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의얇은소설] 슬픔을 내려놓을 자리
소설 쓰며 자신의 슬픔 내려놓아
유디트 헤르만, <콘라트>(‘알리스’에 수록, 이용숙 옮김, 민음사)
긴 공백 끝에 출간된 유디트 헤르만의 연작 소설집이 ‘알리스’이다. 알리스라는 중심인물이 주변 인물들의 죽음과 예기치 못한 떠남을 경험하는 다섯 편의 이야기. 그중 ‘콘라트’는 가장 자전적인 소설로 보인다. 나이 차가 많이 나지만 좋은 친구로 지냈던 한 비평가와의 일화.
단편소설 ‘콘라트’는 알리스가 콘라트와 그의 부인 로테의 초대를 받아 친구 두 명과 베를린에서 자동차를 몰고 이탈리아 국경을 넘어 그들의 집에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그들의 우연도. 콘라트는 열이 나서 부인과 병원에 가는 길이다. 뒷자리에 눕다시피 한 콘라트가 자동차 밖에 선 알리스에게 별거 아닐 거라고 가볍게 안심시킨다. “그럼, 조금 이따 봐.” 그들은 그렇게 헤어졌다. 열대 전염병에 감염된 콘라트는 그 길로 입원했고 알리스는 다음날 병문안을 간다. 그때만 해도 콘라트와 부인 로테는 그들에게 다가올 밤의 미래를 알지 못했다. 병실에 누워 있는 콘라트는 친구들을 데리고 온 알리스와 여름휴가를 즐기지 못하는 게 무척 속상해선 “그럼, 내일 보자”라고 인사했다. 내일이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같이 수영을 하고 얼음과 레몬을 넣은 음료를 마시자고. 그러나 그들은 영원히 그럴 수 없게 되었다.
다정하고 아무 징후도 느껴지지 않았던 말들. 우리 다음에 볼까, 그럼 내일 보자, 라는 말들. 어떤 인사들은 그게 마지막이 되고 심지어 안녕이라는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영영 헤어져 버리게 될 수도 있다. 그냥 이렇게 끝나버리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을 느낄 새도 없이.
단편소설의 결말은 중심인물이 한 생각들, 사유의 문장들, 혹은 행동 때문에 기억에 오래 남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 이 단편은 후자에 속한다. 콘라트의 집을 떠나기 전, 여행 가방을 다 꾸린 알리스는 마지막으로 수영을 하러 간다. 콘라트가 호수에 대해 했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호수 물은 언제나 얼음처럼 차갑지. 그걸 견디고 물로 들어가야 해. 그래도 넌 물에 들어가게 될 거야. 그리고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거야.” 알리스는 그 말을 이해하려 바닥에서 발을 떼고 물속에서 몸을 편 다음 앞으로 헤엄쳐 나가기 시작했다.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이런 생각이 든다. 콘라트가 말한 ‘호수’를 ‘삶’으로 바꿔 읽고 싶다고. 언제 끼어들지 알 수 없는 죽음을 껴안은 삶은 언제나 얼음처럼 차갑지, 그걸 견디고 물로 들어가는 거다, 몸을 쭉 펴곤 다시 앞으로 헤엄쳐 나가기 시작하는 거야.
유디트 헤르만은 우정을 나눴던 노(老)비평가 친구가 죽은 후 근원을 알 수 없는 슬픔에 오래 휩싸였었는데 그걸 들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고 한다. 그래서 죽음을 주제로 한 소설을 쓰면서 자신의 슬픔을 내려놓을 자리를 찾으려 했다고. 가까운 이들이 떠나고, 병실에 누워 있다. 먼 데서도 그렇다. 슬픔은 불현듯 찾아올 것이다.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 일상의 하던 일을 지속하기, 수영하기, 걷기, 글쓰기. 때때로 누군가는 거기에 자신의 슬픔을 내려놓기도 한다.
조경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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