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아도 알아요..우리의 우정을, 자연의 다정함을[그림책]

손버들 기자 2022. 10. 7.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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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숲 코끼리 나무
프레야 블랙우드 글·그림
미디어창비 | 48쪽 | 1만5000원

소년은 외톨이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혼자다. 혼자 놀고, 혼자 밥을 먹는다. 소년에게 말을 거는 친구는 아무도 없다. 엄마는 이제 막 태어난 동생을 돌보느라 정신이 없어 보인다. 많은 사람들로 시끌벅적한 도시에 살지만 소년은 쓸쓸하다.

소년에게는 비밀이 있다. 집 옆 공원의 작은 숲은 소년의 아지트다. 그 숲에는 소년 만이 볼 수 있는 친구가 있다. 코끼리를 닮은 커다란 나무. 이 나무는 소년의 유일한 친구다. 소년은 코끼리 나무 아래서 공을 차고 밥을 먹고 낙엽을 밟으며 논다. 마음이 너무 힘든 날에는 코끼리 나무를 꼬옥 껴안는다. 계절이 바뀌어도 코끼리 나무 곁에는 늘 소년이 함께 있다.

어느 날 그 숲 앞에 ‘땅 팝니다’라는 팻말이 박힌다. 소년은 목욕을 하면서도, 잠자리에 들면서도 사라질 위기에 처한 친구를 어떻게 구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캄캄한 밤, 창에 드리운 숲의 나뭇가지 그림자를 보고 소년은 결심한다. 코끼리 나무에게로 무작정 달려간다. 마법처럼 코끼리, 기린 등을 닮은 동물 그림자가 건물과 건물 사이를 지나간다. 그 모습을 다른 친구들이 창밖으로 지켜본다.

중간의 이야기는 생략돼 있지만 결말은 해피엔딩. 숲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마도 숲과 코끼리 나무를 지키고 싶어하는 소년의 마음을 다른 친구들이 알아채고 도왔을 것이다. 소년에게는 나무가 아닌 ‘사람 친구’도 생긴다.

어린 시절 마을 어귀 언덕에는 커다란 당나무가 있었다. 양 팔을 넓게 펼친 그 나무 아래에서 나는 노래를 부르고 책을 읽고 흘러가는 구름을 구경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나만 알던 그 시절의 자연 속 친구가 소환된다. 책 속의 코끼리 나무가 누군가에는 ‘토끼 덤불’, 누군가에게는 ‘비눗방울 파도’일 수도 있겠다. 외로운 아이들이 자신만의 비밀 장소나 친구를 가지고 싶어 하는 소망을 작가는 글자 하나 없이 그려내고 있다.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묵묵히 나를 기다려주는 친구. 어떠한 속상한 일을 겪더라도 ‘괜찮다’라고 위로를 건네는 친구. 그런 친구와의 우정에 어떠한 말이 더 필요할까. 주고받는 말이 없어도 이미 많은 마음을 주고받았는데. 과묵하지만 따뜻한 친구를 선물하는 자연의 다정함에 마음은 잔잔하게 일렁인다. 오롯이 그림으로만 채워진 이 책이 가지는 의미는 여기에 있다.

손버들 기자 wi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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