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어디까지 적응할 수 있을까..40일간의 동굴 실험이 주는 희망적 메시지[화제의 책]
딥 타임
크리스티앙 클로 지음·이주영 옮김
웨일북 | 252쪽 | 1만7000원
인간은 어둡고 습한 공간에 오랫동안 고립돼 있을 때 어떤 변화를 겪을까. 프랑스의 지질학자이자 동굴 탐험가인 미셸 시프르는 일찍이 이런 의문을 품었다. 그는 1962년에 스스로를 어느 동굴 안에 홀로 가두고 60여일을 지냈다. 그는 35일이 지난 후 밖으로 나왔다고 생각했지만, 실제 세상에서는 이보다 많은 시간이 흘러있었다.
과학 탐험가이자 2014년에 인간 적응력 연구소를 설립한 크리스티앙 클로는 2021년 3월 이 같은 고립 실험을 시작했다. 실험에는 ‘딥 타임(DEEP TIME)’ 프로젝트라는 이름이 붙었다.
클로를 포함해 남자 8명, 여자 7명으로 구성된 총 15명의 ‘딥 타이머’들이 실험에 참여했다. 딥 타이머들은 프랑스 남서부의 거대한 자연 동굴인 롱브리브에서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채 40일간 생활했다. <딥 타임>은 클로가 40일간의 모험을 통해 경험한 일을 기록한 책이다.
클로와 그의 프로젝트팀이 설계한 동굴 속 환경은 참가자들이 고립감을 느끼게 하는 데 초점을 두고 조성됐다. 동굴은 습도 100%, 평균 온도 10도다. 대부분의 공간에서 빛을 차단했으며 생활 공간이라고 불리는 한 장소에만 ‘태양 조명등’이라는 옅은 등을 켰다. 식량과 물은 프로젝트팀이 외부에서 공급해줬지만 넉넉하게 주어지진 않았다.
참가자들은 9도인 차가운 물로 샤워해야 했고, 각자 텐트 안에 매트나 캠핑 침대를 깔고 생활했다. 클로는 참가자들에게 “딥 타임은 극단적인 환경에서 살아남는 데 초점을 맞추는 생존 실험이 아니야.(…)우리가 진짜 고민해 봐야 하는 문제는 점점 나빠지고 무질서해지는 세상에서 어떻게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지에 관한 거야”라고 설명한다.
최소한의 의식주가 다 갖춰지고 언제라도 탈출이 가능한 환경에서 죽음의 공포를 느낀 딥 타이머는 없었다. 이들에게 가장 크게 찾아온 변화는 시간관념이다. 동굴 속에서 딥 타이머들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규칙에 따라야했다.
각자 자신의 생체리듬에 따라 생활할 것, 어떤 이유에서든 다른 사람을 억지로 깨우지 말 것, 각자 맡은 일을 할 것. 시간을 조금이라도 추정할 수 있는 전자기기는 모두 반입이 금지됐다. 각자 수면 시간과 기상 시간을 추정해 ‘일’ 대신 ‘사이클’로 시간의 흐름을 측정했다.
딥 타이머들은 동굴 속에서 평균 30사이클이 흘렀다고 인지했는데, 실제 세상과 밤낮의 흐름에 있어 10일간의 시차를 보인 셈이다.
클로는 동굴 속에서 지내며 생체리듬을 느끼는 법을 새로 배우고, 감각에 좀 더 집중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심장 박동, 관절, 혈압, 체온 등 몸이 알려주는 지표”를 이용해 시간의 흐름을 짐작했다. 초반에는 딥 타이머들마다 한 사이클의 길이가 다양했으며, 깨어있는 시간도 다 달랐다.
그러나 후반부로 갈수록 딥 타이머들은 공동 작업에 참여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깨어있는 시간을 서로 맞추고자 노력했다. 이를 두고 클로는 “집단은 개인의 존재성과 생물학적 요인을 뛰어넘어 동기화를 촉진하는 강력한 동인이었다”고 평한다. 집단생활을 강조하지 않고 개인의 자율성을 보장해주는 규칙을 제시했음에도, 결국 인간은 어디서나 협력하고 연대하는 방향으로 적응하게 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저자는 딥 타임 프로젝트를 통해 생물에 내재하는 체내 시계를 연구하는 ‘시간 생물학’이라는 분야를 자연스럽게 소개한다. 딥 타이머들의 변화를 통해 생소한 연구분야를 알아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코로나19로 고립과 단절이 더욱 일상화되는 세상에서 딥 타임이 주는 희망적인 메시지는 반갑다.
하지만 40여일이라는 짧은 실험기간, 의식주가 다 제공되고 수백명의 지원인력이 붙는 안전한 환경은 이 실험의 한계가 명확하다는 점도 보여준다. 진정한 고립이라고 할 수 없는 환경에서 실험이 이뤄졌다는 생각 때문에, 결론의 진정성에 자꾸 물음표를 던지게 된다.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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