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량의 '공정'과 마속의 '억울함' 사이[김유익의 광저우 책갈피]

기자 2022. 10. 7.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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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과 추론으로 메우는 빈틈
<조연삼국지(三國配角演義)>
마보융(馬伯庸)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자로 공식 선거운동을 시작하던 날 “제 주변의 부패도 읍참마속 하는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큰소리쳤다. 그런데 그의 당선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한 2030세대는 과연 이 사자성어의 의미를 알아들었을까? <삼국지>를 읽어보지 않았다면, 제갈량이 가정 전투에서 군령을 어기고 경솔한 작전을 펼쳐 북벌의 실패를 자초한 ‘최애’ 부하 마속을 눈물을 머금고 참수했다는 이야기를 모를 수도 있기에 하는 말이다.

인터넷 작가로 출발해 역사 미스터리, SF, 판타지 등 온갖 장르를 넘나들며 뛰어난 입담을 선보여 귀재로 불리는 마보융은 <조연삼국지>라는 연작소설에서 이와는 또 다른 결말을 선보인다. 마속이 친구로 여기던 정적의 음모에 빠져 패장의 누명을 쓰게 됐으나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가 훗날 복수에 성공한다는 이야기다. 역사서 <삼국지>에는 그가 도망쳤다거나 옥사했다고 말하지, 참수형에 처해졌다는 기록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은 다양한 역사서들과 당시의 생활사 지식, 그 빈틈을 메우는 합리적 추론을 바탕으로 <삼국지>와 동시대의 시와 산문을 여덟 가지 에피소드로 새롭게 풀어낸다. 지략의 상징 제갈량을 비롯해 인자한 유비 현덕, ‘상남자’ 관운장, 간웅 조조 등 중화 문화 속에 박제된 영웅들과 그들의 스테레오타입을, 또 다른 조연급 인물들의 감춰진 역할을 통해 재해석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중 두 편은 문체를 비롯한 다양한 실험성을 인정받아 순수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들은 이미 상당수가 한국에 번역 소개돼 있다. 만주족 출신, 뉴질랜드 유학파로 외자기업에서 10년간 근무한 그의 데뷔작 <풍기농서>는 미·소 냉전을 다룬 프레데릭 포사이스의 첩보소설을 <삼국지> 이야기에 녹였다. 최고의 히트작 <장안 24시>는 미드 열풍의 원조 격인 <24>를 당나라 현종 시대 장안으로 무대를 옮겨 뛰어난 상상력으로 재창조한 작품이다. 가상도시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 소설 <용과 지하철>에서는 미야자키 하야오를 발견한다. 전자의 두 작품은 이미 드라마가 한국에 소개돼 있고 후자는 애니메이션으로 제작 중이다.

2019년작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명나라(顯微鏡下的大明)>는 그가 말랑말랑한 환상이나 국가 이념 위주의 대서사, 상업적인 영웅 활극을 재해석하는 수준을 뛰어넘어 미시사 속 보통 사람들의 삶을 거시사 속에 재현해냈음을 보여준다. 수리에 밝은 한 평민이 말단 회계직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지역 세금 장부를 살피다 문제를 발견한 것이 발단이다. 공정한 징세를 요구하는 지역 간 이해가 충돌하는 가운데, 향신(鄕紳)과 관료들의 개입 속에서 수년간 분쟁이 해결되지 못하고 작은 민란으로 번졌다. 이 사건은 장거정이 추진한 일조편법의 정치적 명분과도 관계가 있었지만 정의롭고 합리적인 결과를 낳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민중이 보여준 용기와 끈기는 동아시아가 만만치 않은 민간사회의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윤 대통령은 몰라도 한국의 청년들은 마보융을 읽다가 다시 <삼국지>를 들추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김유익 재중문화교류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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