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 그것은 두 번째 채움의 시작[책과 삶]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지음
문학동네|276쪽|1만4000원
김연수가 2013년 이후 처음 내놓은 신작 소설집이다. 다작으로 알려진 그에게 9년의 공백은 이례적으로 길다. 작가는 “쓰고 싶은 게 없을 때는 쓸 수 없다. 그러다가 2020년이 되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세상을 휩쓸고 나자 뭔가 쓰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고 ‘작가의 말’에 적었다. 그는 메리 올리버의 시 구절 “빛으로 가득 찬 이 몸들보다 나은 곳이 있을까?”(골든로드)를 인용하며 새로운 단편 창작의 마음을 전했다.
인용된 시 구절의 인상과는 다르게, <이토록 평범한 미래>의 등장인물들은 상실감에 젖어 있다. 아버지나 아내, 아이가 죽었거나, 영원할 것 같았던 연인과 이별했다. 남은 사람은 살아간다. 몽골 사막의 모래와 같은 시간을 살아낸다.
시간의 흐름은 이 소설집에 실린 단편들의 주요 영감이다.
‘난주의 바다 앞에서’는 소설가 정현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그는 강연 요청을 받아 추자도에 갔다가 대학동창 유미를 30년 만에 만난다. 유미의 삶에는 그사이 큰 곡절이 있었다. 유미는 대학 시절 권투를 했던 정현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KO를 당한 뒤 링 바닥에 누워 있으면 세상의 공기가 달라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그때 새 바람이 불어온다는 말이다.
‘운동 중 고통이 줄어들어 운동을 계속하고 싶은 의욕이 생기는 상태’를 뜻하는 체육용어 ‘세컨드 윈드’는 삶의 고통을 받고 있는 등장인물들이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힘이 된다.
문학평론가 박혜진은 해설에서 “삶에 완전히 패배했다는 것은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제 다른 방향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라고 부연했다.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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