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선 힘이 세고 강하지만 집에선 귀엽기만 한 '아버지'

한겨레 입력 2022. 10. 7. 19:05 수정 2022. 10. 7.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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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아버지를 이렇게 표현한다.

밖에서는 힘 많고 강한 사람이지만 집에서는 늘 문제를 만드는 힘없고 귀여운 사람.

물론, 이 책이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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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주일우의 뒹굴뒹굴
어디로 가세요 펀자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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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해 동안 강연 시리즈를 기획하고 있다. 관객들이 주목할 만한 주제를 한두 해 앞서 미리 고르고 그에 맞는 강연자를 찾아야 한다. 쉽지 않지만 흥미롭다. 내년에는 ‘나이, 세대, 시대’를 두고 강연을 한다. 눈치챘겠지만, 영어로는 하나인 단어를 세 단어로 풀어 뜻을 넓혀 놓았다. 고령화 시대를 맞이하여, 이 사회적 변화에 대한 개인과 사회의 역할, 돌봄을 놓고 벌어질 새로운 국면, 그리고 우리가 살아갈 시대를 살펴보고 싶었다. 생물학적으로 늙는다는 것은 무엇인지? 나이가 많은 사람이 사는 사회는 어떤 사회인지? 지금과 달라진 구조 속에선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이 시리즈를 여는 첫번째 강연을 할 사람을 고르는 것이 어려웠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에 대한 철학적 사유에 세대와 시대의 문제를 얹어서 이야기해줄 사람을 찾고 싶었다. 나이에 대해서 이야기한 철학자들이 많지는 않았다. 로마시대의 키케로가 이야기한 것 정도를 찾을 수 있다. 고대 서양 철학을 공부하는 분들께 부탁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로마시대의 노년이 고작해야 50살 전후일 뿐이라 ‘100세 시대’에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었다. 동아시아 철학을 전공한 분들이 알맞을까 싶어서 여럿 찾았지만 실패. 문득 철학자 엄정식 선생의 환한 얼굴이 떠올랐다. 공익 재단의 이사회에서 여러 해 만났는데, 만날 때마다 던지는 말씀이 쉬우면서도 오묘했던 기억.

아버지를 그리며 만든 시골집에서 군데군데 다른 곳을 향해 놓인 낡은 의자들에 앉아 철학하는 이야기를 들었던 봄날. 홍조를 띤 얼굴로 시한부인 학생에게 큰 액수의 장학금을 주기를 주저하는 위원들을 설득했던 이야기를 들었던 겨울날. 곰곰이 생각해보면 얼굴에 미소를 짓게 만드는 선생의 이야기가 담긴 만화책이 있다고 해서 바로 주문을 했다. 따님이 그린 <어디로 가세요 펀자이씨?>. 여기서 선생은 먹을 것을 앞에 두고 먹고 싶은 마음과 먹으면 안 된다는 당위 사이에서 부들부들 떨면서 고민한다. 그렇게 고민하는 게 선생의 직업이다.

작가는 아버지를 이렇게 표현한다. 밖에서는 힘 많고 강한 사람이지만 집에서는 늘 문제를 만드는 힘없고 귀여운 사람. 생일날이 되면 너무 기뻐하지만, 시시각각 줄어드는 생일 때문에 슬퍼하는 사람이고, 자정이 지나면 그때부터 다시 일년 동안 자기 생일을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이다. 공기청정기를 사러 가서 깎아주지 않는 점원에게 직접 배송할 테니 청정기는 공짜로 달라고 이야기하는 스케일이 큰 양반이다. 선생이 나이, 노화, 죽음, 돌봄,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세대와 시대라는 무거운 주제 앞에서 우물쭈물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처지에 대해서 유머를 실어 이야기를 해줄 적임자다.

물론, 이 책이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작가가 인용한 헤밍웨이. “젊은 시절의 한때를 파리에서 보낼 수 있다면, 파리는 마치 ‘움직이는 축제’처럼 남은 일생에 늘 당신 곁에 머무를 것이다. 내게 그랬던 것처럼.” 이 책에는 작가에게 ‘파리’였던 장소, 사람, 그리고 그들과 주고받은 이야기가 한가득 있다. 어린 시절 교실, 타이(태국)인 남편, 슬하의 딸, 그리고 철학자 아버지와 소설가 어머니가 작가의 마음에 깊게 남긴 흔적들.

만화애호가

종이나 디지털로 출판되어 지금도 볼 수 있는 국내외 만화를 소개하고 그에 얽힌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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