위주의 인스타그램에서 글로 소통한다는 의미)’처럼 배경화면도 직접 촬영하고, 아크릴 판에 마스킹테이프로 메모지를 붙이는 ‘소녀취향’ 장식도 한다.
“63세 ‘임시 계약직 노인장’ 조정진씨의 책 『임계장 이야기』나, 2020년 입주민의 상습적인 폭언과 폭행 끝에 투신자살한 60세 경비원의 이야기가 저도 처음엔 살면서 아주 간혹 벌어지는 뉴스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2016년부터 지난 5년간 경비원에 대한 폭언·폭행 신고 접수가 2369건이나 된다는 조사가 있어요. 실제로는 단언컨대 훨씬 높죠. 폭행당한 경비원 열 명 중 한 명이 신고를 할까 말까. 입주민을 신고하면 해고 대상 1순위로 지목되니까요.”
김씨도 2년 만에 경비원을 그만뒀다. 역시나 이후에 적당한 직업을 구할 수 없었고, 『위로가 되더라 남에게 건넸던 말을 나에게 건네면』 출판이 계기가 되면서 지금은 전업 작가가 되기 위해 글쓰기에 집중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경비원이라는 직업에 대한 안 좋은 선입견이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경비원에게도 ‘감정’이란 이름이 있다는 걸 기억해주세요.”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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