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르보이스] IT회사에 취업한 문과생, 아마존 본사에서 일하게 됐다?

이마루 입력 2022. 10. 8. 00:00 수정 2022. 11. 29.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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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미국 IT회사는 한국과는 또 달랐다!

미국에서 일하게 됐을 뿐인데

한국을 떠나 미국에 온 동기는 간단했다. 회사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수많은 일이 일어나는 현장에 있고 싶었다. 내가 다니는 외국계 회사에서, 외국의 업무 문화를 일부 체험할 수 있었지만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어 발생하는 한계는 어쩔 수 없었다. 본사에서 이랬다더라 저랬다더라 하는 얘기를 전해 듣는 것이 때로는 분하게 느껴졌다. 나도 그 안에 있고 싶다. 직업인으로서 나에게 ‘본사’라는 것에 도달해 보지 못했다는 것은 결핍이었다. 그렇게 미국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 6개월이 됐다. 어떻게 보면 고작 6개월이 됐을 뿐인데, 직업인으로서의 나날에 와장창, 금이 생길 줄은 나도 몰랐다.

가장 먼저 깨달은 것은 이 세상에 ‘워라밸’이라는 말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정말 슬프게도 나는 한국에서 일하는 동안 워라밸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왜 필요한지 몰랐다. 회사에서 만나는 이들과 SNS에서 갓생을 사는 이들은 늘 늦게까지 야근하고 남는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자신을 늘 전시했다. 어쩌면 나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나는 늘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더 일하면 더 일해야지 덜 해야 한다고 생각지 않았다. 미국에 오니 팀원들이 나를 이상하게 생각했다. 예전에는 “너무 열심히 하는 거 아냐?”라는 말에 은근한 인정과 계속 그렇게 하라는 격려가 묻었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에서는 그런 눈치가 아니었다. 이곳의 디폴트는 정말 40시간 일하는 것이었다. 근무 시간을 본인이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기 때문에 업무시간 중 비는 시간이 있으면 늦게라도 본인이 알아서 채우는 식이고 근무 시간이 지나가면 정말 칼 같이 아무도 답변하지 않는다. 아무도 6시 넘어 메시지를 보내지 않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이 확실히 괴상하고 예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뭔가 공부하거나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는 ‘워라밸’을 처음으로 맞이하게 됐다. 일이 사라진 시간에 다른 것들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한 시간 동안 만들어봤자 10분 안에 먹으면 끝이라는 생각에 나를 위해 요리한 적도 없었는데 이제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요리를 해먹기 시작했다. 오래 걸리더라도 자전거를 타고 새로운 것을 배우러 다닌다. 도시 곳곳에 숨어 있는 작은 공원들을 다닌다. 스트레스받지 않고 일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업무 시간 내내 전전긍긍하다가도 6시가 지나면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걸 내려놓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내가 야근하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는다. 말끔하게 머리를 비우고 딴짓하다 돌아오면 오히려 일이 풀리기도 한다. 강제로 내게 온 워라밸은 내 삶에서 일을 조금 다른 태도로 대할 수 있게 해줬다.

내 의견을 말하는 법도 알게 됐다. 한국에서 일할 때는 의견이 없어도 괜찮았다. 가끔 적게나마 있는 내 의견이 아예 없었다면 고통이 조금 덜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특히 신입일 때는 더 그랬다. 다들 내게 의견은 내 봤자 피곤해지기만 할 뿐이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그래서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라는 말을 들었을 때 살살 잘 피해가는 법을 배우기 바빴다. 그렇게 정신없이 몇 년이 지나고 나니 나를 직접 괴롭히는 문제가 아니라면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의견이 없는 경지에 다다랐다. 예를 들면 회의 시간 중에 내가 관련 주제가 아니면 자연스럽게 스위치를 끄고 딴 생각을 하거나 딴짓을 하는 데 몰두했다. 그렇게 굳어진 내 업무 태도는 돌이키기 어려웠다. 사실 한국에서 일하면서는 전혀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가 이런 내 모습을 미국에 와서 크게 깨달았다. 우리 팀에서는 서로의 일을 공유하면서 팀원들의 의견을 구하는 일이 많은데 나는 딴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런데 내가 조용히 있으면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며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며 나를 회의장으로 끌어왔다. 한 번 아찔했던 적도 있었다. 한국으로 치면 지사장 정도 되는 직급의 디렉터가 팀 미팅에 왔다. 궁금한 점을 질문하라고 했다. 준비했던 질문을 한 가지로 제한했다. 으레 있는 형식적인 자리로 생각했고 그가 답변하면 대충 듣겠노라 했다. 근데 그가 갑자기 좋은 질문이라며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되묻는 게 아닌가? ‘어버버’ 넘어갔지만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미국이라고 사람들이 미팅에 완전히 집중하고 늘 생각하고 의견을 내는 것은 아니지만, 내 의견을 물어보는 사람이 한국보다 훨씬 더 많다. 그래서 내 업무 주변에서 돌아가는 상황에 더 주의를 기울이고 내가 이걸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해 보는 습관을 들이고 있다.

마지막. 공격 레벨이 올라갔다. 영어로 말하는 나는 한국어를 할 때보다 조금 더 직설적이고 장난스럽다. 어려움을 뚫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성이 주인공인 미국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봐서 그렇게 된 것 같다. 그래서 한국에서 알았던 친구가 내가 영어로 미팅하는 것을 듣고 화난 것 같다고 해서 깜짝 놀란 적도 있다. 한국에서도 공격적이라는 말을 종종 들었는데 침착하고 부드럽게 말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었고 그게 습관이 됐다고 생각했는데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안 그렇구나 싶어서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매니저랑 미팅했을 때는 완전 반대의 피드백을 들었다. “지원, 너 지금보다 훨씬 더 못돼야 해!” 내가 일을 너무 착하게 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시니어로 성장할수록 내가 혼자 모든 일을 해내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이 일하게 해서 내 성과 범위를 넓히는 게 중요한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더욱 공격적이어야 한다. 한국인인 내 친구 귀에는 이미 공격적으로 들리는 말들이 미국인의 관점에서는 어르고 달래고 좋게 말해주는 것이라니 신기할 따름이다. K공격으로는 부족하니 이제 미국인 레벨로 진화하는 일만 남았다. 한국에서 일하다가 미국으로 넘어온 사람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종종 있다. 서로 묻는다. 굳이 미국까지 와서 일하는 거 힘든데 그렇게 할 가치가 있냐고. 시간이 더 지나면 달라질지 모르지만 지금은 조금의 고민도 없이 그렇다고 답한다. 나는 일을 사랑하면서도 죽도록 싫어하게 되는 이 거친 사이클에 지쳐 있었고, 내게 기회가 ‘주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에 신물 났고, 철저히 비판적 사고를 안 하려고 노력하다가 결국 못하게 된 자신이 미웠다. 미국에서는 아마 다른 양상의 부조리와 역경에 부딪치게 될 테지만 내가 한국 직업인으로서 느껴왔던 것들은 조금 해소됐다. 도피하지 않고 환상 없이 이곳에 왔다. 이제는 담담하게 천천히, 내가 될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모습으로 조금씩 멈추지 않고 성장하고 싶다.

염지원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지만 지금은 미국 아마존 신규 사업 부서에서 일한다. 그 경험을 담아 〈IT 회사로 간 문과 여자〉를 펴냈다. 주로 ‘회사원’이지만 남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고 더 오래, 더 멀리 나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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