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 최종판정문 속 모피아의 이해상충[전성인의 난세직필](6)

2022. 10. 7.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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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8일 법무부는 총 411쪽에 달하는, 론스타와 대한민국 정부 간 투자자-국가 중재 사건(ISDS) 최종판정문의 영어 원문을 공개했다. 이번 글에서는 이 최종판정문의 내용을 다뤄 보려고 한다.

법무법인 피터앤김 김갑유 대표가 지난 10월 4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출석해 답변을 하고 있다. 김 대표는 한국 정부와 론스타 간 국제투자중재 사건에서 한국 정부 측 대리를 맡았다. / 국회사진기자단


이와 관련해 먼저 독자들의 혜량을 구한다. 이번 글까지 론스타를 다루면 모두 3회의 칼럼에서 연달아 이 문제만 다루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다른 주제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고민 끝에 다시 론스타 문제를 쓰기로 했다. 그 이유는 첫째, 이 문제가 전 국민의 호주머니를 볼모로 모피아, 하나금융지주, 론스타 등이 자신들의 사익을 추구한 희대의 분탕질이고 둘째, 일부 전문가를 제외하고 론스타 판정문의 전모를 커다란 왜곡 없이 요약해 국민에게 전달할 수 있는 필자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ISDS 중재재판부의 판정 요지는 판정문의 제19단락부터 제21단락에 제시돼 있다. 그 내용은 지난 9월 중순에 법무부가 배포한 국문 요약과 큰 차이는 없다. 금융위원회가 부당하게 론스타와 하나금융지주 간 외환은행 주식 매매 계약에서 가격 인하를 강요했는데, 이것은 감독 권한을 자의적이고 부당하게 행사해 론스타에 손해를 입힌 행위이므로 2011년에 발효된 한·벨기에 투자보장협정 상의 체약국 의무 위반으로 이에 대해 한국 정부가 배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문 요약에서 빠진 ‘범죄 동기’ 법무부의 국문 요약에서 무슨 이유에서인지 빠진 내용이 있다. ‘금융위가 왜 이런 자의적이고 부당한 행위를 했는가’라는 범죄 동기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 부분이다. 그 범죄 동기는 ‘금융위라는 조직의 이익’ 때문이었다. 금융위가 정상적인 금융감독기구가 아니라 오야붕과 꼬붕, 사수(射手)와 조수(助手)로 끈끈하게 연결된 범죄집단인 모피아라는 점이 국제적으로 확인된 순간이었다.

구체적으로 재판부는 금융위가 금융감독상의 법적 의무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사적 이익(its own self-interest)”를 앞세웠으며(제19단락), 외환카드 주가조작 유죄 판결로 곤경에 처한 론스타를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to its own advantage)” 압박했으며(제20단락), 자기 자신의 사적 이익을 법률상의 의무를 이행하는 것보다 우선시킴으로써 “이해충돌(conflict of interest)”에 무릎을 꿇었다(제21단락)고 판단했다. 이것이 법무부가 국문 요약 발표에서 은폐한 부분이다.

혹자들은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조직으로서의 금융위가 추구한 사적 이익이 도대체 뭔가? 조직 전체가 론스타나 하나금융지주로부터 돈을 받아 나눠썼다는 말은 아닐 텐데, 그럼 뭐가 조직의 이익이란 말인가?”

재판부는 그 이익을 ‘론스타 사태의 처리에 대한 정치권, 시민단체, 감사원 등의 정당한 논거가 없는 막무가내식 압박으로부터 금융위 조직을 보호하는 것’으로 봤다. 즉 정치권이나 시민단체 등이 하도 금융위를 압박하니까 금융위가 조직 보호 차원에서 뭔가 성난 여론을 잠재우는 허울 좋은 모양새를 만들기 위해 부당한 줄 알면서도 가격 인하를 강요했다는 것이다. “먹튀(eat and run)”나 “속튀(cheat and run)” 등의 용어는 모두 금융위가 직면했던 이런 비합리적이고 감성적인 정황을 묘사하는 증거로 사용됐다.

재판부의 오판 부른 정부 대응 이런 재판부의 판단은 정확한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잘못된 것이다. 그럼 재판부가 모두 ‘나쁜 놈들’이었나? 그것도 아니다. 나는 이번 재판부가 론스타와 우리 정부 대응팀이 제시한 증거와 논리의 범위 내에서 나름대로 공정하고 합리적인 판정을 내렸다고 본다. 만일 재판부의 결론 중에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론스타와 우리 정부 대응팀 탓이라는 뜻이다. 론스타야 그렇다고 치면, 결국 문제는 우리 대응팀에 있었다는 뜻이 된다. 여기에 이번 판정에서 분명히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측면이 있다.

우리 정부 대응팀은 2011년 당시 정치권, 시민단체 등이 론스타 사태의 정상적이고 적법한 처리를 주문한 것을 두고 론스타가 이를 터무니없고 ‘무대뽀’식의 정치적 압력으로 포장해 비판할 때 이 주장을 방치함으로써 사실상 이에 동조했다. 그러니 재판부가 우리 사회의 관심과 압박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판단하는 결과가 나왔다.

그럼 과연 2011년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주장은 ‘무대뽀’식 압력일 뿐 적법한 내용은 눈곱만큼도 없었던 것일까? 당연히 아니다.

예를 들어보자. 판정문에는 2011년 당시 임영호 자유선진당 의원이 론스타가 비금융주력자라는 점을 제시해 엄정한 처리를 주문한 부분을 정치권 특히 국회 차원의 압박 사례로 인용하고 있다. 임영호 의원은 론스타가 일본에 골프장을 가지고 있어 비금융주력자라고 주장했다.

이게 틀린 말인가? 맞는 말이다. 론스타가 2011년 현재 비금융주력자였다면 은행법 제16조의2의 규정에 따라 의결권을 4%로 제한하고 즉시 한도에 적합하도록 초과분을 매각해야 한다. 외환카드 주가조작 확정판결까지 기다릴 일이 아니다. 또 론스타가 언제부터 비금융주력자였는지 거슬러 올라가 조사할 필요도 있다.

‘비금융주력자 조항’ 숨긴 까닭 이런 주장은 정상적이고 적법한 것이었다. 그런데 정부는 이런 주장을 하지 않았다. 411쪽 중재판정문 전체를 통해 은행법 제16조의2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우리 대응팀이 숨긴 것이다. 오히려 중재판정문에는 “비금융주력자 조항은 국내 산업자본 규제 용도이고 외국인에게는 적용하기 어렵다”는 김석동 당시 금융위원장의 발언만 난무한다.

지난 10월 4일 국무조정실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김갑유 변호사(전 법무법인 태평양 재직·우리 정부 대응팀의 일원)는 “비금융주력자 조항이 외국인에게 적용된다”고 증언했다. 증인은 위증하면 위증죄로 처벌한다. 따라서 이 말은 진실이다. 그렇다면 재판부가 장황하게 인용한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의 발언이나 그와 유사한 취지의 다른 발언들은 잘못된 것이다. 재판부는 우리 정부의 잘못된 대응 때문에 비금융주력자 조사를 쓸데없이 외국인 투자자를 괴롭히는 행위로 판단했고, 론스타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라는 우리 국민의 추상같은 명령은 터무니없는 정치적 압력쯤으로 폄하하게 됐다.

비금융주력자 조항을 거론하는 것은 조직으로서의 금융위, 즉 모피아에게는 사형선고지만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법질서의 회복이었다. 또 론스타의 투자가 원래 국내법을 위반한 투자였기 때문에 “ISDS의 관할권 없음”으로 론스타의 소송 제기를 각하시킬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모피아가 장악한 대응팀은 국민의 이익과 법질서의 회복 대신 모피아의 조직적 이해를 앞세웠다. 각하됐어야 할 소송이 살아남아 국민의 호주머니를 털게 됐다. 이게 이번 재판의 진면목이다. 진정한 모피아의 이해상충이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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